애니멀 호더란 ‘감당할 수 없는 수의 동물을 무리하게 키우며 열악한 환경에 방치하는 사람’을 말한다.
내가 호더를 찾아간 이유는 하나였다.
그들의 이웃이 도움을 요청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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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가야 할 곳은 고령의 부모와 아들이 함께 사는 곳이었다. 12평의 작은 아파트에 35마리의 고양이가 살았다.
이야기만 들어서는고양이집에사람이 얹혀사는 건지
사람이 사는 집에 고양이가 들어온 건지 확실하지 않았지만3명의 인간과 35마리의 고양이가비좁은 공간을 공유하고 있는 것은 분명했다.
두 번째 방문지는 일흔이 넘은 여성의 집이었다.
그녀는 빛이 들어오지 않는 지하실에서 40여 마리의 개와 생활하고 있었다.
민원을 제기한 사람의 말에 따르면
할머니는 당신의 생이 다 하는 순간까지
단 한 마리의 개도 포기하지 않겠다며 고집을 부린다고 했다.
민원인은 그녀의 남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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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관리소장을 만나‘고양이집’으로 향했다.
소장은 고양이가 사는 집을 중심으로
윗집, 아랫집, 옆집에서 많은 민원이 들어온다며 혀를 찼다.
“아휴, 어찌나 냄새가 나는지 사람이 살 수가 없어요.”
고양이 울음소리는 개가 짖는 소리보다 심하지않으니
소음보다는 냄새와 관련된 민원이 많았다.
“예전에는 그 사람들이 고양이 똥을 그냥 여기에다 부어버렸단 말이에요.”
그가 한 때 ‘고양이 응가 밭’이었던 화단을 가리키며 말했다.
“봉투에 싸서 버리라고 계속 잔소리를 했더니, 이제는 안 해요. 어디다 버리는지는 모르겠는데, 적어도 화단에는 안 버려요.”
고양이집과 가족에 대한 소장의성토가끝나갈 무렵목적지에 도착했다. 코를 찌르는 고약한 냄새가 진동했다.
“계세요?”
소장이 벨을 누르면서 문을 두드렸다.
안에서 기척이 들렸다.
“누구세요?”
“관리사무실에서 왔어요, 문 좀 열어주세요.”
순간, 집 안에 있던 남자는 말을 멈췄다.
쿵쿵쿵쿵.
소장이 계속해서 문을 두드리며 말을 걸었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렇게 10분 이상이 흘렀다.
"어떡하죠?"
소장이 곤란한 얼굴로 내게 물었다.
"그냥 가야죠. 뭐"
동물보호법에서는동물을 열악한 곳에 방치하는 것도'동물 학대'로 규정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피학대 동물을 긴급 구호할 수 있는 법적 근거 역시마련되어 있다.
그렇지만 애초에 동물이 물건이자 재산으로 규정되어있는 법체계에서 타인의 주거공간 안에 있는 동물을 어찌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열리지 않는 문 앞에서 나는 고통받는 고양이들의 모습을 확인할 수조차 없었다.
고양이 호더
두 번째호더 집을 방문하는 일은 훨씬 수월했다.
민원인이가족이었기 때문이다.
할아버지는 손에 든 부채를 흔들며 나를 반겼다.
“아휴, 선생님. 내가 설득을 좀 해봤는데, 동물병원에는절대 안 보내겠대요. 거기 보내면 안락사한다고.”
멀찌감치 떨어져 있던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성화에몹시 피곤한 얼굴이었다.
나는 그녀의 안내를 따라 지하실로 내려갔다.
낯선 사람을 경계하는 개들이 쉼 없이 짖었다.
머리가 아플 정도였다.
“불 좀 켜주시겠어요?”
나의 요청에 할머니는 어디선가 랜턴을 가지고 오셨다.
그녀의 손안에 들린 작은 빛이 어두운 방 안을 비추었다.
쓰레기장이었다.
이제 막 태어난 지 한 달 정도 되어 보이는 강아지들과
수십 마리의 성견들이낯선 사람의 방문에 흥분한 모습으로 쓰레기장을 뛰어다녔다.
암수를 분리하기 위해 가져다 놓은
녹이 슨 펜스도 눈에 들어왔다.
방 안 어디를 둘러보아도처참했다.
서둘러 사진을 찍은 뒤 해가 비추는 곳으로 나왔다.
바싹 마른 개 오줌 냄새가 진동하는 곳에서
10분 이상 서 있기 어려웠지만
할머니는 그곳에서 개들과 함께 주무신다고 했다.
“안락사는 절대 안 되니까, 좋은 곳으로 알아봐 줘요.”
곰팡이와 오물로 폐허가되어버린 지하실에 갇혀
숨만 쉬며 사는 그 개들이
정말'살아있는 건지' 모르겠지만그녀는 동물들의 안락사를 가장 두려워하고 있었다.
미국 매사추세츠 애니멀 호딩 연구 컨소시엄(The Hoarding of Animals Research Consortium, HARC)이 발간한 2006년 보고서에 따르면 애니멀 호더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가 그들은 스스로에게 동물구조에 대한 사명감을 부여한다는 것이었다.
또한 그들은 자신이 제공하는 돌봄과 치료가 충분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며, 동물의 죽음에 대해 극심한 두려움을 보여 안락사에 반대한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고는 하지만 정말 개똥이 굴러다니고 있는 공간에서 살아야 하는 것은 큰 문제였다.
개 호더
살아있는 동물과 함께 산다는 건
즐거움보다 힘든 일이 많다.
당연하다.
내가 사는 세상의 언어를 사용하지 못하고
내가 사는 세상의 규칙을 온전히 배우지 못하는 생명체를 온전히 나의 의지로 데려왔기 때문이다.
한없이 양보하고, 배우고,또노력해야 하는 것은
언제나 내 쪽이어야 한다.
함께 생활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외면하거나 방치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해결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오직 나에게만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나 역시 이러한 다짐과 각오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간혹 어쩔 수 없는 귀찮음을 느끼기도 한다.
스스로가 대단히 시혜적인 입장에서
이 개들에게 무언가를 '베풀어주고 있다'고 여기는 순간도 더러 있다.
나와 살고 있는 동물들은 애초에 나와 살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지도 않았고
밝힐수도 없는 존재들인데
선택에 따르는 수고스러움에 대한생색을 내가 내버리고만다.
그래서인지 예전에는 나의 개들이 크고 작은 문제를 일으킬 때주로 이런 질문을 했다.
'개, 도대체 무엇일까?'
하지만 생각해보니,개라는 동물이 어떤 존재인지만을 계속 물어서는 해결이 되지 않았다.
질문을 달리해야 했다.
'나는, 이 개들에게 무엇일까?'
동물을 키우기로 한 나의 책임과 의무
우리 집 개들에게 나는.
밥을 주는 사람이고, 산책을 시켜주는 사람이고, 간식을 주는 사람이고, 아주 만만한 사람이다.
그리고우리 집 개들에게 나는.
무방비 상태로 잠이 들어도 지켜주는 사람이고
무서운 소리가 들리면 재빨리 엉덩이를 붙일 수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또 우리 집 개들에게 나는.
조금 더 재미있는 경험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사람이고
아플 때 병원에 데려가서 돈을 쓰는 사람이며
추운 날에는 따뜻한 곳에서
더운 날에는 시원한 곳에서 쉴 수 있도록
자리를 살펴주는 사람이다.
적어도 나는
다른 생명을 책임지는 보호자의 최소한의 역할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이 경우에 한 가지의 사실이 명확해진다.
내가 데려온 동물은, 나를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없지만
내가 동물을 데려온 이상, 나는 그들이 행복하게 살다가 평온하게 생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부지런히 노력해야 한다는 것 말이다.
그리고 그 정도의 마음 없이는
그 어떠한 생명을집에 들이지도, 키우지도 말아야 한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비극은
보호자가 되지 말아야 할 사람들이
누군가를 보호하겠다 자처하거나
책임과 의무에 대한 깊은 고민 없이
무작정 다른 생명을 끌어안는 것으로부터 발생하기때문이다.
당신의 동물은, 당신과 사는 게 행복하지 않아
행복한 부모가 행복한 자식을 키울 수 있듯이
행복한 사람과 함께 사는 동물들이 진정으로 행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신건강의학 전문가들의 분석처럼 애니멀 호더는 저장 강박(Hoarding Disorder)중 하나인 정신과적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폐지나 옷, 잡동사니 등을 집안에 쌓아놓는 사람과 달리 살아있는 생명을 '구해준다'라는 명분으로 고통받게 만든다는 점에서 그 해악이 더 심각하다.
상상하는 것보다 많은 애니멀 호더들이 우리 사회 곳곳에 방치되어 있고 아무 곳에나 무참히 버려지는 동물이 있는 한 애니멀 호더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시스템의 미비와 무지로 고통받는 것은 언제나 가장 약한 자리에 있는 존재들이기에 관심의 크기를 조금 더 키울 필요가 있다.
사회가 '방치해 버린'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소수 동물보호단체의 관심만을 동력으로 삼는 것은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참고자료
HARC(The Hoarding of Animals Research Consortium), 2006. "Animal Hoarding: Structuring interdiscplinary response to help people, animals and community at ris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