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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u Jul 21. 2019

버려진 동물은 어디로 가나요?



2014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였다.      


아침 일찍부터 대학로에 있는 한 카페를 향했다.

세상에 하나뿐인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두 시간 남짓 공을 들여 나만의 케이크를 만들고,

약속 장소를 향해 다시 길을 나섰다.     


열심히 만든 작품이 망가지진 않을까 조심스레 걸음을 재촉하는데 저 멀리서 목줄도 없이 터덜터덜 걸어 다니는 한 마리의 개가 눈에 띄었다.      


시츄.

우리 포로리와 같은 생김새를 가진 멍멍이였다.       


지친 기색이 역력한 시츄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가만히 멈춰 섰다. 이리저리 둘러보아도 개의 보호자로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당시에 동물보호 시민단체에서 일을 하기 전이었기 때문에 길에서 유기동물을 만나면 어떤 절차로 행동해야 하는지 나는 알지 못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우선, 개가 다른 곳으로 도망가지 않도록 천천히 다가가 다정하게 말을 걸어보는 것이었다.



안녕, 너 집이 어디야? 왜 여기에 있어?”          



대답이 돌아올 리 없는 질문을 계속 건넸다.


날은 추웠고, 옆으로는 쌩쌩 달리는 차들이 쉼 없이 오고 갔다. 보호자가 없는 개를 이대로 두었다가는 행여 사고를 당하지는 않을까 염려스러운 마음에 쉽사리 자리를 뜰 수 없었다.





2014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 대학로




일단 케이크 상자를 바닥에 조심히 내려놓고 개의 상태를 살펴보기로 했다. 피부에 병이 난 것처럼 털은 엉망이었고, 눈곱이 잔뜩 끼어 있었다. 한눈에 봐도 길에서 생활한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난 것 같았다.


휴대폰을 꺼내 인터넷 창에 검색을 했다.      



[유기동물 어디에 신고해야 하나요]

[동물구조]

[동물보호단체]

[유기견 신고]



닥치는 대로 키워드를 넣어 초록 창에 나오는 결과를 살펴보다가 맨 위에 뜨는 ‘동물보호단체’에 전화를 걸었다.  

   

그렇게 한참을 개의 곁에 서서 여러 단체에 전화를 돌려보았지만 누구의 목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  하필이면 그 날이 크리스마스'라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약속 시간은 점점 다가왔고, 나는  발 옆에 얌전히 앉아있는 개를 그냥 두고 갈 수 없었다. 다급한 마음으로 119에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지금 제가 길에서 주인이 없는 개 한 마리를 발견했는데요. 여기 그냥 두면 큰일이 날 것 같아서 전화드렸어요.”



그렇게 10여분 시간이 지나자 119 구조대원 두 분이 오셨다.            



“개는 어디에 있어요?”          



구조대원이 내게 물었다.

나는 손으로 개가 있는 곳을 가리키며 겸연쩍게 웃었다.

다행히도 시츄는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있었다.


개를 향해 걸어가는 구조대원들의 손에는 커다란 그물망이 들려있었다. 혹시라도 개가 위협적인 행동을 할 경우를 대비해서 준비하신 모양이었다. 그러나 시츄는 동그란 눈을 멍하게 뜨고 다가오는 구조대원분들을 쳐다보며  ‘나는 지쳤어요.’라고 말을 하는 듯 아무런 저항 없이 그들에게 몸을 다.               



이 개는 이제 어떻게 되나요?”          



인사를 하고 소방서로 돌아가시려는 분들께 물었다.          



“주인이 잃어버렸다는 신고를 했나 찾아봐야죠.”      

     


개를 구조대원들과 함께 보내고 나는 다시 약속 장소를 향했다. 다행히 늦지 않게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상했다. 손에 든 케이크는 분명 가벼웠는데 내딛는 걸음이 무거웠다.


다음 날.

아무래도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해서 다시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바쁘신데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어제 길에서 돌아다니는 개 한 마리를 신고해서 데려가셨는데요. 혹시 어떻게 됐는지 알 수 있을까요?”          



전화를 받으신 분은 잠시 알아보시겠다고 한 뒤,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 개는 주인이 찾아갔어요. 걱정 안 하셔도 될 것 같아요.”


“아, 감사합니다. 잘 됐네요.”          



분명 잘 된 일이었다. 그런데 전화를 끊고 나서도 왜인지 모르게 무거운 마음이 가벼워지지 않았다. 별별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한참을 길에서 생활한 것 같은데 어떻게 하루 만에 주인을 찾을 수가 있지?’

정말 그 사람들이 주인일까?’

‘에이, 설마 확인도 안 하고 무작정 보내지는 않았겠지?’           



인터넷에 검색해 보니, 유기동물은 정해진 시일이 지나도록 보호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안락사를 시킨다는 글이 나왔다. 좋은 마음으로 괜한 일을 한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이 더해졌다.




내 행동이 최선이었을까?





그로부터 몇 년이 더 흘러.


이제는 내가 유기동물 구조요청 받게 되었을 때의 일이다. 출근길에 만난 유기견을 데려가 달라는 시민의 전화였다.


동물보호단체는 아무리 재정상 형편이 좋더라도 일차적으로 시. 군. 구청 담당과에 연락하여 신고하도록 안내한다. 국가가 '동물보호법'을 제정하여 동물보호에 대한 그들의 책무를 규정한 이상 시민들은 그에 따른 정책과 예산을 계속해서 사용하는 것으로 '행정기관의 동물보호업무'가 우리 사회에 반드시 필요한 일임을 알려주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보자 내게 이렇게 말했다.



“구청에 전화해서 데려갔다가 주인 못 찾으면요? 안락사하잖아요. 단체가 데려가 주세요.”    



그의 말에는 '단체라면 무조건 안락사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믿음과 함께 '지자체의 행정은 신뢰할 수 없다.'라는 두 가지 의미가 내포되어 있었다. 나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무리 '안락사시키지 않는 정책(no kill policy)으로 운영되는 보호소라고 해도 정해진 예산과 인력으로 감당하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동물복지 차원에서 활동가 한 명이 케어할 수 있는 마릿수도 많지 않구요.


마리가 나가야 다른 동물이 또 들어올 수 있는 구조인데 입양 가는 아이는 없고 매일같이 들어오는 동물들만 있으니 포화 상태가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단체는 최대한 아프고 고통스럽게 다친 동물들을 우선적으로 구조해서 보호하고 있어요.


혹시, 지자체에 신고해서 주인을 못 찾을까 염려되시면 법정공고기한이 지난 후 선생님께서 직접 입양하시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나의 질문에 그는 '지금 동물을 키울 형편이 되지 않는다.'고 답하며 이런 말을 덧붙였다.



"바쁜 와중에 좋은 마음으로 도와주려고 전화했는데, 어쩔 수 없다는 말만 반복하니 기분이 상하네요. 다음부터는 그냥 모르는 척하는 게 낫겠어요."



그의 마음이 무엇 때문에 상한 것인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우연히 유기동물을 마주한 그들은 좋은 마음으로 가던 길을 멈춰 기꺼이 핸드폰을 꺼내 들었을 테고, 전화번호를 검색하는 시간과 수고를 들여 도움을 요청했을 텐데 돌아오는 대답은 충분히 만족스럽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존재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인정하는 것이 우선이다.


사회학적 상상력(Sociological Imagination)을 집필한 사회학자 C. 라이트 밀즈(Charles Wright Mills)는 "개인적인 현실과 사회적인 현실에 대한 올바른 규정을 발전시켜 그것에 입각하여 행동할 수 있는 공중과 개인을 계발하기 위해 사회과학적 교육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다시 말해,  어떤 것이 '개인이 해결해야 할 문제'이고, 어떤 것이 '공적 영역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인지 올바르게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나는 동물을 쉽게 사고, 쉽게 버릴 수 있는 우리 사회의 시스템적인 문제를 몇몇 개인들의 좋은 마음으로만 해결 하지 않기를 바란다.


화가 나고 기분이 상할수록 그 질문을 시민단체나 개인이 아닌 '행정기관'에 던져야 한다. 법이 문제라면 국회의원을 움직여야 한다. 그래야 변한다.  

 



동물을 사지 않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일.




현행법상 ‘유기동물’의 구조 및 보호책임은 관할 시·군·구청에 있다.  


일단 보호자를 알 수 없는 동물을 길에서 발견하면 해당 지역의 구청 또는 시청의 동물보호 담당과에 전화를 걸어 동물이 있는 정확한 위치와 신고자의 이름, 전화번호 등을 남기면 된다. 그러면 해당 과에서는 지자체에서 직접 운영하는 동물보호센터 또는 위탁하여 관리하는 동물병원 등에 해당 내용을 전달한다.     


보호관리를 맡은 곳에서는 구조된 유기동물의 마이크로칩 등으로 소유자를 확인하는 과정을 거쳐 동물보호관리시스템(animal.go.kr)에 정보를 올린다. 그 후 7일 이상 유기동물의 정보를 공개하여 보호자의 연락을 기다린 뒤에 10일이 지나도록 주인이 나타나지 않으면 해당 동물의 소유권은 지자체가 갖게 된다.  반드시 이 과정을 거쳐야 새로운 가족에게 입양 보낼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차곡차곡 쌓인 자료는 다음, 그 다음, 또 그 다음 해의 동물보호정책과 그를 위한 예산 책정에 영향을 미친다.




유기동물 신고 및 관리 시스템





2014년의 내가 그러했듯 지금도 길에서 버려진 동물들을 만나면 안타까운 마음에 어떻게든 해 달라 요청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그중 몇몇 사람들은 구조된 이후의 동물의 처지에 대해 설명을 듣고는 기한 내에 데려가겠다는 사람이 없으면 안락사하는 건가요?'하고 되물으며 무거운 목소리로 마음을 전하기도 한다.  


참 이상한 일이다.   


동물을 버린 건 다른 사람들인데, 무거운 돌덩이를 마음에 안는 건 '구조를 요청한 사람들'이니 말이다.

    

5년이 지났지만 어김없이 크리스마스가 되면,

나는 대학로에서 만났던 가 떠오른다.


올해는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좋은 성탄절을 보내고 있을까. 아니면, 다시 어딘가에서 혼자 길을 헤매고 있을까.     


부디 전자이길 바라며 앞으로도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더 고민해보기로 한다. 





참고자료


라이트 밀즈, 2011. 『사회학적 상상력』p236. 돌베개.

동물보호관리시스템 (animal. 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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