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토요일이다 정신없이 달려온 한 주가 주는 선물 쉼표 같은 주말. 그 어떤 주말보다 쉼표가 필요했던 한 주.
어떤 주는 토요일에 트레킹을 할까 즐거운 고민도 하고 어떤 주는 딸이랑 쇼핑할 생각에 신나기도 하는데 이 번주는 그냥 진짜 잠시 멈춤, 일시정지가 절실했다
새삼 그 간의 주말들이 더욱 감사히 느껴지는 날이다
이번 주 화요일엔 수업이 오랜만에 빨리 끝났다 낮에 카톡으로 대화를 나누던 친한 동생은 그간 밀려온 스트레스 풀 곳이 필요했는지 어쩐 일로 먼저 만나서 시원한 맥주 한잔 하자한다
나는 너무 피곤한 터라 거절 하고팠지만 서로 간의 스트레스가 선을 넘기 직전이라 만나자 했다 피곤해도 만나면 즐거우니까^^그래도 스트레스는 풀리니까.
그 간 못 보면서 쌓인 온갖 얘기들 서로 쉼 없이 풀어놓으며 늘 그랬듯 울며 웃으며 맥주로 서로를 위로했다
정말 오랜만에 잘 놀았다
그리고 다음날 약간의 숙취와 피로로 한 숨자고 일어나니 10시 30분쯤. 습관적으로 전화기를 확인하니 부재중 전화 2통, 그리고 전화 좀 하자는 남동생의 문자.
아무 의심 없이 여느 때처럼 전화를 했다 그냥 아주 가끔 친정 일로 한 번씩 통화한다 현실 남매가 다 그렇듯 말이다. 동생은 구미에서 태권도 체육관을 운영 중이라 서로 겹치는 부분이 있어 한 번씩 통화를 한다. 아무 생각 없이 잠이 덜 깬 목소리로 통화를 했는데...... 엄마가 계단에서 넘어져 일어나지도 못하고 두 시간째 그 자리에 앉아 꼼짝 않고 있다는 것이다. 눈앞이 캄캄했다. 씻지도 않았고 출근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무작정 가기란 뒷일이 너무 막막했다. 상주하는 선생님이 계신 것도 아니고 일찍 오는 날도 아니고.. "어쩌지, 어쩌지"만 연발하다 남동생은 울산에 사는 선배에게 부탁해서 친정집으로 가 엄마를 모시고 가까운 정형외과로 가게 했다. 우리는 모두 심각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동생의 선배는 병원 다녀와서 x-ray상으로는 다행히 골절이 아니라고 했단다. 휴.... 다행이다. 정말 이 정도기에 다행이지 하고 나머지는 생각지도 않았다. 엄마를 직접 본 것도 아니고 해서 별일 아닐 거라 생각했다.
이런 일이 없었으니.... 당연히... 타박상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엄마는 그날 밤새 잠 한숨 못 자고 앓고 결국은 이상하다 싶어 큰 병원으로 옮겼다. 온갖 종류의 정밀 검사 후 고관절 골절로 판명 났고 수술 날짜를 조율했다. 병원 측엔 수술 환자가 많아 빨라야 10일 후쯤이다. 세상에나.... 저렇게 힘들어하는 환자를 어떻게 10일을 기다리란 말인가? 병원 측에선 응급이 아니라지만 환자는 고통스러워하지 않나?
그날의 내가 사는 부산이란 곳이 새삼 회색도시 같았고 내 마음도 회색이었다 10층이 넘는 그 병원 건물에 쓰인 추락주의란 글자. 순간의 추락은 아찔했다 엄마는 추락이라기보다 낙상이었는데 다 아찔하다 갑갑했던 마음만큼이나 뿌얬던 도시. 딱 내 마음이었다.
엄마가 병원에서 아무것도 못 하고 통증으로 누워만 있을 때 남동생과 나는 최대한 빨리 수술 가능한 병원을 찾았다. 부산대학교 병원을 응급으로 들어가서 수술을 받기로 했다. 그리고 주말을 보내고 수술 날짜를 잡고 수술을 했다. 그 고통은 본인이 아니고서는 모른다. 그 어떤 병이든. 나도 엄마의 죽을 듯한 고통을 알 수 없다. 내가 치루 수술을 하고 마취가 깨면서 느끼는 그 고통도 말할 수 없이 아팠으니... 이렇게 고통은 외로이 스스로 견뎌야 하는 것임을 늘 병 앞에서 깨알 같이 작아지면서 또 고통은 우주만큼 크게 느낀다.
엄마는 무사히 수술을 했고, 그 연세 치고 고혈압, 당뇨 등등의 다른 질환이 없으셔서 회복 속도도 좋다고 하셨다. 의사 선생님의 말씀이 법전인 노인들은 다 잘 믿고 말도 잘 듣는다. 다행이다. 한숨 돌렸다.
엄마의 갑작스러운 일로 홀로 집에 남겨진 아버지 케어는 나의 몫이었다. 병원 안에서 간병도 못하는 우리들은 밖에서 할 수 있는 각자의 일에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자주 가지는 못해도 며칠에 한번 친정집에 가서 밀린 설거지도 하고 빨래하고 밥도 해 두고 드시고 싶은 거 장도 봐 놓고 왔다. 거동이 예전 같지 않은 아버지는 고추밭에 벌레가 걱정이 한가득이셨다. 그래서 결국 내가 약통을 울러 메고 약을 쳤다. 그리고 너무 가물어 고추들이 시들어 가니 물도 줬다. 글이 쉽고, 말이 간단해서 그런 일은 뚝딱 할 수 있는 일 같지만 땡볕에서 하는 노동은 정말 슬프리만큼 힘들었다. 갑자기 싫어졌다. 너무 힘드니까.. 그리고 그렇게 우직하게 이런 힘들일을 자신의 일들이라며 숙명처럼 여기며 힘든지도 모른 채 살아왔고, 또 지금도 그러하다고 생각하니 힘든 와중에 짜증과 슬픔이 섞여 왔다. 이제 제발 좀 그만하시지.... 그만해도 되는데 왜 그만 두지 못하고 거동이 불편한 와중에도 밭에 있는 고추가 걱정이신가?
다 안다. 당신들이 조금만 움직이면 자식들 입에 좋은 먹거리 넣어 줄 수 있어서, 모종 싸게 사면 수확은 몇 배의 값어치로 돌아오는 걸 아는 그 경제적 가치를 놓을 수 없어서.... 다 안다. 다 알지만 이제는 화가 난다..
주인이 오지 않는 아버지의 텃밭엔 잡초들이 무성했고 그렇게 깔끔하던 밭이 초라하기 짝이 없다. 곡식은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면 자란다는데, 우리 아버지의 밭에 식물들은 한 동안 외로울듯하다. 하나, 지금은 오로지 당신들의 건강만 신경 써야 할 때임을 제발 아시길 바란다.
열심히만 사시고 이제 몸에 질병만 남은 나이 든 노부모. 이제는 좀 쉬시고 여생을 유유자적 보내시길 간절히 바란다. 아버지, 어머니의 노년을 바라보며 나의 노년을 어떻게 보낼지 많은 생각을 하게 된 시간이다. 현재만 살아내려고 꾸역꾸역 참으며 살지 말자. 나에게 노년이란 또 어떤 것 일지.
젊은 시절 한동안 내 삶은 그대로 머물러 있었고, 딱히 큰 변화도 없었고, 지루할 만큼 똑같았던 날들이었는데, 마흔다섯을 지나면서 매일매일이 새롭고 다르고 또한 겪고 싶지 않은 일들이 많다. 엄청나 속도로 달려가는 급행열차로 바꿔 탄 느낌이다. 나는 이제 비둘기호를 타고 싶다.
아버지, 어머니의 노년의 삶을 바라보며 나는 비둘기호처럼 역마다 서며 천천히 출발하고 타고 내리는 사람들과 천천히 달리고 싶다 때론 목적지가 아니어도 맘에 드는 간이역에 훅 내려 그곳에서 며칠 머물다가는 삶을 살고 싶다. 노년은 세상에서 가장 여유롭고 아름다워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