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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비 Jun 05. 2019

포르투갈, 한 달 살기로는 부족해

1. Monsanto에서 값진 육체 노동

나는 2018년 2월~3월, 2018년 4월~5월, 2019년 2월~4월, 이렇게 세 번에 걸쳐 4개월 동안 포르투갈의 메인랜드, 마데이라 섬, 9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아조르스 군도에서 때로는 관광객으로 때로는 현지인들의 친구로서 그들의 생활을 여행했다. 나의 여행 기록이 포르투갈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그 애정이 깊어지는 계기가, 포르투갈 여행을 앞두었거나 고민중인 사람들에게는 용기와 응원이 되었으면 한다.


긴 시간을 들여 여행할 여유를 누릴 수 있는 특권을 갖춘 사람들이 몇 안되는 한국인들에게 로망이 되어버린 한 달 살기, 과연 얼마만큼이나 현지인의 삶을 이해하고 경험할 수 있을까? 현지인들의 일상에 섞여 이방인의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다보면, 그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일상 뒤에 숨겨진 고민과 괴로움을 알 필요 없이 그저 낯설음에 감탄만 해도 부족한 시간은 아닐까.


이 나라에 머무른지 3개월이 채 안 되어 이곳이 조금은 익숙해지고 여행을 통해 털어버리고 싶었던 내 삶의 고단함을 충분히 위로 받은 즈음에서야, 이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하루 하루의 삶에 대한 진정한 관심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나에게 이 시기는 포르투갈에서 가장 포르투갈다움을 간직한 마을로 손꼽히는 Monsanto의 세 번째 방문 여정과 맞물렸다.


우리나라에서 경주, 안동, 전주 한옥 마을이 한국스러움을 간직한 곳으로 여겨지듯이 포르투갈에도 전통적인 포르투갈의 모습을 간직한 12곳의 Historical villages가 있다. 히스토리컬 빌리지의 대부분이 스페인 국경에 인접한 중북부 내륙에 몰려 있고, 대중 교통으로는 이동하기가 어렵기에 자차나 몇 개의 히스토리컬 빌리지들을 묶은 현지 패키지 프로그램을 통해 방문할 수 있다.


Monsanto는 중세시대 Beira 풍의 성과 마을을 느낄 수 있는 곳으로, 이 마을을 발견하고 집을 지어 살기 전부터 거대 바위들로 지어진 동굴 집이 곳곳에 남아 있었다고 한다. 동굴집의 흔적은 아직까지 남아있어서 이 마을에 가면 어디가 바위이고 어디가 집인지 그 경계가 모호한 이색적인 집들을 어렵지 않게 만나볼 수 있다.


언제 지어졌는지도 알 수 없는 거대한 바위집들과 포르투갈 전통 가옥이 가득한 Monsanto 전경, 전망대에서


포르투갈의 시골 마을에서는 포르투갈어를 사용하지 못하는 나조차도 이 먼 곳까지 찾아준 반가운 외지인이 되어 어딜가나 환대를 경험할 수 있었다. 그 지역 사람과 함께 다니면 매우 격렬하게 환대해주고, 혼자 다닐 땐 조심스럽게 환대해준다. 지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변함없는 그들의 환대 속에서 그들의 일상에 더 가깝게 다가가고 싶고, 함께하고 싶다는 마음이 저절로 일었다.


새로운 여행지에 처음 도착하면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예쁘고, 작은 것 하나에도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싶게 된다. 한국에서는 당연하게 생각할 수 있는 사소한 친절과 배려에도 마치 중요한 사람으로 대우받는것 같은 마음에 그 의미를 확대 해석하고 감동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반복되다보면 이 또한 평범한 일상이 되어버린다.


포르투갈과 포르투갈 사람들에게 익숙해져갈수록 계속 특별하게 만들어가고 싶은 나의 여행이 한국에서와 다를 것 없는 그저 그런 하루하루처럼 느껴질까봐 두려운 마음이 들곤 했다. 하지만 몬산투에 오면 보통의 일상 같은 여행도 원래 그랬던 나의 하루인것처럼 받아들일 수 있었다. 이 편안함 속에서 익숙해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나를 이방인으로 바라보는 현지인들을, 나에게는 이방인인 그들을 나와 같은 사람으로 생각해볼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의 일상에 나를 허락해 준 그 흔쾌함에 감사하면서.


2018년 3월에 몬산투에 처음 올 당시, 쉼 없이 빼곡한 하루하루를 사던 나에게는 대단하게 볼 것도 없는 소박한 작은 마을에서 ‘계획 없이, 그저 가만히 있기’는 도전이자 휴식이었다. 아무것도 안하고 싶었지만, 특별하면서도 안전한 곳이었으면 했다.


내륙 깊숙히 자리한 몬산투까지 가게 된 나는 정성들여 한 끼를 챙겨먹고, 어느 바위 위에 걸터 앉아 하늘을 지나가는 구름을 쫓아 하루종일 시선을 뺏겨보기도 하고, 동네를 가득채운 거대한 바위는 언제부터 여기에 있었을지, 예쁜 화분으로 둘러 쌓인 집을 보며 이 집의 주인은 집 안은 어떻게 꾸며 놓고 살까 하는 궁금증에 현관 문을 두드려 보기도 하는 등 (다행히 아무도 없었다.) 내 주변에 있는 아무것도 아닌 모든 것에 관심을 갖고 오롯하게 지금 머물고 있는 현재에 마음을 쏟으며 하루를 보내기 바빴다.


숙소 밖을 나서면 만나게 되는 첫 집


이곳을 찾을 때마다 100% 나로부터 출발한 순도 높은 관심들을 충전하며 나를 여기까지 오게 한 마음의 무거움이 조금씩 덜어지고, 여유가 생긴 덕분일까. "우리나라에서 만난 행복, 한국까지 잘 가져갔으면 해.", "너의 기억에 이곳이 언제나 아름다움으로 남길 바래."하고 나의 여행과 휴식을 축복하며 내게 이 나라를 즐거움으로 남기고 싶어 했던 포르투기쉬들 덕분일까. 또 그저 한 곳에, 언제나 늘 그렇게 자리하고 있는 이 마을이 주는 단단한 힘 덕분일까. 보통의 일상같기도 한 진짜 여행이 시작된 것 같았다.


리스본에서 300Km 정도 떨어진 몬산투까지 직접 운전하는 차 없이 가는 길은 험난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위대한 구글도 대중교통편을 찾아주지 못했고, 계절마다 또 요일마다 바뀌는 버스 시간표에 그 지역에 사는 주민도 내가 가고자 하는 시기의 버스 시간표를 알려주지 못했다. (2019년부터는 포르투갈 버스 회사인 Rede Express에서 검색이 가능하다.)


여러 곳에 숙소 예약 문의를 하던 중, 한 호스트로부터 답장을 받았다. 본인은 주로 리스본에서 살고 예약이 있을 때에만 몬산투에 가니 자신의 차로 리스본에서부터 함께 움직이자고 했다. 몬산투로 가는 다양한 루트와 루트별로 들를 수 있는 도시를 안내해주는 장문의 이메일도 보내주었다. 그리고 내가 본인과 함께하지 않아도, 너가 이 예쁜 곳들을 꼭 들러볼 수 있길 바란다는 말도 덧붙였다.


한참을 고민했다. 도대체 이 나라의 친절함은 어디까지일 수 있는걸까. 모르는 사람 차를, 그것도 여자 혼자 타도 괜찮을까. 설사 이 사람이 믿을만한 사람이라고 해도, 함께 차를 타고 가는 긴 시간동안 무슨 대화를 해야할까. 많은 생각이 오갔다. 포르투갈에 7년을 살면서도 교통편이 불편해 아직 이곳에 가보지 못했다는 한인민박 사장님이 호스트가 운영하는 리스본과 몬산투의 숙소 후기를 보며 그 분은 믿어도 될 것 같다며 호스트와의 동행을 추천 했다. 또 도무지 찾을 수 없는 대중 교통 정보에 이곳에 갈 수 없을지도 모를 것 같아 호스트의 차를 타고 가기로 결심했다.


호스트에게 나의 모든 염려와 걱정, 내 주변인들의 우려를 충분히 나누었다. 호스트를 만나자마자, 한국에 계신 부모님과 경찰인 친구에게 보낼 수 있도록 당신의 사진을 찍어야겠다고 농담처럼 건넨 말에, 진지하고 믿음직스러운 사람처럼 보여야 한다며 근엄한 포즈를 취해주었다.


내가 선택한 몬산투로 향하는 길은 오비두스, 에보라 등 여행자로 북적일법한 도시를 제외한 작은 마을들을 둘러볼 수 있는 좁다란 국도길이었다. 인적이 없는 작은 마을에 도착하면 경계심을 다 허물지 못한 나는, 차에서 내릴 때마다 여권과 지갑을 챙기곤 했다. 그런 나를 이해한다는 듯 호스트는 크게 개의치 않아했다. 몇 장소에서 호스트의 친구를 만났고, 일부 구간은 호스트의 친구와 동행하기도 했다. 나는 이후 몬산투에 세 번을 더 갔고, 호스트의 친구는 나의 친구가 되었다. 나중에는 몬산투 인근 호스트의 친구집에 초대받아 일주일간을 지내보기도 했다.


리스본에 있는 호스트의 집을 방문했을 때 걸려 있던 초상화를 보고 누구냐고 물었더니 처음으로 정복을 차려 입고 법정에 가게 된 변호사 초임 시절의 본인이라고 했다. 지금도 종종 지인들을 위해 변호사로 법정에 가곤 하지만, 정통 포르투기쉬는 켈트족이다!라고 늘 강조하며 포르투기쉬임을 자부하는 그는 리스본과 몬산투에서 비앤비를 운영하며 포르투갈을 찾는 이들에게 진짜 포르투갈을 소개해주는 일이 큰 기쁨이라고 한다. 포르투갈에 법대가 두 곳 밖에 없던 시절, 9년의 쉽지 않은 과정을 거쳐 변호사가 된 그가 왜 전직을 하게 되었는지 궁금했다.



포르투갈에서는 부활절 전후, 한여름 전후, 크리스마스 전후로 1년에 약 2개월 정도 법원이 문을 닫는다고 한다. 여유로운 집안에서 태어나 대학생 시절부터 혼자 큰 아파트에 살면서 남는 방을 리스본으로 여행 오는 사람들에게 쉐어를 해 주며 법원이 문을 닫는 동안은 그들과 함께 포르투갈 곳곳을 자유롭게 누볐다고 한다. 그렇게 도시를 벗어난 자유를 경험할 때, 늘 해야 할 일들로만 가득하고 끝없는 싸움의 연속인 변호사의 삶에 대한 회의가 생겼다고 했다. 그를 변호사의 길로 이끌고, 그가 변호사가 되었을 때 그를 자랑스러워했던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후에서야 새로운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용기를 낼 수 있었다고 했다.     


호스트의 리스본 비앤비 11개의 방은 성수기엔 거의 늘 풀북이다. 이곳을 관리하는 직원이 있지만, 웰커밍과 리스본 안내는 늘 직접 챙기고 자동차로 포르투갈 전역을 여행할 사람들에게는 그들의 로망에 맞는 장소를 열정적으로 소개해주며 잠시도 쉴 틈 없이 바쁘게 지낸다. 그런 정신 없는 도시에서 일할 에너지를 충전하기 위해 몬산투를 찾는다는 그는 몬산투에 와서도 늘 일을 했다. 언덕과 뒷마당에 있는 땅을 고르고, 잡초를 뽑고 나무와 꽃을 심었다. 몬산투 초입에 새로 짓고 있는 3층짜리 주택을 만드는 일에도 직접 뛰어 들어 아침부터 저녁까지 계속 몸을 쓰는 일을 했다.    


몬산투 마을 안에만 집이 세 채인 호스트는, 몬산투로 올라가는 길에 있는 이 땅에 수영장이 딸린 새로운 집을 짓고 있는 중이다.


나는 휴식이란 아무것도 안 하고 오로지 나만 생각하고 내가 원하는 것에만 집중하면서 그간 힘들게 고생하며 살아온 나에게 주는 보상 같은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내가 보기에 이 호스트는 쉴려고 여기까지 오는 것도 큰 일 일텐데 어떻게 저렇게 하루 종일 일만 할까? 일 중독자에게는 일을 하는 것이 휴식인걸까? 이렇게 일하는게 휴식이라면, 나는 그 휴식 안하련다 하고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학교에서 일하던 시절, 쉬는 시간에 놓여져 있던 제자로부터의 쪽지


이 호스트는 몬산투에 올 때마다 회사 생활을 하는 친구와 함께 오곤 한다. 호스트의 친구 역시 몬산투에 쉬러 온다고 하면서 그와 함께 하루종일 일을 했다. 두 사람은 이곳에 있는 내내 밭에만 있었으면서 이번에도 참 잘 쉬었다며 리스본으로 돌아가곤 했다. 도대체 이들은 어떻게 만족스런 휴식을 할 수 있었던걸까?


어느날엔가는 두 사람 모두 온 몸이 숯검댕이가 되어 오기에 무슨 일인가 했더니, 그 누구도 가꾸지 않아서 잡초와 뾰족한 나무로 우거진 호스트의 사유지 바로 옆에 있는 땅에다가 화전을 하고 오는 길이라고 했다. 호스트는 진즉에 자신의 땅을 바지런히 가꾸어 말끔하게 만들었지만, 본인의 땅 바로 옆에 방치된 공간이 있어 지금 짓고 있는 3층짜리 집 앞 뷰가 차마 이꼴인것을 두고 볼 수 없었다고 한다. 정작 땅주인은 어차피 언덕진 이 땅을 가꾸어도 활용할 사람도 없고, 활용할 수 있다 해도 방치된 땅을 사용하기 위해 정리하는 시간과 비용이 훨씬 더 들것 같다며 손을 놓고 있던차라 나의 호스트가 대신 땅을 정리해주겠다는 말에 화전을 승낙했다고 했다.


그간 나의 여행을 돌봐주고 리스본까지 편하게 왔다갔다 할 수 있는 호스트에게 보은할 겸, 이들을 쉬게 해 주는 육체 노동을 통한 휴식이 무엇인지 탐구할 겸 호기롭게 다음 화전을 돕겠다고 했다. 호스트와 그 친구는 너가 나뭇가지를 모아서 나르는 것만 해도 언덕을 오르내리며 땅을 고르는 일은 보통 일이 아닐거라고 경고 했다. 한량처럼 동네를 누비며 나른해진 나의 에너지와 달리 온종일 몸을 쓰는 일을 하고 왔음에도 불구하고 활력이 넘치는 그들을 보며 내가 경험하게 될 포르투갈에서의 화전이 기대되었다.



화전의 시작은 코르크 와인 뚜껑을 모아 에틸 알콜을 가득 부어 코르크에 알콜이 스며들도록 준비하는 것이다. 콜탄 등을 이용해서 한 번에 불을 붙일 수 있는 방법도 있지만, 환경을 위해 오염을 일으킬만한 방법은 멀리한다고 한다. 이 코르크는 불씨를 지필 좋은 재료가 되어, 몬산투의 산에 해가 되는 것 없이 불을 피울 수 있다. 이 알콜에 적셔진 코르크 마개로 꽉 찬 병을 들고 언덕으로 향하니, 태워질 준비가 되어 있는 마른 가지들이 한 가득 널려 있다.


내가 이 마른 가지들을 갈고리를 사용해서 한 곳으로 모아두면, 호스트의 친구는 내가 모은 마른 가지들을 단번에 불구덩이로 집어넣어 옆으로 불이 번지는 것 없이 안전하게 잘 탈 수 있도록 지켜봤다. 우리가 이 일을 할 동안 호스트는 기계로 자를 수 없는 땅에 붙어 있다시피한 나무같은 잡초들이나, 올리브 나무 가지들을 톱을 사용해서 쳐내며 다음번 화전을 준비했다.



처음에 나무 가지를 작게 여러개로 나누어 모았더니, 호스트의 친구가 크게 나무 가지를 하나로 모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한 두 어번만에 곧잘 따라하니 그 후로는 내가 나무 가지를 모을 때마다, 별 5개짜리 일꾼이라며 양 손가락으로 엄지를 추켜세워주거나 박수를 쳐 주곤 했다. 그렇게 잘려진 나무가지를 다 태울 즈음, 돌을 주워 불 주변에 낮은 울타리를 만드는 일을 했다. 언제 어떻게 불어올지 모르는 바람과 혹시라도 불이 붙은 나무가 아래로 굴러 떨어져 예기치 않은 화재가 발생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불씨가 사그러질때까지 한참을 지켜봤다.


화전을 하는 동안 언덕을 오르내리고 갈고리질을 하며 발은 점점 무거워지고 팔은 욱신거렸다. 불 옆에서 일을 할 때는 연기를 많이도 마셨다. 신발에는 나뭇가지의 가시가 박히고, 팔과 다리엔 가시에 스친 상처도 생기고 옷 어느 구석은 찢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괜찮았다. 우리의 수고로움이 무엇을 남겼는지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손이 닿기 전과는 완전히 다른 정리된 모습에 의심할 것 하나 없는 뿌듯함이 느껴졌다. 이제 이 곳에서 새로운 나무와 꽃들이 자랄 수 있겠지 하는 생각에 이곳에 다시 올 이유도 생겼다.


마음을 참 많이 쓰면서 산다. 아직 하지 않은 것에 대해, 이미 했던 것에 대해, 하고 싶지만 하지 못한 것에 대해, 이렇게가 아닌 저렇게도 할 수 있었던 것들에 대해서. 마음을 쓰는 일은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도 않는다. 마음을 쓰고 있는지도 모른채 마음을 소진하게 된다. 나는 쓸 마음이 바닥을 보인다 싶으면, 내 마음을 쓰게 하는 것으로부터 잠깐이라도 벗어나고 싶어했다. 그래서 여행을 떠났다.


일상에서는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면 또 다른 문제가 기다리고 있고, 때로는 풀리지 않을 문제임을 알면서도 씨름하는 척을 해야하기도 한다. 여유를 잃은 내게는 내 마음이 무엇으로 향하는지,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를 챙겨보는 것 조차 또 다른 피곤한 일이 되어버렸다. 여행을 하면 그런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 마음을 멈출 수 있었다. 그렇게 마음을 어르고 달래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힘을 얻곤 했다.


화전을 하는 동안 호스트는 나뭇가지를 쳐내며 도시에서 자신을 힘들게 하는 다양한 군상들을 떠올리곤 한다고 했다. 간간히 큰 소리로 누군가의 이름을 외치며 톱질을 하는 그는 화가 난 것 같기도 하고 신나 보이기도 했다. 호스트의 친구는 불을 피우고 나뭇가지를 태우며 지금은 함께하지 못하는 아버지로부터 화전을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배웠던 시간을 추억한다고 했다.


나는 '이 나뭇가지들을 다 태워야지'하고 마음이 이끄는대로 몸을 움직이는 과정과 결과를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었다.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온 몸으로 느끼다보니 고단하긴 해도 괴롭진 않았다. 아, 이런 것일까. 몸을 쓰는 일은 참 정직하다. 내가 한대로 결과를 얻는다. 오랜만에 마음과 몸을 하나로 쓰고 그 결과를 바로 얻어보았다. 나의 하루가 어땠는지를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오늘 하루 괜찮게 잘 살았구나 하고 스스로에게 자신있게 말해줄 수 있었다. 나는 아주 오랜만에 내 마음에 관심을 두고, 내 마음을 어루만져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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