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ay is the day!
2019년 여름 초복, 한국을 찾은 외국인 친구를 만났다. 2015년 지리산에서 처음 만난 이후로 매해 빠짐없이 만남을 이어가고 있다. 중국인과 말레이시안의 피가 흐르는 그녀는 나보다 나이가 7살 더 많은 싱글로, 싱가포르에 있는 프랑스 게임 회사에서 회계사로 일하고 있다. 한국을 좋아하기에 일 년에 한두 번 이상은 휴가차 한국을 찾는다. 한국 방문 횟수는 40회 이후로 더 이상 세지 않았다고 하는데 이것이 언제인지도 기억이 안 날 정도로 오래전이라고 하니 그녀의 한국 여행 연차는 가늠하기 어렵다.
이 친구와 함께 한국을 다닐 때마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를 새로운 눈으로 보는 듯했다. 한국을 예쁘고, 매력 넘치는 곳으로 봐주는 그 고운 여행자의 눈에 나도 물들었다. 퇴근 후엔 피곤하니까, 혹은 동선이 효율적이지 않아서 등의 이유로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많은 것들을 기꺼운 마음으로 할 수 있었다. 인천 계양구에 사는 내가 강화도에서 숙박을 하면서 송도를 다녀오는 짓을 했다. 왜? 친구가 그날 기분에 저녁엔 송도다! 하고 정했으니까. 친구는 내 사진을 이렇게 찍어주고선 꽤 뿌듯해했다.
이 친구의 한국 여행 이야기를 듣다 보면 과연 여행인가? 객기인가? 놀라울 때가 있다. 우리 만남의 시작부터가 그러했다.
나는 지리산 천왕봉 당일 등반이 가능한 코스의 출발지인 중산리에서 산장과 카페를 운영했던 친구네에 종종 놀러 가곤 했다. 친구를 만나러 중산리에 몇 번이나 갔었지만, 천왕봉을 오를 생각은 미처 하지 않았다. 어느 날, 더 늦어지기 전에 홀로 이 산을 오르고 싶은 마음이 일었다. 아버지가 챙겨주신 각종 장비와 함께 천왕봉 등반을 위해 중산리를 다시 찾았다.
다음날 등반을 앞둔 나에게 친구의 어머니는 로퍼를 신고 천왕봉을 오르겠다고 하는 외국인 투숙객을 걱정하셨다. 겁도 없는 저 외국인이 어두워지기 전에 무사히 하산할 수 있도록 코스에 대해 단디 설명을 하고, 중간에 안 보이면 꼭 챙기라고 다시 한번 당부하셨다.
다음날 아침, 걱정스레 그녀를 바라보는 우리와 달리 그녀는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Thanks, But don't worry!"하고 나보다 한 시간 먼저 길을 나섰다. 그리고 나는 금세 어느 큰 바위 위에서 한 걸음 한 걸음마다 사투를 벌이고 있는 그녀를 만날 수 있었다.
그녀는 내가 내민 손과 스틱도 마다하고 본인이 할 수 있는 만큼 해보고 싶다며 미소를 잃지 않았다. 속도를 맞춰 같이 산을 오르려는 나의 친절이 그녀만의 시간을 방해하고 있음을 에둘러 표현하면서도, 내가 무안하지 않기를 바라는 배려가 느껴졌다. 그녀도 나처럼 혼자 힘으로 정상에 서고 싶은 마음인 걸까 하고 그녀의 마음을 헤아려 보려 했다. "우리 안전하게 천왕봉에서 다시 만나자" 인사를 건네며 다시 나의 속도를 되찾았다.
법계사를 지나니 운동화를 신고 나무 막대기를 짚으며 가벼운 걸음으로 산을 오르고 있는 초등학생들을 뒤따르게 되었다.
"내가 작년 소풍 때는 말이야, 법계사도 겨우 올라왔었어.
이제 6학년이니깐 법계사보다는 더 가야지."
"나는 5학년인데도 법계사 지났는데~~~"
"야! 6학년 ㅇㅇ는 작년에 법계사도 몬갔다!!!"
낭창한 목소리의 초등학생들 대화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대단한 결심이나 한 듯 잔뜩 긴장한 채 아버지가 챙겨주신 각종 장비를 이고 가는 나의 모습이 괜히 유난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왁자지껄한 초등학생들과 함께 걷다 보니 어느새 천왕봉에 도착했다. 정상에 도착하자마자 그녀를 만나게 되면 정말 대단하다고, 멋있다고 크게 손뼉 치며 환하게 맞아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요란스러운 착장을 하고 각종 등산 용품으로 무장한 나도 힘들었는데 발목 양말에 로퍼 하나 신고 이곳을 오르다니, 큰 박수받아 마땅한 일이다.
같이 온 사람들이 하나둘씩 하산하는데 여전히 그녀가 보이지 않는다. 이 나무는 지나왔으려나, 지금쯤은 도착해야 해가 완전히 지기 전에 숙소에 도착할 수 있을 텐데. 혹시 중간에 포기하고 돌아간 건 아닐까? 정상에서 만나기로 한 약속을 꼭 지키고 싶은 마음이 초조해진다. 그렇게 그녀를 기다리기를 두 시간, 반쪽이 된 얼굴로 함박웃음을 한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여기에요 여기!!!!! 나도 모르게 사자후를 쏘았다.
사이좋게 서로의 인증샷을 찍어주고 우리의 사진도 남겼다. 우리가 걸어온 길을 내려다보며 드디어 대화다운 대화를 할 수 있었다. 등산을 좋아하는 그녀는 일주일 이상의 일정으로 한국을 올 때마다 새로운 산에 도전하는 편이라고 했다. 한라산과 설악산은 물론이며 유명하다는 산은 거의 다 다녀왔다. 말레이시아에서 제일 높은 산인 키나발루산(4,192m)도 여러 번 등반한 적이 있기에, 그 절반 정도인 천왕봉(1,915m)은 좀 힘들기야 하겠지만 로퍼로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녀의 말을 듣고 있던 나는 잠시 입을 다물지 못했다. 와, 사람이 무엇을 기준 삼는지가 이렇게나 중요하구나! 서로에 대한 질문이 계속되었다. 이야기가 끝없이 이어질 것 같아 친구 어머니의 당부를 전하며 우선 하산하기로 했다.
그녀의 원래 계획은 등산을 마치고 숙소에서 짐을 챙겨 서울로 이동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숙소에 돌아온 그녀는 다리가 움직여지지 않는다며, 친구네 산장에서 하룻밤 더 지내기로 했다. 핼쑥한 안색을 하고 후들거리는 다리로 친구네 문턱에 발을 딛는 와중에도 연박을 하는 만큼 5천 원만 깎아줄 수 있냐고 미소를 띠며 흥정을 시도했다. 친구 어머니는 영어만 쓰던 외국인이 어눌한 한국말로 "사장님 까까 주세요" 하는 것은 난생처음 들어봤다며 흔쾌히 할인을 해 주셨다.
다음날 아침, 우리는 서로의 걸음걸이를 보고 웃음이 빵 터졌다.
우리는 이 덜덜거리는 다리를 천왕봉이 준 훈장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혼자 덜덜거리지 않을 수 있어 다행이라며 서로를 보고 웃었다.
그런 사람이 있다, 잠시 잠깐 함께했을 뿐인데 대화가 끊이지 않고 즐겁게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은 사람. 그녀는 나에게 그런 사람이었다. 덜덜거리는 다리를 하고 서로를 마주쳤을 때 우리는 눈곱도 안 뗀 채 부스스한 몰골로 편안하게 대화를 나누었다. 헤어짐이 아쉬워 연락처를 주고받았고 인연은 계속되고 있다.
나는 여행을 하며 만나는 사람들에게 그다지 호의적인 편이 아니다. 여행은 사람을 이상하게 만들기도 한다. 여행의 시간을 마치 괄호의 삶인 양 한국에서라면 하지 않을 선택들을 아주 쉽게 하는 사람들, 자신의 필요만을 우선으로 하면서 현지인이나 여행자들의 호의에 고마워할 줄 모르거나 마치 이것이 여행의 묘미인 것처럼 여기는 태도도 불편하다. 여행을 하면서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났지만, 이상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의 비율도 적지 않았다. 그래서 여행지에서만큼은 새로운 사람과 얽힐 일을 애초에 시작하지 않는 게 낫겠다 싶어 내가 먼저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일이 좀처럼 없다.
그런데 아주 오랜만에 내게 설득력 있게 다가오는 무모함을 그녀에게서 보며, 그녀가 궁금해졌다. 그녀는 어떤 일상을 보내기에 여행에서 이런 선택들을 할 수 있는 걸까?
그녀는 휴가 기간 외에는 그저 일만 한다고 했다. 첫 직장에서 미친 듯이 일만 하는 생활이 지긋지긋해서 조금 덜 일하고 싶어 옮긴 직장에서는 조금 미친 듯이 일한다고 했다. 가장 오래 연이어 근무한 시간이 첫 직장에서는 40시간이라면 두 번째 직장에서는 최고 기록이 24시간 정도이니 이 정도면 많이 편해진 것 아니냐며, 프랑스에서 일할 때보다 싱가포르에 있는 덕분에 한국을 더 자주 올 수 있는 것도 좋다고 했다.
그녀의 일 이야기를 들을 때면 회사를 다니던 시절 새벽 5시에 일어나 밤늦게까지 주중 내도록 일을 하고 주말이면 워크숍에 그룹사들의 행사에 불려 다니느라 일에 매몰되어 허우적거리던 때가 떠올랐다. 그때의 나는 시간만 나면 누워서 아무것도 안 하느라 바빴다. 몸을 뉘이면서도 마음은 뉘일 수 없었다. 하고 싶은 게 있지만 충분한 시간과 체력이 없구나 하는 신세한탄가를 끊임없이 재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녀를 보며 "이걸 하고 싶지만, 지금은 못하겠구나." 하는 단념 속에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마음'과 멀어지고 있던 나를 만날 수 있었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 앞에 물러서지 않는 그녀의 기개를 훔치고 싶었다. 그녀의 기개는 이런저런 이유를 내세워 일상에서, 여행에서 무언가를 하고 싶은 마음을 스스로 물리치는 나를 반성하게 했다.
그녀는 주말 없이 몇 주 동안 일하고 한국에 와서는 이천에 도자기를 배우러 간 김에 맛있는 한정식집을 발견했다며 사진과 좌표를 찍어 보내온다. 함께 재래시장에 들러 그 지역에서 나는 쌀을 살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었더니, 이제는 들르는 고장마다 그 지역산 쌀을 사서 인증을 한다. 그녀의 바쁜 일상으로 돌아가서 짬을 내어 한국산 쌀로 밥을 짓고 내 덕분이라며 고맙다는 인사도 잊지 않는다. 함께 젓갈 시장에 갔을 때 판매하는 젓갈 통 사이즈가 너무 커서 구입하기를 포기하는 줄 알았더니, 어디선가 작은 포장 용기를 여러 개 사 와서 주인과 흥정을 하며 젓갈을 종류별로 담아갔다. 쌀밥과 젓갈만 있으면 한 끼니 뚝딱이라며 말이다.
그녀는 이렇게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어떻게든 해 낼 방법을 찾고 일단 한다. 그래서인지 하고 싶은 일이 끊이지 않는 듯했다. 한국을 수십 차례 여행했으면서도, 아직도 한국에서 해 보고 싶은 것들이 자꾸 생긴다고 했다. 나는 그녀에게서 내가 원하는 것을 대하는 마음의 태도를 배웠다.
마음이란 귀를 기울이면 기울일수록
자기 이야기를 자꾸자꾸 들려주는구나.
내가 내 마음을 들어주지 않으면
어느 순간 말하기를 멈출 수도 있구나.
내 마음을 잘 듣자,
내 마음이 나에게 재잘거릴 수 있도록 하자.
그녀 덕분에 나는 내 마음이 원하는 것에 조금 더 열심히 귀를 기울이기로 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새롭게 시작하며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시기를 보낼 때,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구나!'하고 나의 내적 비명을 그녀에게 들려준 적이 있다. 그녀는 다음에 나를 만나게 되면 주려고 준비한 것이 있는데 지금 당장 필요할 것 같다며 택배로 부치겠다고 했다. 국제택배를 받아 든 나는 가슴이 뭉클했다.
그래, 오늘이 바로 그 날이야!
네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하기 위해
그토록 기다려 온 바로 그 날!
내가 왜 이걸 하고 싶다고 했을까 스스로가 원망스러워질 때가 종종 있다. 그럴 때면 이 글귀를 보며 그녀를 떠올린다. 로퍼를 신고 돌산을 오르며 정상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그녀의 얼굴은 항상 나를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