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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비 Dec 21. 2019

포르투갈 피쿠 섬 산책

2. 돌의 미학

포르투갈 아조레스 제도 여행

2019년 3월 25일 ~ 4월 11일


눈 떠지는대로 잠에서 깨서

내가 있는 곳을 체감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잠옷을 입은채로 집 밖을 나서서

나의 숙소인 라일라네 집을 둘러보았다.


4박을 하는 동안 참 편안하게 지냈던 라일라네 에어비앤비
집 뒷편엔 구름에 가렸다가 나타났다가 하는 피쿠산이, 집 맞은편엔 상 조르즈 섬의 전경이 펼쳐진다.


맑은 하늘에 빠르게 움직이는 구름을 보고 있자니

하루종일 쉬고 싶었던 마음 자리에

이 동네를 둘러보고 싶은 욕심이 들어선다.


피쿠 섬(Pico Island) 방문객들은

호텔, 항구, 각종 편의시설이 있는

마달레나(Madalena)에서 지내는 편이다.


내가 지낸 곳은

마달레나에서 12Km 정도 떨어져 있으며,

피쿠 섬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포도밭과

소규모로 전통 방식을 이어나가는 와이너리가 밀집한

산타 루시아(Santa Luzia) 지역이다.


덕분에 동네 산책만으로도

이 섬이 주는 특별함을 느낄 수 있었다.



집 밖을 나서자마자 펼쳐진

현무암 담을 쌓아 올려 만든 포도밭에

눈을 떼지 못한 채 바다로 계속 향했다.



안전한 길임을 안내하는 이정표를 따라

용암의 흔적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검은 해안가를 한참 걸었다.


바다와 가까워질수록 거세지는 바람과

온통 검은 풍경에

문득 두려움이 엄습하기도 했다.


이곳 역시 사람이 사는 곳임을 떠올리며

다시 마을로 돌아오니

저마다 다른 개성의 집들이 눈에 들어온다.



포르투갈의 메인랜드, 아조레스 제도, 마데이라 섬

모두 돌의 미학이 있지만

피크는 피쿠 섬이었다.


피쿠섬은

돌이 넘쳐 나는 곳, 사실상 돌만 있는 곳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의 사람들은

돌로 자신만의 시그니처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내가 나임을 표현하고 싶은 마음이

환경의 제한과 한계를

가뿐하게 뛰어넘는 곳을 걸으며,

만약 내 손에 쥔 것이 돌 밖에 없다면

나는 무엇을 만들고 싶을지 생각해보았다.


누군가는 포도를 길러낼 담벼락을 만들었고,

누군가는 자기 집을 그려내었다.


무채색, 편리함, 실용성이 전부인

다소 삭막한 나의 취향을

재고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피쿠 섬의 돌로 만든 키링을 간직하며,

나만의 색깔이 묻어나는

나만의 취향을 가져보고 싶다는 마음을

난생 처음 품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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