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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비 Jul 11. 2019

포르투갈을 세 번째 여행하는 두 여자의 리스본 근교여행

6. Cabo Espichel, Portinho 해변

2018년 2월~3월, 2018년 4월~5월, 2019년 2월~4월, 이렇게 세 번에 걸쳐 4개월 동안 포르투갈의 메인랜드, 마데이라 섬, 9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아조레스 군도에서 때로는 관광객으로 때로는 현지인들의 친구로서 그들의 생활을 여행했다. 나의 여행 기록이 포르투갈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그 애정이 깊어지는 계기가, 포르투갈 여행을 앞두었거나 고민 중인 사람들에게는 용기와 응원이 되었으면 한다.


https://brunch.co.kr/@gagoganda/3
포르투갈을 세 번째 여행하는 두 여자가 만나면 편에 이어서 씁니다.


아침 일찍부터 부지런을 떨었다. 언니가 렌트한 차를 타고 세투발(Setubal)을 목적지로 중간에 여러 군데를 둘러보기로 했기 때문이다. 언니와 나의 포르투갈 여행 취향뿐만 아니라 만남의 모든 역사를 알고 있는 숙소 호스트인 안토니오의 세심한 오지랖 덕분에, 저절로 루트가 완성되었다.



전날 언니를 기다리며 장을 봐 둔 덕에 간단한 아침 한 끼를 차릴 수 있었다. 별 것도 없는 한 접시였지만, 내가 딱 좋아하는 스타일이라며 맛있게 먹어주는 언니가 참 고마웠다. 언니는 사소한 것에도 고마움을 느끼며, 그것을 꼭 표현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언니와 함께 하다 보니 그동안 이곳에서 당연하다고 느꼈던 것에서도 고마움을 발견하고, 고마운 마음을 더 많이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덕분인지 우리의 여정엔 고마울 일이 계속 생겼다.



리스본 혹은 리스본 근교에서 사람들이 많이 가는 곳을 조금만 비껴 나도 고즈넉한 길이 펼쳐진다. 유럽의 최서단인 까보 다 호카(Cabo da Roca, 호카곶)에 밀려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두 번째 서쪽 끝인 까보 에스피셜(Cabo Espichel)로 향하는 길이 그러했다. 맘에 드는 곳이 있으면 잠시 둘러보기도 하며, 자연이 주는 평화로움을 충분히 만끽하며 이동했다.



까보 에스피셜의 주차장에 도착하니 독특한 스타일이 묻어나는 오토바이(?) 한 대만 정차되어 있었다. 이 오토바이의 주인공이 궁금했지만 주변을 둘러봐도 보이는 사람이 없었다. 고양이 입과 도마뱀, 자기가 좋아하는 걸로만 꾸민 오토바이를 타고 이곳까지 오는 길은 또 얼마나 좋았을까.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우리는 각자가 원하는 곳을 향해 자신만의 속도로 이곳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오른편엔 포르투갈 최대 길이를 자랑하는 카파리카(Caparica) 해변이 하늘과 바다의 경계를 알 수 없는 황홀한 모양새로 펼쳐져 있었다.



땅 쪽으로 움푹 파여 절벽으로 둘러싸인 해변이 내려다보인다. 웅장한 파도소리가 에코와 함께 울려 퍼지며 난생 처음 들어보는 장엄한 소리를 내었다. 어딜 둘러봐도 인파를 피할 길이 없는 호카곶과 다르게 인적이 드문 곳에서 만난 거대한 절벽과 마주한 대서양의 위용에 문득 두렵기도 했다.



해안가의 절벽을 따라 난 풀 숲 길을 걸으며 등대를 향해 걸었다. 온몸으로 바람을 막아내야 했지만, 호카곶의 자비 없는 바람과는 달랐다. 날씨가 좋은 덕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한참을 더 둘러보다가 덩그러니 남겨진 수도원이자 교회였던 곳을 지나 커피 한 잔을 위해 카페에 들렀다.



베이커리가 꽤 여러 종류 있었고 식사도 할 수 있는 곳이었다. 점심을 제대로 먹기 위해 빵을 향한 열정을 누르고 눌러서 딱 하나씩만 골랐다. 그래도 뭔가 아쉬움이 남아 연신 사진을 찍어댔다.



포르투갈어로 말하는 우아한 백발의 여인이 손짓을 해가며 우리에게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 듯했다. 사진 찍는 우리를 열심히 흉내 내고 운전대를 잡다가 손사래를 치는 중간에 Policia란 단어가 귀에 박혔다. 너네 여기서처럼 요란하게 사진을 찍으며 운전을 하다가는 큰일이 난다는 뜻으로 이해했다. 우리가 어렴풋하게나마 알아들은 걸 눈치챈 그녀는 염려를 거두고 조금 더 온화해진 미소로 우리를 바라보았다. 무이또, 무이또, 무이또 오브리가다! 하고 우릴 향한 그녀의 인심 좋은 마음 씀씀이에 화답했다.


다시 여전히 한가로운 길에 들어서서 아라비다 국립공원으로 향한다. 이 인근엔 크고 작은 해변들이 많지만, 안토니오는 주차하기 편하고 둘러볼만하면서도 한갓진 바닷가로 포티노(Portinho) 해변을 추천해주었다. 포티노 해변으로 가는 중에 패러 글라이딩을 하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는 언젠가 한 번은 패러 글라이딩을 해 보고 싶다며, 그 날이 오게 되면 날씨가 오늘만 같아도 참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어찌 된 일인지 포티노 해변에 가까워지면서 패러 글라이딩을 하는 사람들도 더 가깝게 보였다. 도착하고 나서 보니 포티노 해변은 패러 글라이딩을 하는 사람들의 랜딩 장소이기도 했다. 언니와 나는 코평수가 넓어지며 씰룩거리는 광대를 하고선 눈이 마주쳤다. 그 언젠가가 오늘이 된다면 어떨까! 마음이 통했다.


우리는 세투발에 가서 지역 명물인 초코 프리토(Choco Frito, 대왕 오징어 튀김)를 점심으로 먹고, 공원에서 산책도 할 참이었지만 눈앞의 패러 글라이딩에 동시에 마음을 뺏겼다. 부리나케 업체를 알아보고 전화 연락이 닿은 업체와 오후에 만날 약속을 잡았다.


와, 우리 진짜 하는 거 맞아요? 한다. 같이 하기로 했다. 얼떨떨한 기분과 함께 순식간에 허기가 몰려와서 식당을 찾았다. 주차장과 가까운 식당은 화장실을 이용할 수 없다는 공지가 출입문에 붙어 있어 왠지 야박하게 느껴져서 지나쳤다.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니 바다는 더 가깝고 덜 붐비는 식당이 있어 자리를 잡았다. 메뉴판에서 초코 프리토를 보니 반가웠다. 세투발에서 먹는 것과 같을 순 없겠지만, 갑작스러운 계획 변경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염두하고 있었던 미션 하나를 해치울 수 있게 되다니!



이것이 나 혼자 하는 여행이었다면 식당에서 메뉴 주문을 하고 한참을 기다려야 하는 그 시간 동안 나의 허기에 집중하거나 주변의 사람들을 둘러보며 무슨 사연이 있을지를 상상해 봤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언니와 함께 포르투갈의 색깔로 가득한 아라비다 국립공원과 맞닿은 포티노 비치의 나는, 이 순간 속에 진정으로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호흡을 가다듬고 주변을 돌아보니 문득 내가 앉아 있는 이 곳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과 포르투갈 특유의 초록 빛깔의 산, 따뜻한 햇살 속에 조금은 쌀쌀하게 불어오는 바람을 바다 안에서 여유로이 누리는 몇몇의 사람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는 언니와 나. 한눈에 다 담을 수 있을 거라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것들에 둘러싸여 있음을 언니와 나누면서 감격스러움이 더 벅차오르기도 했다


무언가를 해 보고 싶어 너무나 못 견디겠는 이 충동은 또 얼마만인지, 여러 번 재지 않고 곧바로 충동을 행동으로 옮기는 용기를 부리며 느낀 이 신남은 무엇인지,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 언니와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강력하게 자기주장을 하는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 그저 나를 놓아두었다.


원하는 것을 하기 위해서는 오랜 준비와 흔들림 없이 목표로 향할 수 있게 하는 계획이 필요하다 생각하며 여기에 참 충실하게 살아왔던 나 자신이 가련하게 여겨지기도 했던 순간이었다. 어느새부턴가 나의 하루는 오늘, 지금, 당장이 아닌 그 언젠가의 내일을 위해 견뎌내야 할 것을 인내하며 사는 것으로 채워졌으니까.


열심히 살았던 매일의 삶이 후회되진 않는다. 그 시간들이 있었기에 지금 이렇게 흘러가는 대로 나를 내맡겨둔 작은 사건에도 극도의 흥분을 감출 수 없는 소박한 내가 될 수 있었던 건 아닐까. 다만 앞으로는 꼭 여행이 아니라도 내 일상에서 내 마음이 "지금, 당장" 원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에 귀를 기울이는 시간을 더 자주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쉴 새 없이 재잘거리며 부드러운 오징어 튀김과 구운 파프리카를 곁들인 샐러드로 든든하게 식사를 마치니, 어느새 패러 글라이딩 업체와의 약속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https://brunch.co.kr/@gagoganda/9
포르투갈에서는 패러 글라이딩을 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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