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이 되니까 쓸 게 정말 없다
어느 평화로웠던 아침이 생각난다. 나는 텔레비전을 틀었고, 헌법재판소의 풍경이 그 텔레비전 안에 나오고 있었다. 재판관은 너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판결문을 읽었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 ‘파면한다’라는 말이 나왔을 때, 나는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것인가 싶었다. 그때로부터 작년 말에 대통령이 국정운영을 같은 정치인이 아닌 엉뚱한 민간인과 하면서 그 사람에게 특혜를 몰아주고 있었다는 증거들이 나왔다. 증거는 명백했고 대통령은 국회로부터 탄핵소추안이 가결되어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파면’. 즉 탄핵 성공이었다.
그 후로 6년이 흘렀다. 대선에서 아슬아슬한 표차로 윤석열이 대통령이 되었다. 당시 나는 아이 어린이집 등하원을 자차로 하고 있었는데, 오가는 길에 듣는 뉴스 때문에 머리가 아파서 결국은 라디오를 듣지 않게 되었다. 그 내용은, 인수위가 기존 정부였던 문재인 정부의 말을 전혀 듣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물론 새 정부가 기존 정부의 말대로 할 필요는 없지만, 아무리 마음에 안 들어도 어디까지 일을 했는지, 어떤 일을 추진했는지는 알아야 할 필요는 있다. 그런데 윤석열 정보는 전혀 그런 정보에도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있었다. 나는 대체 새 정부가 어떻게 되려나 걱정이 태산이었다.
2년이 흐르고, 아직 3년이나 남았다고 생각할 무렵 아닌 밤중에 날벼락인 사건이 일어났다. 계엄령이 선포가 된 것이다. 다행히 국회가 신속하게 모여서 6시간 만에 계엄령은 없던 일이 되었지만 계엄을 그가 하고자 했던 것들이 속속들이 밝혀지면서 나날이 경악할만한 뉴스 거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전에도 탄핵을 부르짖던 사람들은 있었으나, 계엄령 이후 전국적으로 사람들이 들불처럼 일어나 촛불을, 아니 응원봉을 들었다. 웹툰 작가인 나의 대학 선배는 ‘전국김치싸대기연합’을 만들어서 윤석열이 김치 싸대기를 맞는 그림을 그린 깃발을 높이 들고 집회에 나갔다. 갖가지 깃발과 촛불과 응원봉이 함께 한 집회는 나날이 계속되었고 결국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되었다.
정치적인 발언을 주로 하는 한 유투버가 윤석열과 그와 대선에서 맞붙었던 정치인을 비교하면서 한 말이 인상에 남았다. 윤석열은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 대선에 나갔지만, 그 정치인은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것을 위해서 대통령이 되고자 한다고 했다. 그 정치인이 이루고자 하는 것은, 서민들이 경제적인 압박으로 인해 점점 상황이 나빠지는 선택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 정치인은 300만 원 대출을 은행에서 아무 조건 없이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힘 있는 사람, 예를 들면 시장이나 대통령 같은 이들이 보증이 되어야 하는데 그것을 위해 대선에 나왔다고 했다. 서민들은 300만 원 때문에 사채를 쓰거나 하는 등의 최악의 선택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은행에서는 서민들에게 결코 조건 없이 그만한 돈을 빌려주지 않는다. 그러한 서민을 살리기 위해 바로 정치가가 필요한 거라고, 그 정치인은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니 윤석열은 대통령이 되면 ‘대통령이 되었다!’고 하면서 대통령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볼 수 있겠지만(그것이 계엄이라도), 그 정치인은 제가 목적한 바를 위해서 대통령이라는 자신의 지위를 걸 것이다. 설사 대통령이 되지 않았더라도, 그 정치인은 제가 할 수 있는 한계 안에서 목적한 바를 이루려고 할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사람들은 누구를 대통령으로 뽑아야 할까. 만약 그 유투버의 말이 옳다면 더 생각해볼 것도 없이 후자다.
정치라는 것이 워낙 단순한 것이 아니고 이런저런 이해 관계가 얽혀 있어 쉽지가 않다. 하지만 적어도 한 나라를 이끌어 가는 사람이라면, 어떤 지위 자체를 목적한다기보다는 그보다 큰 꿈과 야망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세종대왕은 왕의 업무도 바쁜데 한글 창제에 누구보다도 큰 힘을 쏟아서 아직까지 그 공으로 우리가 편히 한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정조는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숙적들과 함께 정치를 했으나 오로지 민생 안정을 위한 개혁을 하기 위해 그들과 손을 잡았다. 왕이 아니라도, 이순신은 제가 역적으로 모함을 받는 상황에서 일본으로부터 조선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고 일제강점기에 그 수많은 이름 없는 독립운동가 역시 조선을 위해 제 목숨을 걸었다.
그 유투버가 말한 것이 진실이든 거짓이든, 나 역시 그가 말한 300만 원 대출을 해주기 위해서 정치인이 되어야 겠다는 그런 마인드로 살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그런 마인드로 사는 사람들 곁에 있고 싶다. 나날이 정치는 어지러워지고 복잡해지는데, 그 속에서 마음을 더 단단히 해야 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