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오늘도 꾸역꾸역
“광주는 계엄 소리 듣고 한숨도 못 잤어요. 거기는 그래요.”
작가 모임에 갔다가 우연히 옆자리 앉은 작가가 광주에서 올라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침 계엄이 있고 얼마 되지 않은 때라 상황을 물으니 그렇게 이야기를 했다. 확실히 광주는 서울과는 ‘계엄’이라는 말에서 오는 그 느낌이 다른 듯했다.
“우리는 중고등학교 때 5.18 관련해서 자주 소풍도 가고 그래요. 그래서 다 알고 있어요.”
“그래요? 나는 대학 때나 알았는데.”
내가 중고등학교 때는 이미 광주 민주화 운동이 알려진 때였으나, 그럼에도 나는 그것에 대한 교육을 깊이 접하지는 않았다. 학교에서 언급을 해도 간단히 하고 지나가는 정도였기에, 그것이 그토록 엄청난 일이었는지는 잘 몰랐다. 5.18에 대해서 자세히 알게 된 것은 대학 때였다. 수업 시간에 관련된 과제가 있어서 관련 도서를 집에 빌려왔는데, 엄마가 그것을 보고 식겁했다.
“너, 이런 거 보면 잡혀가.”
“이거 학교 숙제야.”
나는 웃으며 말했다. 그것은 커리큘럼에 있었고, 도서관에는 5.18에 대한 책이 차고 넘치게 많이 있었다. 그럼에도 엄마는, 5.18에 대해서 엄중히 단속했던 공포가 아직도 남아 있었던지 이미 민주화가 된 상황에서도 걱정을 했던 것이었다.
내가 5.18을 좀 더 생생하게 느낀 것은 결혼을 하고 나서, 우연히 남편과 함께 광주로 방문을 했을 때였다. 5.18 희생자들의 묘비를 보면서, 5.18을 알리고 전하는 기념재단에 가서 이런저런 설명을 들으면서, 그곳에서 나와 남편의 직업이 교사(당시에는 나도 교사였다)임을 밝히자 공짜로 dvd와 여러 시각 자료들을 주는 것을 받으면서, 그리고 한 식당에 들어가 이야기를 나누다가 5.18에 대해 묻자 줄줄이 나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5.18이 끝나지 않았고 여전히 광주 사람들에게는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일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 후 <택시운전사>와 같은 영화, <오래된 정원>과 같은 소설책, 그리고 기념재단에서 받은 dvd자료와 다큐 등을 보면서 5.18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역사였는지를 알게 되었다. 한 사람이 대통령이 되고자 계엄령을 선포하고 수많은 민간인을 죽인 이 잔혹한 사건을, 아직도 광주 사람들은 잊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 그들에게, 2024년 12월 3일의 계엄은 어떻게 다가왔을까. 다시 민간인을 사살하고, 그저 광주에 방문했다는 이유로 잡아가서 고문하고, 평화를 바라는 대학생들을 잡아 가두는 그런 날이 또다시 왔다며 절망하지 않았을까.
계엄을 선포한 대통령은 결국 국회의 탄핵소추안 가결로 직무 정지가 되었다.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남긴 했지만, 그럼에도 어려운 한 걸음을 뗀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가결되었음을 알리며 우원식 국회의장은 이런 말을 했다.
“저는 이번 12·3 비상계엄 내란사태를 겪으며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하고 싶습니다. 1980년 5월이 2024년 12월을 구했기 때문입니다.”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은 한강 작가가 그로부터 얼마 전에 있었던 노벨문학상 수상 소감 중에 한 말이었다. 한강 작가는 5.18을 소재로 한 <소년이 온다>라는 작품을 썼다. 그 작품을 쓰면서 한 질문이 바로 그것이었다고 했다. 5.18을 겪은 이들과 그들에게서 배운 이들은 생명의 존엄성이 짓밟힌 상황, 군인들이 민간인들에게 총을 겨눈 상황, 국가가 국민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죽이는 상황이 다시는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12월 3일 밤이 지나고 다시 마음에 열망의 촛불을 켰다. 이런 대통령을 더는 그 자리에 두어서는 안 된다는 바람이 전해져 결국 탄핵소추안 가결이라는 한 걸음을 뗄 수 있게 되었다.
유시민 작가가 유투브에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들었다.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것은, 하나도 공짜로 된 것이 없다는 것, 누군가의 피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것. 즉 과거는 지금도 계속 현재를 구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지금은 다시 광주로 돌아갔을 그 작가를 떠올렸다. 그리고 우리의 현재를 구한, 그 광주에서 살았고 무참히 세상을 떠나거나 아직도 그 기억이나 상처로 고통 받고 있는 수없는 사람들을 떠올렸다. 그들에게 우리는 빚을 졌다. 그리고 우리가 구한 현재는, 또 다른 미래를 구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바람을, 열망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