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가 힘들어요
아이는 종종, 내 말을 대놓고 듣지 않을 때가 있다. 얼마 전에 목욕을 시킬 때였다. 샤워기로 아이의 몸 구석구석을 훑는데, 아이가 제 몸에 떨어진 물을 두 손에 받았다. 그러고서는 그 물은 제 입으로 가져가 홀짝홀짝 마셨다. 몇 번 그런 모습을 본 적이 있어서 나는 바로 이야기를 했다.
“마시면 안 돼.”
내 말을 얼른 들을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경고를 했으니, 잠시 멈추어줄 줄은 알았다. 왠걸, 아이는 내가 보란 듯이 또 손을 오묵하게 해서 물을 받고는 그것을 입으로 가져가 홀짝홀짝 마셨다. 그런 모습이 내게는 이렇게 말하는 것으로 들렸다.
‘바보 엄마. 내가 이렇게 해도 아무 말 못 하지? 약오르지? 메롱이지?’
순간 내 안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왜 이 아이는 대놓고 그 행동을 또 하는 것일까. 나를 놀리는 것일까. 내가 때리거나 화를 내지 않으니 만만하게 보는 것인가. 아이가 정말로 그랬건 그러지 않았건, 내 안에서 상상으로 만든 아이는 내 가슴을 창으로 푹푹 찔러댔다. 나는 더 참을 수가 없었다.
“알아서 네가 씻고 나와.”
나는 샤워기를 내려 두고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혼자 남겨진 아이는 묵묵히 있다가 뭐라뭐라 소리를 질렀고, 저녁 준비를 하던 남편이 그런 아이에게 달려갔다.
“왜 엄마 하지 말라는 걸 해.”
“나 이제 물 안 마실 거야. 정수기 물도 안 마실 거야!”
자신이 잘못한 것은 조금도 깨닫지 못한 채, 아이는 나에 대한 원망만 품었다. 마음을 겨우 다스린 후, 아이에게 다시 온 나는 몸에 물기를 닦고 옷을 입는 것을 도왔으나 아직 화가 다 풀린 것은 아니었다.
아이는 밥을 먹으면서도 고집을 부리며 끝끝내 물을 안 먹겠다고 했다. 정말 저 아이 뒤통수 한 대 때리고 지옥 가겠습니다! 라고 소리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물론 애 뒤통수 때렸다고 지옥을 간다면 이 세상에 지옥 안 갈 부모가 없겠지만 말이다. 저 아이는 어떻게 생겨 먹어 저 모양일까. 왜 하지 말라면 더 하면서 제가 잘못한 건 모른단 말인가. 정말이지 너무 미워서 다시는 안 보고 싶다.
그러고 있는데 내 눈에 한 책의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그럼에도 육아’. 예전에 산 정지우 작가님의 책이었다. 이 책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 꼭 저 초월적인 존재가 나를 향해 말을 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럼에도 육아는 해야 한단다.’ 부글부글. 싫다고. 나는 육아가 적성에 맞지 않다고. 특히 저런 청개구리 같은 아이와는 정말로 상성이 맞지 않다고!
최민준TV를 본다. 최민준TV는 아들을 키우는 이들을 위한 유투브다. 아들에 대한 다양한 사례 속에서의 대처 방법을 최민준 소장은 재치있게 설명해 준다. 어느새 나는 최민준TV를 보면서, 최민준 소장의 대처법이 아니라 그 대처법에 공감하는 어머니 청중들을 더 눈여겨 보게 되었다. 우리 아이와 똑같은 모습을 설명할 때 여기저기서 튀어나오는 탄성들. 그것을 보면서 나는 용기를 가지게 된다. 그래, 우리 아이만 그런 건 아니었어, 하는 그런 생각. 그러니 내 아이가 저런 것은 내 탓만은 아니야, 하는 깨달음.
내가 하지 말라고 했음에도 아이가 물을 마신 것은, 최민준 소장에 따르면 ‘내가 이걸 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하는 생각 때문이라고 한다. 그것을 알아도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아이의 생각이 내가 상상하는 것과는 다르다는 것만 알아도 진일보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은 든다. 어쨌든 ‘그럼에도’ 나는 육아를 해야 한다. 아이가 이해가 가지 않아도, 영 나와는 딴판이라도, 때로는 부글부글 화가 날 때도 나는 아이의 엄마로 있어야 한다. 육아는 늘 행복하고, 감사하고, 뿌듯한 것은 아니겠지만 어쨌든 누군가의 의무이긴 하다.
“엄마.”
“응.”
“나는 엄마가 좋아.”
“응.”
“엄마는 나하고 아빠 중에서 누가 좋아?”
(이건 보통 엄마 아빠 중에서 누가 좋냐고 애한테 묻는 질문이 아니었던가)
“둘 다 좋지.”
“내가 더 좋다고 말해줘.”
“네가 더 좋아.”
“나도 엄마가 더 좋아.”
“그래도 아빠도 좋지.”
“아빠도 좋은데 엄마가 더 좋아.”
잠자리에서는 아이가 다른 아이가 된 채로 내 품을 파고든다. 다른 쪽을 보고 누워 있으면 어깨를 똑똑 치고는 저를 보고 자라고 한다. 귀엽고 동글동글한 얼굴에 미소가 어리면 나도 모르게 그 볼과 코에, 입술에 뽀뽀 세례를 쏟아내곤 한다.
육아는 행복하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하고 우울하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한다. 하루하루 날씨가 변하는 것처럼 육아의 날씨도 매일매일이 다르다. 그렇게 나와 아이는 자라고, 아이는 점점 어른처럼 키가 커진다. 그리고 나도 점차로 어른이 되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