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결혼 생활이 힘들다
사람이라는 것은 좋은 면이 있고 나쁜 면이 있다. 그런데 관계에서는 좋은 면보다도 나쁜 면이 거슬리지 않으면 된다고들 한다. 남편은 좋은 점이 참 많은 사람이지만, 치명적인 단점도 있다. 그것 때문에 나는 하루에 무려 두 번이나 이혼을 생각했다. 바로 오늘 일이다.
일단 남편도 나도 컨디션이 아주 안 좋았고 아이는 독감에 걸려 열이 나고 있었다. 아픈 아이가 으레 그렇듯이 아이는 짜증을 많이 냈고 고집도 부렸다. 그런 상황에서는 서로 다툼이 일어날 수 있으므로 조심해야 한다. 그런데 남편이 내가 설거지감을 설거지통에 넣은 것을 보고 화를 냈다. 김칫국물이 안에 튀었단다. 나는 이해를 할 수 없었다. 어차피 설거지를 할 것이 아닌가. 어차피 씻을 그릇인데 뭐가 문제일까. 나는 내가 설거지를 하겠다고 했고 남편은 ‘그래!’라고 큰 소리로 화를 내고는 가 버렸다. 설거지를 내가 하겠다는데 그게 왜 화를 낼 일인지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냥 나에게 화풀이를 한 거나 다름이 없었다.
그래도 잠시 후에 톡으로 짜증내서 미안하다는 말을 해왔다. 나는 짜증내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서로 예민한 시기였다. 아이는 어릴 때 잦은 부부 싸움을 보고 자란 덕인지 불안도가 높은 편이었다. 게다가 아이가 아프다. 제가 아플 때 부모가 싸우는 것을 보는 기분은 어떨까. 아빠가 언성을 높이는 것을 보는 기분은 어떨까. 남편이 그러겠다고 해서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그렇게 오늘이 잘 끝나는 듯이 보였다.
밤 열두 시. 아이의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더 깊이 잠들기 전에 해열제를 먹이고 재워야 겠다고 생각하고 부엌으로 갔다. 마침 거실로 나오던 남편이 나보고 말했다.
“왜.”
“해열제. 들어가.”
나는 간단히 말하고 나서 약병을 찾아 해열제를 부었다. 해열제는 한 포가 6미리였고 아이는 적어도 8미리 정도는 먹어야 했다. 그래서 6미리를 다 붓고 나머지 2미리를 다른 해열제를 뜯어서 부은 후에 집게로 봉했다. 그랬더니 남편이 또 물었다.
“왜, 뭐 하는 거야?”
잘 모르겠다. 이럴 때 다른 사람들은 남편이 이렇게 관심 가져주고 참견을 해줘서 좋아할까. 혼자 하기 외로웠는데 이렇게 말 붙여주어서 좋아할까. 남편은 자신의 이런 태도가 나에게 관심을 주는 것이라고 말하곤 했다. 하지만 나는 정말로 싫었다. 관심을 주는 것이면 차라리 더 밝게 긍정적으로 주어야지, 이렇게 책망하듯이 다그치듯이 할 필요가 있을까.
“해열제 먹인다고.”
“그런데 왜 집게를 꺼내는데?”
“막아두려고 그런 거야.”
“그러면 작은 용량으로 샀어야지.”
“작은 용량으로 샀어. 6미리밖에 안 되어서 2미리 더한 거야.”
나는 대체 왜 이걸 남편에게 ‘보고’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빨리 해열제를 가지고 가서 먹이고 나도 쉬고 싶은데, 어떤 남자의 ‘알 권리’ 때문에 발이 묶인 것이 짜증스러웠다. 더 화가 나는 것은, 내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시종 책망하는 듯이 말하는 그의 말투였다.
“6미리 먹여도 돼. 6미리 먹여도 된다고!”
남편은 답답한 듯이 말했다. 왜 8미리 먹여야 하는 애를 6미리를 먹여도 되는지 그 이유도 없었다. 그냥 그렇게 말했으니 따르라는 것인지. 안 그래도 밤새 아이를 볼 생각에 긴장을 단단히 하고 있던 나는 순간 화가 폭발하는 것을 느꼈다. 밤이 아니었다면, 아이가 자고 있지 않았더라면 나는 고함을 질러댔을 것이다. 정말이지 금방이라도 머리 뚜껑이 열려 버릴 것 같았다.
“제발, 내가 애 보는 거니까 나한테 맡겨.”
“6미리만 먹여도 된다고.”
“내가 알아서 한다고. 들어가라고.”
“6미리만 먹여도 된다고 내가 말해주는 거잖아.”
나는 오래지 않은 날에 비슷한 상황에서 충돌이 있었던 것을 떠올렸다. 때는 내가 아이를 씻기고 있을 때였다. 아이가 얼굴을 씻다가 짜증을 냈는데, 그 소리를 들은 남편이 욕실로 왔다. 그러면서 나한테 머리를 감길 때 아이의 머리를 젖히고 감기라고 했다. 나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나가라고 했지만 남편은 계속 제 고집만 부렸다. 결국 나는 버럭 화를 내며 샤워기를 던지고 욕실을 나가 버렸다. 그러고 나서 이불을 덮고 엉엉 울었다.
그날에 비하면 오늘의 나는 승리자였다. 남편이 떼쓰듯이 고집을 부리는 것을 보고도 끝까지 화를 내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화는 나서 매우 씩씩거렸으나 방에 돌아와 아이 해열제부터 먹이고 콜록콜록 기침을 하면서도 이 글을 쓰고 있다. 그리고 남편에게 장문의 카톡도 보냈다. 남편의 잘못을 조목조목 밝히며 행동의 변화를 촉구하는 내용의 카톡이었다. 남편은 십중팔구 카톡 내용을 제대로 읽지도 않고 미안, 이라고 보내고 말 것이지만. 그래도 내 속이라도 풀리라고 보낸 카톡이었다.
그리고 이 글을 쓰면서 한 가지 방법이 떠올랐다. 남편의 행동은 아무리 생각해도 어린아이의 행동이라고밖에 해석이 안 된다. 상대를 존중하고 대화를 하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 자기가 옳다고 밀어붙이는 것은 우리 아이나 하는 행동이다. 그래서 다음에 남편이 또 그러면, 나는 아이에게 하듯이 한 번 해보려고 한다. 성공을 할 지 안 할지는 모르겠지만.
“왜. 뭐하는 거야?”
“해열제 먹이려고.”
“집게는 왜?”
“남아서 한 거야.”
“6미리 먹여도 돼. 집게 안 써도 된다고.”
“그래. 그런데 나는 8미리 먹여야 된다고 생각해서 그랬어.”
“그냥 6미리 먹여도 돼.”
“그런데 나는 8미리라고 나와 있어서 8미리 먹일 거야. 이건 내가 할 일이니까 그만 들어가 줄래?”
“6미리 먹여도 된다고. 왜 날 안 믿어?”
“그럼 선택할래? 당신이 해열제 먹이든지. 그러면 6미리를 먹이건 8미리를 먹이건 상관 안 할게. 나한테 해열제 먹이라고 했으면 나를 믿고 맡겨줘. 어차피 8미리를 먹여도 큰일은 안 나잖아.”
“아니 6미리를 먹여도 된다고 말하는 거야. 앞으로 6미리 먹여.”
“나는 8미리 먹인다고 말했고, 6미리를 굳이 먹여야 한다면 직접 먹이라는 선택권을 줬어. 그런데도 계속 그렇게 말을 한다면 나는 더는 당신 말을 안 들을 거야.”
“6미리 먹여. 6미리 먹이면 되잖아.”
“나는 내 입장 충분히 설명했고 이 이야기는 끝났어. 더 이야기를 하면 내가 소리를 지를 건데 괜찮겠어?”
“6미리...”
“야!”
다음에는 한 번 실천해 보고 그 결과를 가져와 보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