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크리스마스 선물

메리 크리스마스!

by 나무나비

몸이 계속 안 좋더니 급기야 열이 났다. 밤마다 열이 39.5도까지 올라서 이러다 죽는 거 아닐까 하고 공포에 떨었다. 열이 나고, 두통이 옅게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몸이 두들겨 맞은 것처럼 아프거나 하는 다른 증상은 전혀 없었지만 온도계에 찍히는 믿을 수 없는 숫자를 볼 때마다 나는 내 몸의 단백질이 열에 굳어가는 상상을 했다. 뇌의 단백질마저 굳어버리면 나는 그대로 시체가 될지도 모른다.


처음 열이 나고 나서 그 다음 날은 집 근처 병원에 갔는데 독감 검사 결과 음성이 나왔다. 기침약만 받아 온 나는 그날 밤에도 고열이 나자 더 무서워졌다. 그래서 집 근처에 있는 종합병원에 갔다. 집 근처라고 하지만 거리가 약간 있어서 셔틀 버스를 탔다. 자차로 가면 6분 정도 걸리는데, 문제는 주차장이라 베테랑 운전자들은 문제가 없겠지만 3년째 초보 딱지를 붙이고 다니는 나는 너무나 무서웠다. 특히 다음 층으로 올라가는 경사로에서 맞은편 차를 맞닥뜨리면 등줄기로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종합 병원에서는 바로 엑스레이부터 찍었다. 검사를 하고 진료실로 들어가니 의사는 내 폐 사진을 들여다보며 폐는 이상이 없다고 했다. 밤마다 39도가 넘는 고열이 난다면 폐렴 아니면 독감인데, 내 증상은 아무래도 독감이 맞는 것 같으니 독감 주사를 맞거나 약을 먹으라고 했다. 검사 결과 음성이었다고 했으나 초기에는 그럴 수 있다고 답했다. 그것은 동네 병원에서도 들었던 말이었다.


주사를 선택했던 것은 간단하고 빨리 끝나는 데다 증상이 빨리 사라질 것을 기대해서였다. 보험이 되지 않아 좀 비싸긴 하지만 실비 보험에 가입되어 있으니 거기에서 보상을 받으면 될 것 같았다. 그러나 주사는 내가 생각하는 간단한 주사는 아니었다. 누워서 링거처럼 맞는 주사였다. 따끔한 감각과 함께 팔에 주삿바늘이 들어갔다. 누워 있는데 나른한 느낌이 들면서도 잠은 오지 않았다. 그렇게 30분이 지나고 나서 병원을 나왔다.

집에 오니 열이 완전히 떨어졌다. 이렇게 독감이 떠나간다고 생각하니 왠지 아쉽기도 했다. 주사 한 방에 이렇게 쉽게 헤어지는 그런 사이였나, 우리가. 하지만 독감도 아쉬운 듯이 그날 밤에 열이 살짝 올랐다. 38도 넘어까지 오르길래 긴장했는데, 주사약이 선전해준 까닭인지 다시 체온은 떨어져서 37도 언저리가 되었다. 전날 밤에는 39.5도까지 체온이 오르던 몸이라 이 정도만 해도 감사했다. 독감도 그냥 헤어지기는 찜찜했는지 그렇게 마지막 작별 인사를 고했다.


그렇게 얼추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아이가 열이 올랐다. 남편에 이어 나, 그리고 아이다. 한꺼번에 아프지 않아서 그래도 다행인지. 독감은 가려면 그냥 가지 왜 굳이 아이에게 들렀다 가는지. 다행히 아이는 언제나처럼 씩씩하고, 해열제는 잘 듣는다. 12월 25일, 온 세상이 반짝이는 성탄절에 우리 가족은 그렇게 집에 갇혀 있다. 아무래도 올해는 산타 할아버지가 아주 지독한 선물을 하고 간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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