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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나비 Dec 27. 2024

예비소집일에 다녀왔다

내년에 드디어 초등학생!

아이는 내년에 여덟 살. 초등학교에 입학한다. 초등학교 입학 전 예비소집일이 있어서 아이와 아빠, 그리고 내가 함께 아이가 입학할 초등학교에 갔다. 예비소집일이 처음인 나는, 강당 같은 데 모여서 재학생 공연도 관람하고, 선생님들이 부채춤도 춰 주고, 교장 선생님이 함께 잘 해보자는 의미에서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을 부른 후에 학교 소개 영상을 보게 하고 질의 응답 시간을 충분히 가진 후 마치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학교의 예비소집일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예비소집일’이라고 화살표 방향이 가리키는 공간에 들어갔더니 책상이 길게 가로로 배치되어 있고 봉투가 쌓여 있고 명단 같은 것이 그 옆에 있었다. 그리고 선생님으로 보이는 사람이 네 사람 정도 앉아 있었다. 선생님은 아이를 보고는 이름이 뭐냐고 했다. 아이가 제 이름 석 자를 정확히 말하자, “똑똑하네.”라고 하면서 봉투를 주었다. 꽤 두툼한 봉투였다.     


예비소집일은 그것이 끝이었다. 봉투를 받자, 돌봄 교실을 신청하려면 1월에 해야 한다고 설명을 한 후에 학교를 자유롭게 둘러보고 가라고 했다. 강당의 부채춤 공연 따위는 없었다. 아이까지 꼭 데려오라고 한 것은 아이가 제 이름 정도는 말할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함인 것 같았다. 독감 때문에 아직 몸이 힘들어서 그냥 집에 가자고 하고 학교를 나오자 주변의 태권도와 피아노 학원, 영어 수학 학원 등등에서 나온 사람들이 전단지와 휴지를 나누어 주었다.     


그래도 돌봄 교실에 희망을 걸고 봉투를 연 나는 실망을 금치 못했다. 돌봄 교실 신청은 맞벌이 부부만 할 수 있었다. 우리처럼 맞벌이이긴 하지만 한쪽이 프리랜서인 경우에는 뭔가 증명을 해야 할 텐데 내게는 그런 서류 같은 것도 없었다. 수익으로 증명을 하자면 매우 미미할 텐데 이거 어찌해야 좋을까 싶다. 분명 일을 하는데, 왜 일을 한다고 말하지를 못 하니, 의 주인공이 된 기분이었다.     


어린이집은 맞벌이를 하건 안 하건 5시까지는 돌봄을 해주기에 걱정이 없었는데, 돌봄 교실은 왜 학교마다 방침이 다른 것인지 궁금했다. 그리고 집에 가정 주부로 있다고 일이 없는 것은 아니다. 장 보고 밥 차리고 빨래하고 설거지하고 청소하면서, 분명히 ‘집에 고용된 직장인’으로 살고 있는데 왜 돌봄 교실에 보낼 자격조차 되지 않는 것인지. 가정 주부로 있지만 아이는 돌봄 교실 없이 귀가 시키겠다는 것이 학교의 판단이 아니라 부모의 판단일 수는 없는 것인지. 맞벌이 가정이 우선 순위인 것이 아니라 아예 외벌이 가정은 배제가 되는 것이 못내 씁쓸했다.     


아이는 내년에 학교에 입학한다.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갈 것이다. 지금과는 많이 달라질 것 같아 여러 가지로 긴장도 된다. 하지만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이라고 모든 것이 다 좋았던 것은 아니며, 부정적인 의미에서 평생을 만나볼까 말까 한 사람도 만났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니 학교라는 사회도 또 명암이 있으리라. 그곳에서도 소중한 것을 지키며, 내 삶을 올곧이 채워 나가다 보면 새로운 배움이 있고 길이 열릴 것이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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