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게임3이 끝났다. 결말을 두고 논란이 많다. 가장 큰 논란은 그 많은 출연자들이 쓸데가 없었다는 것이다. 나도 이 말에 동의한다. 주제의식을 위해서라면, 단 몇몇의 출연자만 필요했고 그 출연자들조차 필요 없을 수도 있었다. 인물 하나하나가 빛을 발하며 적재적소에 있었던 시즌1과, 인물은 많지만 전체적으로는 엉성한 시즌2와3은 퀄리티의 차이가 크다. 그럼에도, 시즌1과 2와 3을 연달아 보다 보니 하나의 주제의식이 꿰어지는 면이 있어서 그것을 간단히 글로 남기고자 한다.
시즌1에서 성기훈은 그야말로 쓸데없는 인간이다. 결혼을 했지만 쓸모가 없어서 이혼을 했고, 하나뿐인 딸에게도 없느니만 못한 아버지이며, 어머니에게도 그저 밥 달라 돈 달라 하는 철없는 아들이다. 할 줄 아는 것도 없고 대단한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라 결국 오징어게임에 참여하게 된다. 오징어게임에서도, 그는 어부지리로 다음 라운드로 갈뿐, 스스로의 능력을 발휘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누군가의 도움으로, 혹은 어쩌다가 진출할 뿐이다. 최종 라운드에서도 가장 강한 적수인 상우가 스스로 무너지면서 결국 최종 우승자가 된다. 우승자가 되었으나 그에게는 대단한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다. 돈을 벌었지만 그것은 다른 이들의 노력과 핏값이었지 성기훈이 정당하게 얻은 돈이 아니었다.
나는 성기훈이 시즌1에서 결국 비행기를 타지 않고 돌아가는 것은, 바로 그 이유가 아닐까 싶었다. 그는 한 번도 스스로의 능력을 증명해내지 못했고, 제가 이 사회에 쓸모가 있다는 것을 보이지 못했다. 그는 여전히 루저였고 낙오자였다. 그는 스스로에 대한 분노를, 이런 잔인한 게임을 기획한 '오징어 게임 주최측'에 쏟아붓는다. 그는 이 분노를 가지고 시즌2에 참여한다. 그러나 분노가 능력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동료들을 모아서 주최측과 한 판 결투를 벌이지만 자신의 친한 친구를 잃고 대다수의 동지도 잃어버린 채 무참히 패한다. 결국 그는 시즌2에서도 제 능력을 증명해내지 못했다. 대단한 일을 이루려다 실패한 그는 그저 혼자만 낙오자인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의 생명까지 빼앗는 죄까지 짊어지게 된다.
시즌3에서, 성기훈은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그는 자신이 아닌, 팀에 피해를 준 또 한 명의 사람 강대호(강하늘 역)에게 분노를 쏟아놓는다. 그러나 책임 소재를 따지자면, 애초에 오징어게임 주최측과 싸움을 벌이자고 제안하고 이길 수 없는 싸움으로 사람들을 몰아넣은 것은 성기훈이었으므로 성기훈의 잘못이 맞다. 그리고 게임에서 졌던 가장 큰 이유는 게임에 참가했던 프론트맨이 성기훈의 편에 섰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배신을 했기 때문이다. 프론트맨은 배신이 예견된 인물이므로, 그를 믿은 성기훈의 책임이 크다. 강대호 역시 배신을 했지만 그가 제대로 했더라도 어차피 졌을 싸움이다. 성기훈은 이 사실을 알면서도 결국 책임을 물어 강대호를 죽이고 만다.
성기훈은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빠지게 되었다. 제 자신이 쓸모없는 인간일 뿐 아니라, 동료들을 위험에 몰아넣어 죽여서 죄까지 짊어지고, 거기에 그 죄의 책임을 다른 이에게 몰아 죽여버린다. 그는 이제 회생 불가능한 인물이 되어 버렸다. 이대로라면, 오징어게임 우승자가 되더라도 그는 시즌1에서보다 더 대책 없는 상태가 된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 구원의 빛이 이르는데 그것은 바로 '아기'이다. 어떻게 게임 중에 출산을 할 수 있느냐, 기저귀는 언제 갈고 젖은 언제 주고 잠은 언제 재우냐는 세세한 개연성은 일단 두고 이 아기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이유를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바로 성기훈 때문이다.
아기는 절대적인 도움이 필요하다.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챙겨줘야 하는 것이 아기다. 따라서 역설적으로 아기는 그를 돌보는 이를 가치있게 만든다. 성기훈이 무가치함을 넘어서서 죄악의 길로 빠졌을 때, 아기가 구원이 될 수 있는 것은 바로 아기를 통해 성기훈이 제 가치를 되찾고 속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성기훈은 제 딸조차 제대로 돌보지 못한 인물이었다. 그런 인물이, 아기를 지켜내기 위해 최선을 다 하면서 비로소 가치있는 인간이 된다. 모두들 제 목숨만을 위할 때 성기훈은 제 목숨을 걸고 아기를 위해서 게임을 해 나간다. 아기를 살리기 위해 아기 엄마마저 제 목숨을 버렸을 때, 성기훈이 아기를 지켜내는 것은 그야말로 인생 최대의 성스러운 목표가 된다.
성기훈이 마지막으로 남은 아기를 두고 제 목숨을 버리는 것은, 이런 차원에서 예견된 결말이었을지도 모른다. 이것은 마지막에 싸웠던 이가 아기의 친부인 것과도 연관이 있다. 친부조차도 지켜내지 않으려 했던 아기를 온몸을 바쳐 살렸던 성기훈, 그는 이러한 행동을 통해 스스로가 가치있는 인간임을, 이 세상을 살 자격이 있는 인간임을, 더는 루저나 낙오자가 아님을 증명해 낸다. 마지막으로 성기훈은 제 목숨을 버리며 주최측과 이 오징어게임을 '관람'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야기한다. 인간에 대해서, 인간은 무엇인지, 바로 내가 그 인간이라는 것을, 그는 자신있게 이제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다. 그가 마지막에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인간 자체가 아니라 그 인간이라는 이의 고유의 가치다. 그 가치를 가져야만 인간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성기훈은 주최측에 역으로 말하고 있다. 이 잔인한 게임을 즐기는 당신들은 과연 인간이라고 할 수 있는 거냐고. 비로소 성기훈은, 그것을 다른 이에게도 물을 수 있는 위치에 서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