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비대칭성
눈을 떴을 때는 캄캄한 밤이었다. 도로 자려던 야고보는 무심코 제 옆자리에 손을 대었다가 그 자리가 비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곳은 형인 예수가 자던 곳이었다. 의식이 현실로 돌아오면서 소리가 들렸다. 다른 형제들과 자매들이 코를 골거나 깊이 잠든 숨소리. 밤을 잠식한 어둠만큼이나 큰 불안이 들어찼다. 야고보는 천천히 일어나 앉았다.
“무슨 일이니?”
부스럭대는 소리에 어머니 마리아도 몸을 일으켰다. 마리아를 꼭 끌어안은 여섯 살배기 막내 여동생 안나가 칭얼거렸다.
“아니에요.”
야고보는 그렇게 말하고 도로 누웠다. 마리아의 잠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마리아가 눕고 주위가 고요해졌다. 시간이 흘러도 예수는 돌아오는 기척이 없었다. 야고보는 다시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켜서, 문을 열고 집밖으로 나갔다. 집안과는 다른 선선한 공기에 몸에 소름이 돋았다. 발에 풀이 밟히는 소리와 먼 곳에서 들리는 풀벌레 소리가 섞여 났다. 풋풋한 새벽의 향기가 코끝으로 느껴졌다. 그러나 야고보는 그 향기를 온전히 즐길 수가 없었다. 풀을 밟는 발걸음이 바빠졌다.
“왜 나와 있어?”
문득 기척이 느껴져 옆을 바라보니 어느새 예수가 그의 곁에 와 있었다. 익숙한 향기와 표정을 보자 비로소 야고보의 얼굴에도 안심의 미소가 어렸다.
“아침 공기가 좋아서.”
그가 돌아왔으니, 어떤 말을 해도 상관 없었다.
“걱정했구나.”
그러나 말 한 마디로 예수의 눈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그는 늘 야고보의 세밀한 표정까지 읽어내곤 했으니까.
“그것도 그렇고.”
야고보의 대답에 예수가 웃으며 그의 어깨에 제 팔을 걸쳤다. 밤이슬에 젖은 예수의 몸에서 축축한 기운이 야고보에게도 전해졌다. 두 사람은 천천히 집으로 걷기 시작했다.
“새벽에 종종 기도하러 나와. 언덕에 올라가서 앉아 있으면, 마음이 고요해지거든.”
야고보는 한 손으로 예수가 제 어깨에 걸친 손을 잡았다. 예수의 손은 크고 따뜻했다. 그리고 늘 일을 하는 탓에 거칠고 굳은살이 박혀 있었다. 야고보는 그 손을 좋아했다. 그 손은,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를 대신해서 그를 돌보아 주고 함께 놀아주며 일을 가르쳐주던 손이었다. 야고보가 어린 시절부터 그 손은 그와 함께 있었다. 잠이 안 온다며 칭얼댈 때 다독여주고, 자주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그 손은 야고보에게는 늘 넉넉히 기대고 싶은 사랑이었다.
“형은 하나님하고 가까워서 좋겠다.”
야고보는 그렇게 말하며 예수를 바라보았다. 예수는 잠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시선을 돌려 먼 곳을 보며, 일부러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말했다.
“너는 아니라는 거야?”
야고보는 말없이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어릴 때부터 하나님을 배웠으나 자랄수록 하나님은 알 수 없는 분이 되어갔다. 왜 이집트 땅에서 노예로 살던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해주신 분은, 오늘날 로마의 압제 하에서 노예처럼 살아가고 있는 우리를 내버려 두실까. 그 보내신다는 메시아는 대체 언제 보내주실까. 생각하면 머리가 아프곤 했다.
“고민이 있구나.”
예수가 천천히 야고보의 어깨에서 팔을 거두었다. 지나가고 싶은 말이라면 대충이라도 대답을 하고 넘겼을 텐데, 침묵이 길어지니 예수도 걱정이 된 모양이었다. 야고보는 그제야, 제가 자신의 생각에만 지나치게 빠져 있었다고 생각했다.
“아니, 별것은 아니야. 살기가 너무 어려우니까, 하나님이 언제 메시아를 보내 주실까, 보내주신다는 것은 맞을까, 요즘은 그런 불경한 생각이 들기도 하네.”
야고보는 애써 착한 형이 상처받지 않게 말했다. 그러나 예수는 야고보가 저도 모르게 내리까는 눈을 집요하게 바라보았다. 마치, 상처받는 것은 내가 아니라 너라고 말하는 듯이.
“솔직히 말해도 돼. 네가 무슨 생각을 하든, 너는 내 사랑하는 동생이니까.”
예수의 눈이 맑게 빛났다.
“하나님의 존재가 의심되는 거야? 아니면 왜 약속하신 일을 하지 않으실까 궁금한 거야?”
야고보는 다시 예수를 바라보았다. 내가 형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형에게 내보일 내 내면이 수치스러워서 대충 넘기고 싶었던 걸까. 그렇게 생각하니 더 부끄러웠다. 야고보가 어떤 말을 해도 예수는 꾸짖거나 무슨 그런 생각을 하냐며 놀리지 않을 것이었다. 그래서 더 그런 마음이 들었다. 왜 같은 집에 살고 같은 것을 먹지만 형과 나는 이렇게 다른지. 믿음에서부터 왜 이렇게 차이가 나는 것인지, 싶어서.
“하나님이 의심되는 것은 아니야. 다만 궁금한 거야. 난 이렇게 힘든데 하나님은 뭐 하시나 싶어서. 하지만 나도 하나님을 사랑해. 형만큼은 아니겠지만.”
마지막 말은 민망해서 붙인 것이었고, 예수도 아마 그것을 알 것이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야고보는 괜한 말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민은 고민으로 남겨 두었어야 했다. 괜히 그와 자신의 차이를 스스로에게 알려주지 않아도 괜찮았다.
“맞아, 그럴 때가 있지.”
그런데 예수가 의외로 선선히 야고보의 말을 인정했다. 마치 저도 겪은 일이라는 듯. 야고보는 방금 들은 말을 믿을 수가 없어 물었다.
“형도 그럴 때가 있었단 말이야?”
“그럼. 나도 사람인데. 이쪽으로 좀 와 볼래?”
예수가 야고보의 손을 잡고 그를 집의 뒤편으로 끌어당겼다. 그곳에는, 흐드러지게 핀 백합꽃이 있었다. 흰 백합꽃은 새벽 이슬을 맞고 촉촉히 젖어서 더 청초하고 예뻐 보였다. 야고보는 예수가 갑자기 왜 꽃을 보여주나 싶어서 그와 백합을 번갈아 보았다.
“예쁘지?”
“그럼. 꽃이 안 예쁠 수가 있어?”
야고보의 말에 예수는 쭈그리고 앉아 꽃잎을 매만졌다. 뭘 하는가 싶어 묵묵히 서 있던 야고보는 예수의 옆에 똑같이 쭈그리고 앉았다. 예수는 천천히 말하기 시작했다.
“안나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어. 집에 먹을 것은 없고, 안나는 열이 심하게 나고, 나는 손을 다쳐서 일을 할 수가 없었어. 기도밖에는 정말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을 때 우연히 이곳에서 이 백합꽃을 봤어.”
예수가 말한 때를 야고보도 기억했다. 야고보는 지금보다 어릴 때라서 일을 아직 하지는 않았었는데, 여러 가지 안 좋은 상황들이 겹쳐서 집안 분위기가 많이 가라앉았었다.
“누가 길쌈도 하지 않고 따로 물을 준 것도 아닌데 이렇게 예쁘게 핀 백합을 보면서, 아 하나님이 이렇게 다 키우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 그리고 우리 역시 돌보아 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질 수 있었지.”
예수는 부드러운 눈으로 제 옆에 앉은 야고보를 바라보았다.
“정말 괴롭고 힘들기도 했지만 지나고 보면 다 은혜로 그때를 견딜 수 있었어. 언제 메시아가 올까 생각하면 애가 타지만, 그날이 오면 그땐 지금의 고난이 은혜로 바뀌게 되겠지.”
야고보는 예수의 단단한 확신이 깃든 두 눈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우린 그 고통으로 인해서 그날, 좀 더 하나님의 뜻에 맞게 성숙해져 있을 거야. 고난은 우리를 단단하게 만들어 주니까.”
예수의 말이 야고보에게 위로가 되는 것은, 비단 그것이 이치에 맞고 논리에 합당해서는 아니었다. 예수 역시 야고보와 같이 살아왔고, 그보다 더한 아픔을 겪어왔기에 그러했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 집에서 젊은 가장으로서 예수는 온몸으로 그 폭풍을 견뎌야 했을 것이다. 남동생이 넷, 여동생이 둘. 결코 만만치 않은 식구들을 아직 젊고 어린 그가 먹여 살려야 했다. 그러니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마음의 짐을, 그는 묵묵히 지고 견뎌왔을 것이다. 그것을 깨닫는 순간 야고보는 조금 전에 제 고민에 대해서 형과 저를 비교했던 것이 부끄러워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형은 목수를 하고 살기는 아까워. 제사장 가문에 태어나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좀 돈이라도 많은 집에 태어나서 바리새인으로 살았어야 했는데.”
야고보는 일부러 분위기를 바꾸려고 명랑하게 말했다. 그러나 야고보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율법에 따라 유대의 남자들은 열 살 이전에 회당에서 의무교육을 받았다. 예수는 회당 학교에 다닐 때도 내내 장학생이었고, 졸업 후에는 회당 학교 랍비가 적극적으로 더 공부를 할 것을 권유했다. 보통 집에 돈이 어느 정도 있거나 아주 똑똑하면 졸업 후에도 랍비의 제자로 들어가서 계속 공부를 했다. 그렇게 되면 바리새인이나 그 밑에서 일하는 서기관이 되어 자라서도 회당에서 가르칠 자격을 얻을 수 있었다. 아버지 요셉이 시름시름 앓다가 일찍 세상을 떠나지 않았더라면 예수 역시 그런 삶을 살았을 지도 모른다.
“그것도 어쩌면 은혜가 아닐까. 하나님의 뜻이 있겠지.”
예수는 아쉬운 마음도 없는지 그렇게 대답했다. 그 말에 야고보는 심술이 났다. 자신도 사람이라면 아쉬워도 하고 투덜거리기도 해야 하지 않은가. 그렇게 초연하게 말을 하면 자신은 뭐가 되는데. 야고보는 묵묵히 앉아 있다가 갑자기 뒤에서 예수의 어깨를 잡아 당겨서, 풀밭 위에 쭈그리고 앉은 그를 완전히 주저 앉게 만들었다.
“아.”
넘어진 예수가 야고보를 돌아보았다. 활짝 웃는 야고보를 본 예수의 미간이 좁아졌다. 야고보는 큰일났다 싶었다. 어릴 때부터 달리기를 해서 야고보는 예수를 이겨본 적이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가 도망갈 태세로 막 일어나자마자 바로 예수에게 어깨를 붙들리고 말았다.
“으악!”
야고보는 풀밭을 뒹굴었고, 그 위에 예수의 몸이 덮였다. 두 사람이 엎치락뒤치락하는 중에 높은 웃음 소리가 났고, 어느새 문을 열고 나온 마리아가 잔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너희는 나이가 몇인데 아이들처럼 그러고 있니?”
날이 어느새 밝아오고 있었다. 드넓게 펼쳐진 들판으로 서서히 떠오르는 해는, 조금 전에 예수가 말한 하나님의 돌보심을 직접 눈앞에 펼쳐 보이듯이 세상을 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