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비대칭성
아침에는 온가족이 ‘쉐마 이스라엘’을 암송했다. 예수는 문설주에 걸려 있는 통에서 양피지 두루마기를 펼치고서 말했다.
“이스라엘은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신명기 6장 4-5절 개역개정)
예수가 글을 읽을 때 마리아와 야고보를 비롯한 모든 이들이 그의 말을 따라 암송했다. 암송이 끝나고 나서는 다 같이 아침식사를 했다. 오늘 아침은 구운 빵조각과 건포도였다. 빈약했지만 이 이상으로 먹을 수 없는 것이 그들의 형편이었다. 아침을 먹고 나면 예수와 야고보, 그리고 요셉과 유다는 일을 하고 가장 밑의 동생인 시몬은 회당 학교에 간다. 어머니 마리아는 딸들인 에스더와 안나와 함께 지내며 틈틈이 길쌈을 하고 점심과 저녁 준비를 한다. 먼저 일을 끝내도 쉴 수는 없다. 남은 집안일을 돕거나 잔심부름을 하거나 그 외의 자질구레한 일들을 도맡아야 했다. 온 가족이 하루 종일, 쉴 틈도 없이 바쁘게 보내고 나면 저녁이 되곤 했다.
“오늘은 세포리스로 가는 거 알지?”
아침을 먹고 난 예수가 짐가방을 챙기며 말했다. 세포리스는 나사렛에서 걸어서 한두 시간 거리에 있는 도시였다. 그곳은 예수가 태어나기 이전, 유다라는 이름의 유대인이 로마에 세금을 납부하지 않는 운동을 일으킨 까닭에 로마가 유다를 비롯한 그 추종자들을 모조리 죽이고 쑥대밭을 만든 곳이기도 했다. 그후에 로마는 그곳에 새로운 도시를 건설했고, 유대의 부유층이 많이 이주를 해 왔다. 그리고 나사렛 사람들은 자주 일감을 찾아 세포리스를 오갔다.
“응, 그런데 나 대신 요셉이랑 같이 가는 게 낫지 않아?”
야고보의 손재주는 예수만 못했다. 다섯 형제 중에 손재주로는 예수와 야고보의 아랫 동생인 요셉이 가장 뛰어났다.
“난 너랑 같이 가고 싶은데. 요셉은 말이 많아서 영 시끄럽거든.”
예수가 장난스럽게 야고보의 귀에 속삭였다. 요셉이 말이 많은 것은 사실이라, 야고보도 그 말을 듣고는 웃어버렸다.
“그래, 그럼.”
“일이 잘 들어오면 시장에도 가자. 너 좋아하는 생선도 있으면 몇 마리 사고.”
기회가 좋으면 나사렛에서 일을 할 때보다 많게는 세 배에서 네 배 가까이 벌 수 있었다. 그날은 맛있는 저녁을 먹는 날이었다. 그래서 보통은 미리 공사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서 움직이곤 했다. 이번에도 극장 보수 공사를 한다고 해서 일정을 정했다. 그러나 그러한 공사가 취소될 때도 있어서, 어쩔 때는 아무 일도 하지 못하고 집에 돌아오기도 했다.
새벽부터 집을 나서서 어느새 세포리스 초입으로 들어섰다. 멀리 보이는 도시를 앞에 둔 야고보는 설렘과 긴장으로 몸이 빳빳해지는 것을 느꼈다. 자주 오는 곳이지만, 나사렛과는 전혀 다른 풍광이라 올 때마다 놀라게 되는 곳이 세포리스였다. 시골 마을인 나사렛은 온통 흙길인 반면 세포리스는 들어서는 중앙의 큰길에 반듯하게 다듬어진 돌이 깔려 있었고, 그 양쪽으로는 이름을 알 수 없는 건물들이 줄줄이 세워져 있었다. 중앙의 넓은 길로 마차와 수레들이 정신없이 오가고 있어 고즈넉한 나사렛과는 다르게 활기 있고 복잡한 느낌을 주었다.
예수와 야고보는 곧 세포리스 중앙에 있는 시장으로 갔다. 시장은 인근에서 몰려든 노동자들로 아침부터 북새통이었다. 일꾼이 필요한 이들은 이곳에 와서 제게 필요한 노동자들을 데리고 가곤 했다. 그들은 기다린 지 얼마 되지 않아 한 남자에게 선발되었다. 데리고 가는 이가 야고보와 예수 두 사람만인 것으로 보아 대규모로 할 일은 아닌 듯했다.
“어디서 왔지?”
그들을 데리고 가는 사람은 가무잡잡한 피부의 마흔 살이 넘어 보이는 남자였다. 남자의 물음에 예수가 공손하게 대답했다.
“나사렛에서 왔습니다.”
“오늘 너희 운 좋은 줄 알아. 오늘 극장 보수 공사가 취소됐거든. 그래서 아마 일이 별로 없을 거야.”
야고보는 예수를 보고서 다행이라고 작게 속삭였다. 남자는 곧 한 집에 도착했다. 나사렛에서는 본 적이 없는 아주 큰 저택이 그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귀에 들린 것은 음악 소리와 사람들이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였다. 들어서니, 너른 마당에 커다란 테이블이 있고 사람들이 둘러 앉아 음식을 먹으며 수다를 떨고 있었다. 세포리스에 사는 이들은 대개 유대의 귀족이라고 할 만한 사람들이라 로마의 부유층처럼 자주 사람들을 초대해서 연회를 열었다. 어차피 예수와 야고보와 같은 가난한 노동자들에게는 상관 없는 일이었다.
“너희가 일할 곳은 뒷마당이야.”
남자는 예수와 야고보를 데리고 뒷마당으로 갔다. 그곳은 흙이 다 파헤쳐진 채 황량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수로 공사를 하느라 다 파헤치는 바람에, 정리가 필요해. 이 벽돌들만 다시 쌓아 놓으면 돼.”
남자는 유유히 돌아갔다. 마당을 둘러보며 야고보는 말없이 입을 벌렸다. 한쪽에 대충 쌓아둔 벽돌은 반 이상이 파손되어 있었고, 바닥도 제멋대로 파헤쳐진 바람에 상당히 고된 작업이 예상되었다. 여전히 앞마당에서는 시끄러운 소리가 났고 음식 냄새도 났다. 야고보는 벌써 배가 고팠다. 그러나 그런 것을 티낼 수는 없었다.
“일이 좀 많네. 빨리 해야 겠다.”
예수는 그렇게 말하고 가지고 온 연장들을 꺼냈다. 직업은 목수였으나 예수는 나무 외에도 돌을 비롯한 다양한 소재들을 다룰 수 있었다. 예수는 곧 일을 시작했고, 야고보도 돕기 시작했으나 생각했던 대로 서툴러서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러다 그만 돌 하나를 떨어뜨려서 깨뜨리고 말았다.
“요셉을 오라고 할 것을 그랬지.”
야고보는 민망해서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예수가 동작을 멈추었다. 그는 야고보를 돌아보았다. 흙먼지가 가득한 얼굴에 땀이 흐르고 있었다.
“너에게 같이 가자고 한 사람은 나였잖아.”
그의 입에서 더운 김과 함께 나직한 목소리가 났다. 어쩐지 야고보의 가슴을 울리는 목소리였다.
“그러니 널 책임지는 사람도 나야. 엉뚱한 생각하지 마.”
예수는 손을 뻗어 야고보의 어깨를 툭툭 쳤다. 그 손 역시 뜨거웠다. 야고보는 그 말에 아무런 답도 할 수 없었다. 예수는 제가 일을 못하는 것을 신경 쓰지 않을 줄 알고는 있었다. 다만 제가 민망해서 한 소리였다. 그 말로 어떻게든 제 부족함을 메우고 싶었다. 그러나 예수는 그런 야고보에게 말하고 있었다. 부족해도 괜찮다고. 그것을 억지로 메우려고 하지 말고 그저 너 자신으로 있으라고.
“이런 것만 골라내서 버려줘. 나머진 내가 할 테니까.”
예수가 파손된 벽돌을 내밀었다. 벽돌을 버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야고보는 겨우 자신이 그 정도의 일만 하는 것이 미안했으나, 그 미안함을 드러내는 것 역시 예수가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 같아서 묵묵히 일을 했다. 곧 먼지로 눈앞이 흐려지고 땀이 비오듯 흘러내렸다. 두 사람의 거친 숨소리 외에는 연회 소리밖에 다른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어느덧 볕이 가장 강한 오후가 되었다. 앞마당에 있던 손님들은 집안으로 들어갔다. 그 뙤약볕은 예수와 야고보의 머리에도 어김없이 쏟아졌다.
“나는 볼일 좀 보고 올게.”
야고보는 그렇게 말하며 굽은 허리를 폈다. 나사렛에는 따로 화장실이 있지 않아서 보통 땅에 구덩이를 파고 처리를 했으나 세포리스는 달랐다. 로마와 같이 상하수도 시설이 되어 있는 세포리스에서는 공중 변소도 따로 있었다. 집집마다 변소가 있긴 했으나 예수나 야고보가 집안의 변소를 이용할 수는 없었으므로, 볼일을 보려면 이 집을 나가야 했다.
“천천히 다녀와.”
예수의 말을 뒤로 하고 야고보는 집을 나섰다. 굽은 허리를 펴니 살 것 같긴 했으나, 넓고 깨끗한 도로 위를 흙먼지가 잔뜩 묻은 몰골로 다니는 것은 다소 신경이 쓰였다. 지나는 사람들이 다들 저만 보고 있는 기분이었다. 다행히 멀지 않은 곳에 변소가 있었다. 다시 돌아오는 길도 다르지 않았다. 그는 제가 없는 사람인 듯 땅만 보고 걸어서 겨우 집에 도착했다. 앞마당을 지나려던 그가 멈칫 섰다. 그의 눈에 띈 것은 사람이 없는 테이블 가득히 차려진 음식이었다.
‘먹지도 않고 갔구나.’
야고보는 1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귀한 음식들이었다. 양고기 구이와 말린 과일, 대추야자와 각종 향신료를 넣고 볶은 음식들이 가득했다. 야고보는 빨리 이곳을 떠나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럴 수가 없었다. 볼일을 보고 나서일까, 점심도 아침과 별반 다르지 않게 빵으로 대충 먹어서일까, 속이 뒤집어지도록 배가 고팠다.
‘몇 개만 가져가서 나누어 먹으면.’
저도 그렇지만 예수에게도 마음이 쓰였다. 특별한 날이 아니면, 아니 종종 특별한 날이라도 이런 음식은 감히 먹지 못했다. 예수는 더더욱, 동생들과 어머니께 양보를 해서 그러했다. 오늘만이라도 양껏 먹을 수 있다면. 그렇게 생각하며 야고보가 정신을 차렸을 때, 그의 손은 벌써 양고기 하나를 품 속에 집어넣고 있었다.
‘안 돼, 들키기라도 하면.’
야고보는 동작을 멈추었다. 누가 오는가 싶어 귀를 기울여 보았으나 다행히 아무도 오는 기척은 없었다. 그는 잠시 그대로 있다가 양고기 구이 한 조각을 더 집어 넣었다. 머뭇대던 손이 빨라졌다. 대추야자도 그 손에 들렸다. 빵도 그들이 먹는 퍽퍽한 빵이 아닌, 향신료를 입혀 구워서 부드럽고 맛있는 향기가 나는 빵이었다. 그 빵 몇 개도 품 안에 쑤셔 넣어졌다.
“지금 뭘 하는 거야!”
곁에서 나는 소리에 깜짝 놀라 고개를 든 야고보는, 그를 이곳까지 데리고 온 남자가 눈앞에 서 있는 것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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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분간은 매일 오겠습니다. 내일도 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