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비대칭성
여느 날과 같았던 날이었다. 식사를 마친 후에 예수의 주변에 가족들이 둘러 앉았다. 어스름이 지는 저녁, 바람은 선선하게 불었고 기분 좋은 냄새가 났다. 야고보는 형을 바라보았다. 오늘따라 예수는 무언가 석연치 않아 보였다. 일을 하면서도, 저녁 식사를 하면서도 별로 말이 없었고 웃지도 않았다. 지금도 예수는 얼른 이야기를 시작하지 않고 그들을 바라보기만 하고 있었다.
“오늘은 무슨 이야기야?”
예수의 옆에 앉은 안나가 물었다. 예수는 안나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고 나서 말했다.
“오늘 이야기는, 나에 관한 거야.”
예수는 허공으로 눈을 돌렸다. 야고보는 그 속에 어린 망설임의 기운을 느꼈다. 이야기를 하면서 그는 이제껏 한 번도 이런 태도를 보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더 의아하기만 했다.
“형에 대한 이야기라니? 오늘 무슨 일 있었어?”
요셉이 미간을 모은 채 물었다. 요셉은 야고보의 동생이자, 남자 형제들 중 가장 말이 많고 활발했다.
“때가 되었어.”
예수는 요셉을 바라보고 말을 이었다.
“하나님이 나를 부르신 때가. 내가 가족들과 함께 머무를 수 있는 것은 오늘이 마지막이야. 날이 밝으면, 나는 이곳을 떠나 하나님이 원하시는 곳에 가야 해.”
내용에 비해 담담한 목소리가 예수의 입을 통해 가족들에게 전해졌다. 잠시 가족들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지금, 농담하는 거야?”
요셉이 슬쩍 웃으며 물었다. 그런 요셉의 팔을 유다가 툭, 쳤다.
“형이 농담하는 거 봤어?”
“아니 농담이 아니면 뭐야? 갑자기 왜 떠나? 내가 뭐 잘못한 거 있어? 어제 내가 형 것까지 다 뺏어 먹어서 그런가?”
요셉이 일부러 과장된 포즈를 취하며 주변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아무래도 그에게는 이것이 현실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듯했다.
“형, 왜 그래? 갑자기 어딜 간다는 거야?”
시몬이 울먹거리며 예수 앞으로 다가와 앉았다. 안나 역시 얼굴이 시뻘게진 채 곧 울음을 터뜨릴 것처럼 입술을 움직였다. 안나의 언니이자 시몬의 누나이기도 한 에스더는 말없이 눈치를 보고 앉아 있었다.
“어디로 가게 될지는 나도 몰라. 하나님께서 인도하실 거야.”
예수의 목소리는 여전히 담담했다. 마치 남의 이야기라도 하는 듯이. 그러나 야고보는 알 수 있었다. 그도 지금 감정을 참고 있었다. 갈피를 못 잡듯이 이리저리 흔들리는 동공이 그것을 말해주었다. 그 얼굴을 불안한 눈으로 보던 요셉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형, 오늘 이야기는 영 별로네. 오늘은 형 대신 내가 얘기할게.”
“그만해. 농담이 아니라고. 형은 진짜 간다는 거잖아.”
유다가 냉정한 얼굴로 그런 요셉의 말을 끊었다. 그제야 요셉의 얼굴에서도 웃음기가 걷혔다.
“어딜 간다고 그래. 가려면 나하고 같이 가.”
시몬이 말했고 안나도 예수의 팔에 매달리며 말했다.
“나도, 나도!”
예수는 당황한 듯이 웃었다. 그러나 입은 여전히 굳게 닫힌 채였다. 야고보는 긴장한 눈으로 눈치를 보고 있는 다른 형제들을 바라보았다. 누구보다도 이 상황을 농담으로 취급하고 싶은 이는 야고보였다. 예수가 떠나면 그 다음 가장의 짐은 야고보가 져야 하는 상황이기도 했다.
“그만하자. 형도 어렵게 이야기를 꺼낸 걸 거야. 오래 고민했을 테고.”
그러나 야고보는 제 마음을 솔직히 꺼내는 대신, 해야 할 말을 했다. 지금 이 상황에서 가장 형을 지켜주는 말을.
“그렇지만.”
요셉이 멀리 시선을 던지고는 말을 이었다.
“형이 갑자기 이렇게 떠나면, 저녁마다 이야기는 누가 해.”
“난 누가 안아줘.”
안나가 말했고 시몬이 그 말을 이었다.
“나 학교 졸업해서 이제 일 배워야 한단 말이야. 형 아니면 누가 나 일 가르쳐 줘.”
“우리한테 일감 들어오는 거 다 형 보고 주는 건데, 형 아니면 우리 일감이 반 이상 깎이게 될 거야.”
내내 미간을 모으고 있던 유다가 냉정한 얼굴로 말했다. 유다의 말은 사실이었다. 목수 집안인 그들의 집에 이곳 나사렛에서 일을 주는 이들은 예수의 손재주와 성실함을 믿었다. 워낙 작은 마을이라 조금만 실수가 있거나 대응에 문제가 있어도 온동네에 소문이 났다. 그런 면에서 예수는 누구보다도 탁월한 일꾼이었다. 그것을 여실히 알고 있는 야고보는 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야고보는 아무래도 예수만큼은 일을 할 수가 없었다. 기한을 맞추는 것도, 마음에 들게 물건을 만드는 것도 야고보는 자신이 없었다.
“얘들아, 그만해.”
그때 내내 묵묵히 있던 마리아가 입을 열었다.
“하나님께서 부르셨다고 하잖니. 우리가 어쩔 수 없는 일이야.”
마리아는 형제가 넷인 집에서 쉽게 입을 여는 편은 아니었다. 그것은 성격 탓도 있었고, 여자들은 조용히 남자들에게 순종하고 섬겨야 한다는 이스라엘의 율법 때문이기도 했다. 그런 그녀가 말을 하자, 말리던 형제들이 한순간에 잠잠해졌다. 야고보는 제가 한 마디를 더 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것이 자신의 역할인 것 같았다.
“결혼을 했어도 진작 했어야 하는 나이야. 지금까지 가장으로 있어준 것이 고마운 거지. 아버지도 일찍 돌아가셨는데 형이 얼마나 그동안 힘들었겠어.”
그때였다. 눈을 내리깐 채 침묵을 지키고 있던 예수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힘들지는 않았어. 행복했지. 야고보, 요셉, 유다, 시몬, 그리고 에스더와 안나. 어머니, 모두에게 감사하고 또 미안해.”
그 말에 내내 수다스럽게 굴었던 요셉이 울음을 터뜨렸다. 유다 역시 입술을 꾹 깨문 채로 눈물을 참았다. 안나와 시몬도 울었고 에스더는 말없이 예수의 등을 끌어안았다. 그날 밤 늦게까지 가족들은 밀린 이야기를 하면서 아쉬움과 서운함을 토했다. 그러나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아쉽고 속상한 마음이 끝끝내 달래어지지는 않았다.
다음 날 새벽이 되었다. 야고보는 한잠도 이룰 수가 없었다. 예수가 일어나는 기척이 느껴지자 야고보도 서둘러 몸을 일으켰다. 밖을 나서니 아직 어둠이 짙은 새벽이었다. 갈 채비를 하고 서 있는 예수가 보였다. 밤안개 속에서 예수의 까만 두 눈이 반짝였다. 야고보는 예수에게 다가갔다. 먹먹한 기분에, 잠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조심해서 가. 기도할게. 형이 사랑하는 하나님이, 형을 지키시도록.”
겨우 입을 열어 한 말은 전혀 진심이 아니었다. 지금이라도 마음을 바꿀 수는 없는 거냐고, 내가 형 없이 어떻게 사냐고, 밤새 한 생각들은 마음에 묻어두었다.
“야고보.”
야고보의 손에 예수의 손길이 느껴졌다. 그 따뜻하고 강한 손, 언제나 그를 지켜줄 것 같았던 그 손이 제 손을 잡자, 야고보는 끝내 울먹였다. 눈을 드니 예수가 입꼬리를 올리고 있었다. 그의 눈이 평소보다도 더 반짝였다. 그것이 눈물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은 오래지 않아서였다.
“돌아올게.”
야고보의 눈이 커졌다. 다시 온다고. 그것이 언제인지는 차마 묻지 못했다. 큰 결심을 하고 떠나는 그의 앞길이, 돌아와야 한다는 약속에 가려지지 않았으면 해서였다.
“너를 보러, 다시.”
예수가 다짐하듯이 다시 말했다. 그는 허튼 소리를 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그런데 두 번이나 말했다는 것은 꼭 그 약속을 지킨다는 의미였다. 그것을 이해하자 야고보는 그 약속이 언제든 상관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머리가 하얗게 세어서라도 돌아오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닌가. 아니, 그런 약속을 하는 것 자체가 고마운 일이었다. 그 생각을 하자 참았던 눈물이 끝내 비어져 나왔다.
“안 돌아와도 돼.”
눈물을 닦아낸 야고보는 입술 끝을 올렸다.
“형이 하고 싶은 것 다 해. 공부도 하고, 가능하면 서기관도 되고.”
서기관은 율법을 공부하고 연구해서 그것으로 백성들을 가르치는 일을 했다. 가난한 이들이 가장 출세할 수 있는 길이 서기관이 되는 길이었다. 출신이 별로여도, 서기관들은 바리새인들과 잘만 연줄을 맺으면 돈도 꽤 많이 벌고 존경도 한 몸에 받을 수 있었다.
“나사렛에서도 서기관 한 명은 나와야지.”
야고보의 말에 예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는 감정을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눈을 내리깔고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손을 들어 야고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내 걱정은 하지 말고, 힘들면 언제든 기도해. 네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이 너를 지켜주실 거야. 나도 늘, 가족을 위해서 기도할게.”
야고보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수는 손을 내리고 나서 그 손으로 야고보의 손을 한 번 힘주어 잡아준 후에 몸을 돌렸다. 멀어져가는 예수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그제야 야고보는 이별이 실감이 났다. 다리에 힘이 빠지면서 어깨가 무거운 돌이라도 얹어놓은 듯이 아파 왔다. 그는 예수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가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지자, 야고보는 미친 사람처럼 달리기 시작했다.
“가지 마, 형, 가지 마! 나 자신 없어. 나 정말 형 대신할 수가 없다고! 난 형 없으면 안 돼, 가지 마!”
그것은 내내 참아왔던 말이었다. 어제부터 하지 못했던 그 말, 형 앞에서는 내뱉지 못했던 말을 토하면서 야고보는 달리고 또 달렸다. 어느새 다리에 힘이 빠지고 야고보는 바닥을 굴렀다. 땅이 어깨와 무릎을 긁었지만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나 형 없이 어떻게 살아. 내가 이 가족을 어떻게.”
흙을 그러잡은 채, 야고보는 고개를 숙였다. 누군가 그런 야고보에게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설마 다시 돌아온 것인가, 놀라서 일어선 야고보의 앞에 서 있는 이는 마리아였다. 역시 한 잠도 자지 못한 모습으로 마리아는 슬프게 웃었다.
“예수는, 잘 지낼 거야, 야고보.”
어머니는 깨어 있으면서도 차마 인사도 못 했구나. 그것을 생각하자 야고보는 슬픔을 더 참을 수가 없었다. 두 팔로 어머니를 끌어안은 채 야고보는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