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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 5

사랑의 비대칭성

by 나무나비

집을 떠난 후 한동안 예수의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 아마도 어느 바리새인 랍비를 찾아간 모양이라고, 야고보는 생각했다. 차라리 출세를 해서 우리 모두를 데리러 왔으면 좋겠다고, 그래서 이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게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집트의 총리가 되어 나중에 가족들을 먹여 살렸던 요셉처럼.

그렇게 한 해 두 해가 지났다. 여느 날과 같았던 날, 이웃에 살아서 자주 오가는 친척인 갈렙이 다급한 걸음으로 야고보의 작업실에 들어섰다. 막 주문받은 의자를 마무리하던 야고보는 갈렙을 보고 고개를 들었다.

“안녕하세요, 아저씨. 뭐 주문하시려고요?”

“너, 예수 소문 들었어?”

갈렙은 인사를 받지도 않고 다짜고짜 물었다. 야고보는 순간 멍해졌다. 예수라니. 누구를 말한 것인지 순간 알아차리기가 어려웠다.

“소식이라뇨. 형이 언제 떠났는데요.”

“그러니까. 내가 소식을 들었어. 내가 가버나움에 아는 동생이 있거든. 어제 그 동생이 놀러 왔는데 예수가 거기서 무슨 다리가 부러진 사람을 고쳤다나. 눈 안 보이는 사람도 보이게 하고. 귀신 들린 사람도 고쳤대. 그래서 지금 가버나움이 난리가 났대.”

“네?”

야고보는 순간 마무리하던 의자를 놓쳤다. 바닥에 나뒹구는 의자를 야고보는 도로 주울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럴 리가요. 형은, 마술사가 아닌데요.”

그런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소문은 들었다. 그러나 한갓 마술사라고 생각했다. 똑똑하고 지혜로운 예수에게는 더더욱 어울리지 않는 일이었다.

“그 동생이 허튼 소리 하는 애가 아니야. 나사렛 출신 예수였대. 설교도 하고 다닌대. 자신이 선지자라도 된 것 마냥.”

그때 쿠당탕 소리와 함께 요셉과 유다가 달려 들어왔다. 밖에서 갈렙의 이야기를 들은 듯 그들의 얼굴이 온통 시뻘게져 있었다.

“아저씨, 그게 무슨 말이에요? 예수 형이 그러고 다닌다고요? 아니 나 말 많다고 맨날 뭐라 그럴 땐 언제고 자기가 그러고 다닌단 말이야?”

요셉이 과장된 손동작을 취하며 유다를 보았다. 그러나 유다는 그런 요셉은 쳐다보지도 않은 채 냉정한 얼굴로 갈렙을 바라보고 입을 열었다.

“아저씨, 정말 나사렛 예수가 맞아요? 예수라는 이름이 얼마나 많은데요.”

“맞다니까. 너희들이 직접 가서 확인해 보면 되잖아.”

갈렙은 억울한 듯이 미간을 구기며 말을 이었다.

“가서 당장 그 녀석을 데려와. 마술사 노릇이라니, 나사렛의 수치 아니냐. 나는 어디 공부라도 하러 간 줄 알았지, 그러고 다닐 줄 누가 알았겠냐.”

갈렙은 고개를 가로젓고는 돌아갔다. 야고보는 충격에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제발 잘못 본 것이기를 바랐으나, 갈렙 역시 뜬소문 하나 가지고 저러는 것 같지는 않았다.

“수치도 수치인데, 진짜 그러고 다닌다면 형이 위험한 거 아니야?”

유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로마는 언젠가 메시아가 나타나서 자신들을 로마로부터 해방시킬 것이라는 유대인들의 믿음을 알고 있었다. 그런 믿음 때문에 사람들이 모이고 로마에 대항하게 되는 것을 로마는 경계했다. 역사적으로도 사람들을 이끌고 일을 도모했다가 로마에서 가장 수치스럽고 잔악한 형벌인 십자가형을 받고 죽은 이들도 많았다.

“내가 가 볼게.”

야고보의 말에 요셉이 답했다.

“나도 갈래, 형이 보고 싶기도 하고.”

“최대한 많이 가는 게 좋겠어. 형이 한 번 정한 건 바꾸지 않는 사람이라는 거 알잖아. 정말 그렇게 살기로 결심했다면, 우리 모두가 가도 마음 돌리기 쉽지 않을 거야.”

유다의 말에 야고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네 말이 맞다. 갈 수 있는 사람은 같이 가자.”

“그래, 가서 아니면 뭐 가버나움 구경이나 실컷 하고 오지. 하루쯤은 쉬어도 괜찮잖아?”

요셉이 일부러 명랑하게 그 말을 받았다. 그러니 야고보의 마음도 한결 가벼워지는 듯했다. 그래, 설마 예수 형이 마술사 노릇을 하겠어. 이야기도 가족들 앞에서나 했지 다른 사람 앞에서는 필요한 말 외에는 별로 말을 섞는 일도 없었던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대중 설교라니. 잘못 본 것이 확실했다.

“하룻길이고 아무래도 신세질 곳이 필요하니까, 갈렙 아저씨 동생이라는 그분 주소를 받아가지고 가는 게 좋겠어.”

유다가 야무지게 말했다. 나사렛에서 가버나움은 가는 데만도 하루 온종일 걸렸다. 새벽에 출발해도 오후 늦게나 도착해서 절대로 당일에 집에 돌아올 수가 없었다.

“그래. 그리고 내일 먹을 건 일단 오늘 것을 좀 아껴서 마련해야 겠다.”

야고보는 그렇게 말하며 빠르게 계산을 했다. 거의 하루 일당은 하루 먹는데 소비를 하기 때문에, 이렇게 하루 일을 못 하는 날이 생기면 하루 번 것을 이틀에 나누어 소비하도록 계획을 세워야 했다. 가버나움에 하루 가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닌 것이었다.

“돌아올 때 먹을 건 갈렙 아저씨 동생에게 부탁드리지, 뭐. 형이 진짜 마술사라면 다리라도 고쳐 드리든가 해서.”

요셉의 말에 유다와 야고보가 동시에 웃었다. 갑작스러운 예수의 소식에 걱정스럽기도 하였으나 그래도 오랜만에 예수를 볼 수도 있을 거라는 설레는 마음도 들었다. 남은 식구들이 돌아오는 대로 그들은 소식을 전하고 계획을 세웠다. 마음은 큰 저항 없이 하나로 모였다. 다들 예수를 걱정하는 마음은 한결같았다. 새벽에 출발하기로 하고 저녁도 거의 먹지 않은 채 가족 모두가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깊은 밤. 주변에서는 잠든 숨소리가 들렸으나 야고보는 잠이 오지 않았다. 멀리서 들리는 들개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야고보는 가슴에 들어차는 불안을 곱씹었다.

‘진짜 형이 선지자 노릇을 하는 거라면.’

그러면 정말 거기에 대고 뭐라고 할 수 있을까. 내가 형을 말릴 수 있을까.

‘다시 돌아온다고 했었잖아.’

그날이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두 번이나 말을 했었다. 그런 말을 한 이유가 있을 건데. 야고보는 더 참지 못하고 몸을 일으켰다. 달빛이 환하게 비쳐드는 창을 바라보고서 야고보는 두 무릎을 꿇었다. 날마다 형을 위해 기도하기는 했으나 한밤중에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그는 자리에 엎드렸다. 달빛이 그의 머리 위에 머무는 것을 느끼며 그는 간절히 기도했다. 제발 형을 다시 돌려주시기를, 그가 약속한 것처럼 이곳으로 돌아오기를. 내 힘으로는 할 수 없으니 제발 하나님 당신의 힘과 말씀으로 형을 우리에게 되돌려 주시기를.

다음 날, 하루 온종일 걸어 오후 늦게 가버나움에 도착한 야고보 일행은 완전히 지쳐 있었다. 야고보는 안나를 업었고 요셉은 어머니 마리아를 부축했다. 나사렛보다 훨씬 번화하고 넓은 거리에서 탈진한 식구들은 갈 바를 알지 못하고 서 있었다. 야고보는 일단 다짜고짜로 지나는 이들을 붙들고 묻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한 지 얼마 안 되어, 예수의 집을 알고 있다는 이를 만나게 되었다.

“이쪽으로 가시면 나옵니다. 아마 사람들이 많이 몰려 있어서 금세 찾으실 수 있을 거예요. 요즘은 계속 집에 머물러 계셔서 사람들이 매일 같이 찾아가서 말씀을 듣는답니다.”

일단 예수의 집을 알게 되자, 야고보는 부르터버린 발에 힘을 주어 다시 걸을 수 있었다. 곧 오래지 않아 설명해준 것처럼 사람들이 바글거리며 모여 있는 집을 발견할 수 있었다.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둘러서 있는 모습에 야고보를 비롯한 가족들은 당황했다.

“이 사람들이 다 형을 보러 온 사람들, 이겠지?”

요셉이 유다를 보며 물었고 유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집이 형의 집이 맞다면.”

“진짜 맞다면 말하는 법이나 좀 배워야 겠다. 나도 말로 먹고 살아야지.”

요셉이 장난스럽게 말하면서 사람들을 헤치고 들어가려고 했다. 그러나 빽빽하게 둘러선 사람들은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이러다가는 오늘 해지기 전까지 도저히 예수를 만날 수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하며 주변을 둘러보던 야고보는 아주 우연히 안에서 사람들을 헤치고 나오는 한 인물을 볼 수 있었다.

“저 사람한테 물어봐야 겠다.”

야고보는 식구들에게 그렇게 말하고는 그에게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혹시 저 안에 계신 분이 나사렛에서 온 예수입니까?”

그가 우뚝 멈추어 섰다. 그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네, 나사렛 예수 맞습니다. 말씀을 들으시려면 이곳에서 기다리셔야 할 겁니다. 사람이 워낙 많아서요. 어디 아픈 곳이 있어도, 일단은 기다리십시오. 고쳐달라고 하는 사람도 많아서요. 다들 오늘 새벽부터 오신 분들이십니다.”

남자의 말에 야고보의 곁에 서 있던 요셉이 답하듯이 말했다.

“새벽부터요. 정말 형을 보려고 그렇게들 오는 겁니까? 정말 믿어지지가 않네요. 아, 저희는 실은 나사렛 예수의 가족입니다. 저는 요셉, 여기가 야고보 형, 그리고 이쪽은 유다, 시몬. 저쪽에 여자 형제들과 어머니가 계시고요. 저희는 나사렛에서 왔습니다. 정말 징하게 멀어서 새벽에 출발했는데 지금 도착했어요. 다리는 끊어질 것 같고.”

“네, 저희는 나사렛 예수의 가족들입니다. 혹시 형을 만날 수 있을까요?”

야고보는 요셉의 말이 길어질 것 같아 얼른 끊고 용건부터 말했다. 남자의 얼굴이 환해졌다.

“가족이라고요! 선생님의 가족이시라니 정말 신기하군요. 그러고 보니 조금 닮기도 하셨습니다. 하하, 선생님께서 가족 이야기는 전혀 하지 않으셔서 궁금했는데 이렇게 뵙게 되었네요. 저는 선생님의 제자 요한입니다. 나사렛에서 오늘 오셨다니 고생이 많으셨겠습니다. 저도 엄청 멀다고만 듣고 가 본 적은 없거든요. 새벽부터 지금까지 그럼 계속 걸어오신 겁니까? 쉬지도 못하시고?”

야고보는 난색을 표하며 유다를 슬쩍 돌아보았다. 요셉만 방어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요한이라는 이 남자도 만만치 않았다.

“네. 그런데 저희는 형을 만나러 왔어요. 더 늦기 전에 저희를 안내해 주셨으면 합니다.”

유다가 야고보의 뜻을 읽은 듯이 말했다. 요한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럼 안내해 드려야죠. 그런데 지금 사람이 이렇게 많아서 모두 들어가실 순 없고.”

“제가 같이 들어가겠습니다.”

야고보가 나섰다. 요셉과 시몬은 자신들도 가겠다고 나섰으나, 일단 야고보가 먼저 형을 보고 나서 이쪽으로 모시고 나오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그러면 제 손을 꽉 잡고 따라오십시오.”

요한은 그렇게 말하고 야고보의 손을 잡은 채로 사람들 사이의 길을 열었다. 요셉과 유다는 잘 말하고 오라며 야고보의 등을 툭툭 쳤다. 야고보는 걱정하지 말라는 사인으로 손을 들어 올리고는 군중 속으로 걸음을 옮겼다.

군중을 헤치고 걸어갈수록 멀리 앉아 있는 한 인물이 가까워졌다. 야고보는 실루엣만으로도 그가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이윽고 예수의 얼굴이 또렷하게 보이는 곳까지 왔다. 평소에도 잘 먹지 않아 마른 얼굴이었는데, 이전보다 더 홀쭉해진 얼굴에 햇볕에 그을린 얼굴이 더 검고 다소 상해 있었다.

‘형.’

야고보는 예수를 보자마자 눈물이 왈칵 쏟아지려는 것을 가까스로 입술을 물어 참았다. 오랜만에 만나는 형 앞에서 눈물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였다.

‘얼마나 고생을 한 거야. 공부하고 호강하기를 바랐더니.’

그 순간이었다. 고개를 돌리던 예수가 야고보를 바라보았다. 야고보는 순간 긴장으로 볼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나를 알아보겠지, 나 역시 형처럼 많이 얼굴이 상했으려나. 그래도 좋은 모습을 보여야지. 그런 생각에 입꼬리를 최대한 올렸다. 예수의 눈이 반짝였다. 꼭 헤어졌던 그 날처럼. 야고보는 깊은 숨을 내쉬었다. 시간이 정지해 버린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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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내일 올릴 부분이 가장 이 소설의 하이라이트가 될 것 같은데요. 지금 수정 중이라 내일 올라갈 수 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최대한 빨리 올려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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