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비대칭성
유월절이 시작된 저녁. 집집마다 유월절 음식을 준비하고 나누는 시간이었다. 예수의 집도, 유월절마다 함께 특별한 식사를 했다. 어린양을 준비하고 나누면서, 예수는 이날만큼은 유월절의 유례, 즉 이집트에서 노예 살이를 하던 이스라엘 민족이 모세와 함께 어떻게 그곳을 빠져나왔는지를 이야기해 주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내지 않는 이집트 땅에 열 가지 재앙을 내려. 그 열 가지 재앙이 뭘까, 안나?”
언제나처럼 제 무릎 위에 앉은 안나에게 묻자, 그녀는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첫 번째 재앙부터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래, 아주 잘했어. 앞서 아홉 번의 재앙이 다 내려도 파라오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내지 않았어. 그래서 마지막 열 번째 재앙을 내리지. 바로 집집마다 맏아들과 처음 낳은 것을 거두어 가시는 거였어.”
예수의 눈이 일순 고요해졌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그 재앙을 내리면 안 되었기에, 그들에게는 그 재앙을 피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해 주셨지. 그것은 바로 어린 양을 죽여서 그 피를 문설주에 바르는 거였어.”
늘 듣던 이야기였지만 이 대목에서는 모두들 숨을 죽였다. 예수의 목소리가 어쩐지 슬프게 느껴져서였다.
“하나님께서는 이집트인들의 집에는 재앙을 내리셨지만, 문설주에 어린 양의 피를 바른 이스라엘 사람들의 집은 건너뛰었지. 맏아들은 살 수 있었지만 대신에 어린 양은 죽어야 했던 거야.”
야고보는 두 눈을 번쩍 떴다. 식은땀에 누운 곳이 축축했다. 그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는 처음 보는 공간에 누워 있었다.
“일어나셨어요?”
문이 열렸다. 야고보를 보는 이도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그는 제가 누워 있던 침상에서 몸을 일으켰다.
“여기가 어딥니까? 그리고 누구십니까?”
“성 안에 쓰러져 있었다면서요. 우리 오빠가 데리고 왔어요.”
그제야 기억이 났다. 한참을 고민했다. 형을 보러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몇 번이고 성 밖으로 나가려다가 다시 돌아왔다. 그러다 다리에 힘이 풀렸고, 정신을 잃었다. 누군가 큰 소리로 그를 부르는 소리를 어렴풋이 들었는데, 아마 이 여자의 오빠인 모양이었다.
“우리 같이 유월절 식사해요.”
여자가 다시 말했다. 유월절 식사라고. 형은 십자가에 달려 있는데 내가 무슨 염치로. 그는 눈을 감고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무슨 일이 있으신 건지 얼굴이 많이 상했어요. 오늘은 우리 민족이 구원받은 날이잖아요. 그러니 뭐라도 좀 드시고 기운을 내세요.”
하나님께서는, 이집트 노예로 살던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셔서 새로운 땅으로 인도하셨다. 이스라엘 민족은 아직도 그것을 명절로 지키며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한다. 그러나 야고보는 알 수가 없었다. 무엇을 찬양한다는 말인가. 제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을 떠났다. 하나님을 그토록 사랑하던 사람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겠다고 가족도 버린 사람이 그 하나님께 버림 받았다. 그런 날에 내가 뭘 먹을 수 있을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됐습니다. 구해주셔서 고마웠습니다.”
야고보는 몸을 돌려 문가로 걸어갔다. 어디로 갈지는 알 수 없었으나, 유월절 음식을 먹는 이곳에 있고 싶지는 않았다. 그때였다. 건드리지도 않은 문이 벌컥 열린 것은. 야고보는 놀라 엉덩방아를 찧었고 들어선 남자 역시 깜짝 놀라서 멈추어 섰다.
“아이쿠, 죄송합니다. 괜찮으십니까?”
투박하고 큰 손이 야고보의 손을 잡았다. 야고보는 문득, 손이 크고 따뜻했던 예수를 떠올렸다. 늘 굳은 살이 박혀 있어서 딱딱했던 손. 그 손이 다시 느껴지자 야고보의 눈에서 눈물이 비어져 나왔다.
“많이 아프십니까? 이걸 어쩌나. 죄송합니다.”
몸을 일으킨 야고보의 얼굴이 안 좋은 것을 보고 남자가 안절부절 못 했다. 그것이 아닌데, 야고보도 괜히 미안해졌다.
“아닙니다. 넘어져서 아파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누가 좀 생각이 나서요.”
야고보는 그렇게 말하고 나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남자와 여자를 마주 보았다. 두 사람은 안쓰러운 눈으로 야고보를 보고 있었다. 남자가 다시 입을 열었다.
“어서 앉으시죠. 저는 요리를 잘 못 하지만 안나는 솜씨가 아주 좋답니다.”
“안나, 내 여동생 이름인데.”
야고보가 중얼거리자 남자가 마주 활짝 웃었다.
“그렇군요. 이름이 같네요. 그러면 여동생이 차린 식사라고 생각하시고 좀 드십시오. 지금 얼굴이, 아주 많이 상하셨습니다.”
야고보는 손으로 제 얼굴을 쓸어내렸다. 내 얼굴이 상했다고 한들, 형인 예수만 할까. 그는 아직도 십자가 위에서 고통당하고 있을까, 아니면 그만 세상을 떠났을까.
“오늘, 제 형이 죽었습니다.”
야고보는 제가 무슨 말을 지껄이는지도 모른 채로 말하기 시작했다.
“저는 그 형이 죽는 것조차 보지 못하고 도망쳐 왔습니다. 의절하긴 했지만, 그래도, 한때는 사이가 좋았거든요. 그런데 못 보겠더라고요.”
야고보의 손에 남자의 손이 쥐여졌다. 고개를 돌린 야고보는, 남자의 눈에도 눈물이 그렁그렁 고여 있는 것을 보았다.
“그러셨군요. 그런 사정이 있으셔서.”
그런데 어디선가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야고보는 안나라는 그 여자가 아예 두 눈을 손으로 가린 채 울고 있는 것을 보았다.
“아니, 왜 우십니까?”
“너무 슬퍼서요. 도망치셨다는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사정이 있었겠죠. 저도 제 막내 동생을 잃었어요. 몇 년 전에, 그날도 유월절 며칠 전이었죠. 갑자기 고열이 나더니 세상을 떠났어요.”
남자도 묵묵히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야고보는 제가 괜히 이 오누이의 상처를 건드렸다는 생각에 미안해졌다.
“저, 과거 일을 떠올리게 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알아요. 일단 좀 앉으세요. 우리 먹으면서 이야기 나눠요.”
안나의 권유에 야고보는 자리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한 말로 이들도 슬퍼졌는데, 이들만 두고 떠나기가 양심에 꺼려졌기 때문이었다. 곧 야고보의 앞에 누룩을 넣지 않은 빵과 쓴 채소, 그리고 양고기가 놓였다. 누룩을 넣지 않은 빵은 유월절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쫓기는 처지이기에 누룩으로 충분히 빵을 부풀게 하지 못했음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의미에서, 쓴 채소는 이집트 노예 시절을 기억하기 위해서, 그리고 양고기는 마지막 재앙으로 양을 죽이고 나서 그것을 먹었던 것을 기념하는 의미로 먹는 것이었다.
“저는 야고보입니다.”
통성명부터 해야 할 것 같아 야고보가 말했다. 그러자 남자가 말했다.
“저는 유다입니다.”
“아, 제 동생 중에도 유다가 있습니다.”
야고보의 말에 유다와 안나가 웃었다.
“특별한 인연이군요. 어쩌면 하나님께서 우리가 만나기를 예비해 두신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들이 웃자 야고보의 얼굴도 부드럽게 풀어졌다. 두 사람의 얼굴이 야고보를 향했다. 도저히 식욕이 돌지 않았지만, 야고보는 억지로 누룩을 넣지 않은 빵으로 양고기를 싸서 입에 넣었다. 그러자 유다와 안나도 식사를 했다.
“그런데, 이 집에는 두 분만 사시는 겁니까?”
집이 꽤 큰 편인데 사는 이는 유다와 안나뿐인 것 같아서 야고보가 물었다. 유다가 쓸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안나가 아까 말한 막내 동생도 있었고, 실은 부모님도 계셨었습니다. 그런데 부모님도 동생과 같은 병에 걸려서 돌아가셨죠. 저희 둘만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겁니다.”
야고보는 할 말을 잃고 고개를 숙였다. 또다시 괜히 상처를 건드렸다 싶었다.
“그러시군요.”
“그러다 보니 처음에는 둘만 살기가 힘들었습니다. 제가 동생마저 잘못될까 봐 단속을 좀 심하게 했거든요. 먹는 것을 특히요. 안나가 보시다시피 잘 먹지를 않습니다.”
야고보는 안나 앞에는 음식이 거의 없는 것을 보았다. 안나는 유다를 향해 말했다.
“알잖아, 나는 먹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그래도 잘 먹어야 한다고 했잖아.”
투닥거리는 두 사람을 보며, 야고보는 문득 가족들이 생각나 입꼬리를 올렸다. 그러다가 다시 쓸쓸해지고 말았다.
“전에는 이거로 화도 많이 내고 했는데, 안나 말도 일리는 있더라고요. 먹는 걸 싫어하는데 억지로 먹으면 오히려 속이 더부룩하다고요. 제가 안나 말을 믿어주지 않고 그냥 저만 옳다고 하는 그런 오빠였더라고요.”
야고보는 유다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하지만 오빠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죠. 걱정이 되니까요.”
“네, 그것도 맞습니다만 사랑하면 걱정하는 대신 믿어야 하더라고요.”
유다의 말에서 문득, 예전에 예수가 하던 말이 겹쳐 들렸다.
- 나를 사랑하면, 걱정하지 말고 믿어줘.
간절한 눈으로 하던 그 말이, 다시금 생생하게 들리면서 야고보는 울컥 슬픈 감정이 일어나는 것을 느꼈다. 그래, 나는 한 번이라도 형의 말을 믿었던가. 그가 어떤 말을 하는지 들었던가. 가버나움의 그 집에서는 형이 무슨 말을 하는지 보려고 구름같이 사람이 몰렸었는데. 나는 그저 형을 그곳에서 끌어내기에 급급했지 형이 하는 일이 뭔지 관심이라도 가졌었는가.
“그러니까. 오빠가 그렇게 마음을 먹고 나서 훨씬 덜 다투게 됐죠.”
안나가 말하면서 유다를 바라보았다.
“그래도 또 말도 안 되는 것으로 간섭하긴 하지만.”
“간섭이 아니라니까? 내가 예전 같으면 할 말도 요즘은 참고 넘기는 적도 많다고.”
다시 투닥거리는 오누이를 야고보는 먹먹한 기분으로 보고 있었다. 그래, 죽으면 서로 이러지도 못하는 거잖아. 곁에 있을 때, 살아 있을 때가 기회였던 건데.
“형에게 가야겠습니다.”
식사를 마친 야고보가 말했다. 늦었을 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가야 했다. 유다와 안나가 서로를 바라보았다.
“형이, 세상을 떠난 것이 아니었습니까?”
“그건 맞는데. 그래도 늦게라도 가야 할 것 같아서요. 그래야, 제대로 이별을 할 것 같습니다.”
야고보의 말에 유다와 안나가 응원하듯이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잘 생각했습니다. 이제라도 가서 마지막 인사를 전하십시오.”
유다가 야고보를 가볍게 포옹해 주었다. 안나와도 인사를 나누고 나서 야고보는 집을 나왔다. 야고보는 유다와 안나의 집이 예루살렘 성 북쪽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것을 깨달았다. 조금만 더 가면 십자가가 있을 것이다. 과연 얼마 가지 않아, 세 개의 십자가가 어둠 속에 나란히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가까이 이르기도 전에 피비린내가 났다. 야고보는 걸음을 멈추었다. 십자가는 이미 비어 있었다. 그러나 조금 전까지의 참상을 드러내듯이 십자가와 바닥에는 피가 아직도 흥건히 젖어 있거나 고여 있었다. 높이 뜬 달빛에 십자가의 명패가 보였다.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 분명하게 쓰여진 그 명패 밑의 십자가를, 야고보는 오래도록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