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비대칭성
“형.”
어느 순간 야고보는 십자가 아래에 무릎을 꿇었다. 시체도, 시체를 지키는 이도 없는 고요한 언덕이었다. 그러나 어쩌면, 형의 영혼은 이곳에 있을지도 모른다.
“너무 늦게 와서 미안해.”
그의 손이 바닥에 떨어진 핏자국을 쓸었다. 검게 굳어가는 피가 손끝에 느껴졌다. 문득, 제가 일을 하다 손을 다쳤을 때, 그 손을 가져다가 쓸어주던 예수의 투박한 손이 떠올랐다. 굳은 살이 잔뜩 박혀서 오히려 그 손으로 쓸어내리니 아팠지만 야고보는 그래도 그것이 좋아서 가만히 있었다.
“내가 아플 때는 언제나 형이 있었는데, 형이 아플 땐 나는 도망이나 쳤네.”
눈물이 후드득 떨어져서 피와 섞였다. 그래, 아무리 의절을 했어도 마지막 자리에는 왔어야 했는데. 외면하고 도망치지 말았어야 했는데. 가버나움에서 헤어진 후에 예수가 제자들과 함께 나사렛에 온 적이 있었다. 그때 야고보는 일부러 그가 보고 싶지 않아서 세포리스로 가 버렸다. 거기에서 며칠 동안이나 머물며 일을 하다가 돌아왔다. 그 모든 날들이 야고보의 가슴에 쓰린 생채기를 남기고 있었다.
“그게 형을 만난 마지막이었다면, 차라리 형이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들어볼 것을 그랬어. 그리고 형이 어떤 길을 가든 그 길을 축복해줄 것을 그랬어.”
말도 안 된다고 미쳤다고 귀신 들렸다고 하는 대신에, 뭐라고 하는지 귀를 열 것을 그랬다. 그것이 설령 야고보에게는 진실이 아니었더라도, 예수에게는 진실이었으니까.
“나는 형을 사랑한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아니었나 봐.”
예수가 원망스러웠다. 하룻길을 걸어서 가버나움으로 갔더니, 내 가족은 내 말을 믿고 내 뜻을 따르는 자라며 가족을 내쳐버린 그는 두고두고 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했었다. 저는 형을 이렇게도 사랑하는데, 그런 자신을 형은 더는 사랑하지 않는다고 믿었다.
“미안해, 형.”
야고보는 바닥에 이마를 대었다. 그토록 울고도 눈물이 남았는지 또다시 눈물이 쏟아졌다. 사랑인 줄 알았던 마음이 집착이고 욕심이었다는 것을 이제야 알 것 같았다. 그저, 형이 제 생각대로 살아주기만 바라는 마음, 저와 같은 마음으로 있어주기를 바랐던 집착이었다. 그것을 예수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더 설명하지 않고 기도하겠다는 말로 이별을 고했을 것이다. 자신을 이해해주지 않는 가족들을 원망하지 않고, 묵묵히 그들을 보냈을 것이다.
“내가 다 잘못했어.”
이제야 예수의 아픔이 보였다. 자신은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라고 믿고 제 길을 갔지만 가족들에게는 외면 받아야 했던 그 마음을. 아무도 들어주지 않던 그의 진실을. 죽어가는 순간까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이 못난 동생은 그런 형을 볼 자신이 없어 이곳에 오지도 못했는데. 보는 것만이 아닌 몸으로 겪어낸 이 형벌은 얼마나 괴로웠을까. 야고보는 십자가를 바라보았다. 조금 전까지 그곳에 매달려 죽어가던 형이 보이는 것 같아서 그는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아무리 그리워해도, 아무리 보고 싶어도 이제는 그를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쉽게 믿어지지 않았다. 그는 다시 바닥을 쥐어 뜯었다. 굽은 등이 한없이 떨렸다.
“그래서 우리는 매해 이렇게 양고기를 먹는 거지?”
안나는 예수의 무릎 위에 앉은 채 물었다. 예수는 안나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 주었다. 유월절 식사가 끝난 저녁이었다. 가난한 집에서는 한 마리를 온전히 먹을 수 없어 친척들과 나누어 먹었다. 올해도 갈렙 아저씨가 조금 나누어 주어서 겨우 먹을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래.”
예수는 그렇게 말하고 나서 시선을 먼 곳에 던졌다.
“그런데 언제나 이렇지는 않을 거야.”
“그게 무슨 뜻이야?”
“이렇게 먹는 것도 언젠가는 끝이 난다고. 하나님이 친히, 제물을 준비해 주실 거거든. 지금 우리가 이 양을 먹는 것은 언젠가 있을 그 날을 준비하는 거야.”
“응?”
안나는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는 얼굴로 예수를 보았다.
“지금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려면 지나치게 많은 준비가 필요하잖아. 일단 제사를 드려야 하니 양을 준비해야 하고.”
“응.”
“그런데 아마도 곧, 더는 그렇지 않을 날이 올 거야. 우리가 하나님 앞에 준비해야 할 것은 오직 믿음밖에는 없는 날이. 그분이 친히 준비하신 어린 양을 믿는 믿음.”
야고보는 예수의 말을 끝내 이해하지 못한 안나와, 예수를 번갈아 보았다. 그 예수의 시선이 야고보를 향했다. 그리고 야고보는 두 눈을 떴다.
야고보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는 십자가 밑에 엎어져 있었고, 어느새 하늘은 옅은 새벽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이곳에서 울다가 잠이 들었나. 그는 몸을 일으키려다가 제 몸을 덮고 있는 겉옷을 보았다. 그것은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뭐지?’
이곳에 온 사람이 있나. 주변을 둘러보아도 인적은 느껴지지 않았다. 몸을 일으키니 새벽의 찬 기가 몸에 스며들어 추웠다. 그는 누구의 것인지 모를 겉옷으로 제 몸을 감쌌다. 문득 조금 전에 꾼 꿈이 떠올랐다.
‘그건, 어느 날 유월절 저녁에 형이 한 말이었어. 무슨 뜻인지 몰랐었는데.’
유월절의 양, 그리고 친히 양을 준비하신 하나님, 그리고.
‘그 피는 많은 사람을 위해 흘리는 언약의 피라고 하셨습니다.’
요한이 한 말과.
‘나는 아버지의 뜻을 실현하기 위해 이 땅에 왔어.’
예수가 야고보에게 한 말이 차례로 생각났다. 야고보는 고개를 들었다. 비어버린 십자가에는 여전히 그 팻말이 걸려 있었다.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 그리고 묵묵히 그 글자를 바라보던 야고보는 순간 큰 충격이라도 받은 듯이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형이, 유월절에 바쳐질 어린 양이라는 거야? 친히 준비하신 제물이 형이었다고?’
말도 안 되는 생각이었다. 하나님은 결코 인간을 제물로 받지 않으신다. 나무에 달린 사람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야고보는 그 사실 대신에 제 안에 생생하게 떠오르는 생각과 느낌을 부인할 수 없었다.
‘형이 정말 메시아였고, 하나님의 뜻이 형을 유월절의 어린 양으로 바치는 것이었다면.’
무릎을 꿇은 채로 야고보는 십자가를 올려다 보았다. 그리고 어떤 계시처럼, 그 십자가의 뒤로 태양이 떠오르는 것이 보였다. 하늘을 붉게 물들이면서 찬연한 빛이 간밤의 어둠을 물러가게 하고 있었다. 야고보의 눈에서 의미를 알 수 없는 눈물이 흘러내렸고 그 순간에 그의 마음이 울리며 누군가가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야고보, 조금만 기다려. 내가 돌아가서 모든 것을 설명해 줄게.]
시원한 바람 한 줄기가 야고보의 머리칼을 시원하게 날려 주었다. 그 바람은 꼭 살아 있는 누군가에게서 느껴지는 숨결인 것 같았다. 야고보는 깊이 심호흡했다. 마치 태어나서 새 숨을 쉬는 것처럼, 온몸의 감각이 새롭게 살아나고 있었다.
*
“혼자 갈 거야?”
요셉은 바닥에 누워 있었다. 원래는 요셉과 야고보가 같이 세포리스로 가기로 약속된 날이었다. 그곳에 대규모 공사가 있어서였다. 그런데 어제 요셉이 그만 다리를 다치고 말았다. 나뭇가지를 대고 다리를 꽁꽁 묶은 채 요셉은 내내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하고 있었다. 야고보는 연장을 챙기며 말했다.
“그럼, 혼자라도 가야지.”
“내가 가야 하는데. 형은 손이 굼뜨잖아. 유다라도 데리고 가든지. 아, 유다는 더 심한가.”
요셉의 말에 유다가 발끈했다.
“누워만 있는 주제에 말 함부로 하지 마.”
“뭐? 어제까진 내가 먹여 살리고 있었구만 이게 은혜를 모르고.”
둘이 투닥거리는 것을 보다가 야고보는 피식 웃었다. 에스더가 빵과 올리브를 싼 도시락을 야고보의 가방에 넣어 주었다. 어머니 마리아는 가족을 떠나 예수의 제자들과 지내고 있었다. 그래서 마리아가 하던 일은 에스더가 이어서 하고 있었다.
“혼자 괜찮겠어? 유다 오빠하고 시몬은 오늘까지 작업해야 할 게 있어서 못 갈 것 같아.”
“괜찮아. 예전에 형은 혼자서도.”
야고보는 입을 다물었다. 예수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그들에게 금기였다. 잠시 적막해진 분위기를 깬 것은 요셉이었다.
“우리한테 형이 어디 있어.”
예수의 제자들은 그가 부활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가족들은 어머니 마리아 외에 아무도 믿지 않았다. 야고보 역시 제자들이 너무나도 예수를 사랑한 나머지 헛것을 보는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야고보는 예수를 부정하고 싶지는 않았다.
“형은 있었지. 더 말하지 말자. 다녀올게.”
야고보는 다시 적막해진 집을 나섰다. 예수가 세상을 떠난 지 한 달 여가 지났다. 집은 조금씩 옛날의 활기를 찾아가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지낼 수는 없었다. 어머니 마리아마저 떠난 집은 때로 견딜 수 없이 황량했다. 그리고 그 무게를 야고보는 오롯이 두 어깨에 짊어진 채 하루하루 살아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