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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나비 Jul 17. 2024

신비로운 일의 시작 2

두 편이 되다니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는 내가 대학교 다닐 때 보았던 영화였다. 당시 나는 '촉망받는' 청년부였고 반주자였고 교사였고 작은 교회에서 이것저것 하던 그런 학생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 내면이 늘 성령이 충만하고 사랑이 가득했던 것은 물론 아니었지만, 나는 적어도 대학생으로서, 그리고 기독교인으로서 품위를 유지할 줄 알았다. 그러던 어느 날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라는 영화가 나왔는데 이제까지의 십자가가 나오는 영화 중에서 킹왕짱이라더라는 소문이 돌았다. 기독교인이라면 당연히 봐야 한다는 여론이 일었고 우리 청년부에서도 청년부 회장 언니가 그랬는지 단체로 표를 구입해 버렸다.


하지만 나는, 정말이지 나는 영화에서 피가 나온다거나 하는 고어는 영 질색인 사람이었다. 내가 잘 못 보는 영화가 귀신 나오는 영화랑 칼 나오는 영화인데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는 이미 내용을 다 알고 있으니 굳이 그것을 봐야 하나 싶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을 보지 않으면 내가 또 예수님을 안 사랑하는 사람이 될 것 같아서 어쩔 수 없이 영화를 보러 갔다. 자리가 공교롭게도, 아주 스크린이 큼지막하게 보이는 정중앙 자리였다. 아니 꼭 이런 자리에서 피 나오는 영화를 봐야 하냐고. 나는 티도 내지 못하고 자리에 앉았다. 영화가 시작되었고... 너무나 나쁜 소식은 사탄으로 그려지는 '귀신'도 등장한다는 것이었다. 정말이지 내가 싫어하는 요소로 꽉꽉 채워진 영화였던 것이다.


결국 나는 도중에 눈을 감아버리고 말았다. 그냥 성경책을 읽겠어요. 왜 굳이 저걸 화면을 저렇게 크게 해서 봐야 하냐고요. 폭행과 채찍질, 끝내는 살을 뚫는 장면(못 박히는 장면)까지. 괴로워하는 예수님을 보면서 나는 그냥 자리를 박차고 도망가고 싶었다. 여기저기서 우는 소리들이 들리는데 나는 울기는 커녕 현기증이 나서 미칠 지경이었다. 


그렇게 안 좋은 기억으로 남은 그 영화. 다시는 볼일도 없었던 영화. 가끔 고난주간 기념으로 교회에서 편집된 화면으로만 봐도 기분이 안 좋아지던 그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이상하게도 그 영화가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 영화를 보면 예수님이 사약이 아닌 십자가에 못 박힌 이유를 알 수 있으려나. 그런 생각도 있었고 내게 그 영화 이야기를 해준 집사님이 꽤 실감나게, 그 영화가 은혜로웠던 것을 설명했기 때문이었다.


마침 다음 날이 성금요일이었고 나는 시의적절하게 그 영화를 보게 되었다. 그날은 금요철야예배 때에 성찬식도 있었던 터라 이래저래 좀 분위기가 맞았다. 영화를 보는데, 이상하게 그때 스크린을 통해 보았던 것과는 조금 기분이 달랐다. 10분 기도의 위력이었을까, 아니면 때가 되어서였을까. 영화관에서 봤던 것처럼 눈도 감지 않고 나는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자세히 보았다. 내내 아들의 죽음을 지켜보던 마리아, 그리고 예수님을 채찍질하면서 킬킬거리던 로마 사람들까지(나는 아직도 그들이 왜 킬킬거렸는지 궁금하다. 직접 가서 물어보고 싶었다.), 하나하나 머릿속에 새겼다. 그리고 고통에 몸을 떨면서 예수님이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저들의 죄를 용서하소서. 저들은 저들의 죄를 모르나이다.


영화를 거의 다 보았을 때, 나는 문득 얼마 전까지 내가 죽고 싶었던 것을 생각했다. 나는 수차례 유서를 쓰고, 아파트에서 떨어질 궁리를 해댔다. 내 결혼 생활이 실패로 돌아간 것 같았고, 더 이상의 희망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때 학교 폭력을 당했을 때 이미 내 인생은 끝난 것이라는 생각도 했었다. 모든 안 좋은 과거들이 일어나서 나를 덮쳤고, 나는 죽는 것말고는 답이 없다고 늘 결론을 내리곤 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이 이어서 들었다. '그런 쓰레기를 위해서 당신은 이런 고통을 당하신 겁니까?' 죽고 싶어했던 나를 살리기 위해 당신은. 올바르고 성실하게 사는 사람이 아니라, 매일 안 좋은 생각만 하는 나를 위해서.


영화를 다 보고 나서 나는, 10분 기도 때에 회개를 했다. 그동안 죽고 싶어해서 죄송하다고, 당신이 살리려고 한 목숨을 멋대로 내던지려고 해서 죄송하다고, 당신은 그토록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그 길을 갔는데 나는 그저 이렇게 안락하게 사는 삶조차 싫다고 내던지려고 해서 죄송하다고. 그것 외에도 늘 죄인지 아닌지 헷갈렸던 은밀한 죄까지 고백하고 돌이키기로 결단하고 예수님이 내 주인이 되어 달라고 청했다. 처음 교회를 다닐 때 하는 영접기도였다. 그리고 그 기도 이후, 내 삶은 완전히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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