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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로피칼 오렌지 Oct 15. 2020

해외취업 6년. 커리어 패스에 대해 바뀐 생각

나는 무엇을 쫓고 있었나

2015년 동남아 취업으로 말레이시아에 첫 발을 내딛고 6년차. 지금은 미국에 본사를 둔 AdTech 회사의 APAC 사무실 소속 Account Manager 로 일을 하고 있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은 '좋은 직장', '좋은 일자리', 그리고 '내세울만한 커리어'였다. 몇가지 변화로 인해 커리어에 대한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첫번째 계기, 누구나 들으면 알만한 기업에서의 면접기회. 

그냥 면접 기회가 아니라 최종 면접과 연봉 협상까지. 항상 그 회사에 가고싶었는데, 항상 꿈에 그리던 자리였는데. 7차례 면접을 모두 마쳤다. 프레젠테이션을 비롯해 다양한 면모에 대한 심층 인터뷰를 1:1로 거쳤다.


최종 면접 결과를 기다리고 있던 중 채용팀에서 전화를 할 수 있냐고 했다. 최종 합격 소식인줄 알았다.


미안하지만 코로나 상황때문에
모든 신규 포지션이 홀딩됐어.
다시 열리면 알려줄게.


아.


지금 회사에 입사한지 3개월째부터 무던히 이직 기회를 노렸다. 면접도 숱하게 봤고, 최종 면접에 간 회사도 더럿 있었다. 하지만 이건 뭔가 달랐다. 내가 그토록 가고 싶어했던, 꿈에 그리던 직장. 눈 앞에서 모든 걸 놓친 느낌이었다. 


이직 인터뷰를 그 이후에도 봤지만, 이 계기로 무언가 '이직'에 대한 욕심이나 열정이 사라진 것도 사실이다. 


방콕 집근처 펍. 분위기도 좋고 크루들도 좋아서 자주 갔었다.

두번째 계기, 코로나.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는 코로나 여파를 크게 받지는 않았지만, 업무 환경을 비롯해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해외여행을 할 수 없는 건 엄청난 타격이었다. 


그중에서도 싱가포르에 있는 남자친구와 만날 수 없다는 게 가장 컸다. 말레이시아에서도 태국에서도 격주로 싱가포르를 오가곤 했다. 금요일 일을 마치자마자 공항으로 퇴근하고, 월요일에는 첫비행기로 출근을 하는 생활. 일년에 싱가폴을 최소 스무번은 오갔을거다. 코로나로 인해 남자친구도 태국에 올 수 없었고 이도저도 못하고 서로 발이 묶여버렸다.


코로나 상황이 심각해지면서 3월 중순부터 우리 회사도 남자친구 회사도 공식적으로 WFH(재택근무)에 돌입했다. 그러니 반년 이상을 각자의 나라에서 재택근무를 한 셈이다. 중간에 태국생활을 도저히 못버티겠어서 나는 한국행을 택했다. 그리고 6월부터 쭉 한국에서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


특히 우리 회사는 출장이 잦고, 해외 여러 나라로 쪼개진 오피스들이 많아 기존에도 원격근무를 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전직원이 재택근무로 바로 전환할 수 있었다.


이렇게 재택근무가 가능해지면서, 굳이 한 회사에 매어있어야하나 하는 생각과, 평생 직장은 없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재택 근무 환경 (aka 앱등). 기계식 키보드 지름은 손에 꼽히는 지름이었다.


세번째 계기, 프리랜싱과 사이드 프로젝트.

올해에 가장 잘했다고 생각하는 일은 여러가지 사이드 프로젝트를 실행하고, 다른 소득원을 만들고 발전시켜나갔다는 점이다. 특히 한국에 들어오고 나서는 몇가지 소득원들이 어느정도 자리를 잡았다. 재택근무로 회사를 다니면서 한 성과이기에 더욱 값지다. 


사이드 프로젝트로 얻은 수익이 늘수록, 그리고 그 수익이 월급과 비슷해지거나 일부 월에는 월급을 뛰어넘으면서 나는 고민에 빠졌다. 일을 그만둘까. 그만둬도 먹고 살 수는 있을텐데.


지금 일은 적성에는 맞지만 사람과 안맞고, 쌓여가는 스트레스에 사무실에서 거의 실신상태로 응급실에 실려간적도 있다. 가장 독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은 배우는게 없다는 점이다. 개인적인 발전도, 업무적인 업스킬도 직장 내에서가 아니라 밖에서 이루어진다. 배움의 욕구가 직장에서 전혀 채워지지 않는 건 너무나 큰 스트레스다. 직장을 그저 돈벌이로 봤다면 스트레스를 덜 받지 않았을까.


지금 직장 월급만으로도 충분히 먹고살만큼은 된다. 아주 풍요롭지는 않아도 사실 돈이 급하거나 부족하지는 않은 정도다. 그런데도 꾸준히 프리랜싱과 사이드프로젝트 가능성을 열어두고 계속 시도한 것은 돈때문이 아니라 배움과 가능성 때문이었을 거다. 직장에서 계속 반복 업무와 얼토당토 않은 요구와 인간관계로 스트레스 받는 만큼 '(직장 내에서의) 커리어 개발'에 대한 생각이 점점 지워져갔다.



네번째 계기, 할 만큼 했다. (볼 만큼 봤다.)

광고 업계에서 혹은 디지털/온라인 마케팅 업계에서 가장 가고싶은 회사는 어딜까. 단연 G사와 F사를 제외하고 이야기하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 회사에도 그 회사 출신 동료들이 여럿 된다. 처음에는 왜 우리회사로 왔지? 하는 생각을 하다가도 점점 이런 생각이 드는거다.


'아 거기도 회사는 회사구나'


특히 말레이시아에서 알고 지내던 페이스북 소속 친구를 몇차례 싱가폴에서 만나고, 다른 글로벌 회사에 다니는 친구들과 얘기하면서 '꿈의 직장'에 대한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어느 내로라하는 회사에 가더라도 그저 직장인 타이틀일 뿐이고, 아무리 날고 기는 회사에 가도 '회사가 잘난 것이지 내 것이 아니다'라는 말이 이제서야 마음에 와닿기 시작했다.


업무의 불만족, 직장 생활에 대한 회의, 사이드 프로젝트의 성장, 주변 친구들의 영향 이런 여러가지 이유로 나는 직장 내에서가 아닌 직장 밖에서의 진짜 내 모습에 대한 생각을 더 많이 하기 시작했다. 직장인 타이틀, 어느 회사 무슨 소속의 누구가 아닌 '나'를 수식할 수 있는 말은 무얼까. 


그렇게 커리어 개발에 대한 시각이 바뀌고 있다. 정말 변화무쌍한 2020년을 지나고, 2021년에는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지 여러의미로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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