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탄산 가득 처세술, 인간 심리보고서
저자 한덕수는 경영 일선에서 리더로서 치열하게 지내다 동양고전을 비롯 다양한 인문학을 탐독했으며, 지금은 전업 작가의 길을 걷고 있다. <버릴 줄 아는 용기>, <진정한 나의 것>, <주역강독>을 썼다. 현재 <CINEWS> 논설위원이다.
동양철학에 빠져 있다는 저자는 약소하고 어지러운 나라일 수록 치세의 근간은 ‘법(法)’과 ‘술(術)’이라 강조하였다는 한비(韓非)의 이론을 집대성한 <한비자>는 진시황이 ‘이사’의 모함에 빠져 ‘한비’를 죽인 것을 통탄했고, 제갈량이 아들 유선에게 숙지할 것을 유언으로 남겼다는 기원전 280년 그러니까 4440년 전 비기이며 이 시대 리더들이 몰래 읽는다고 까지 하니 어찌 궁금하지 않을까.
이 책은 <한비자>에 담긴 총 55편의 내용 중에 유사한 것을 쳐내고 현대에 맞는 내용을 추려 32편을 완역하여 옮겼다. 기본적으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처럼 임금이 신하를 다스리는 데에 따른 리더의 자질과 자세를 다룬 것이겠다.
두 비기가 씐 시대적 배경이 혼돈의 시대였다는 점을 보면 세계 곳곳에서 끊이질 않는 전쟁이나 빠르게 변하는 인공지능 세상에서 혼돈이 익숙해진 이 시대와 꽤나 흡사할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 시대는 <한비자>는 그저 그런 고전으로 치부할 수 없다. 이렇게 대놓고 군주와 신하의 자질을 까대는 책이 어디 있을까? 너나 할 것이 위태위태한 리더들이 판치는 세상에서 이 책은 꼭 필요하겠다.
작지만 공공의 성격인 복지 기관에서 십수 년을 몸담고 나름의 조직 생활을 했다. 그래서 리더의 역할이나 자질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었다. 결국 버티지 못하고 떠난 이유도 그런 이유였고. 어쨌든 의미가 남다른 책이다.
첫 장, 이병(二柄)의 ‘형명참동(刑名參同)의 붙임말을 보면, 이 시대에서는 근무평가야 말로 직원의 사기를 떨어 트리는 주된 요인으로 평가된다. 그래서 혁신적인 조직에서는 없애는 추세인데 한비는 리더의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는 이 방법이 조직을 이끌어 가는 데에 꼭 필요한 것이라 한다.
수평적이기 보다 수직적인 조직문화가 좋고 리더와 조직원 사이는 이해타산적이라는 내용이 이 시대와 맞는 조직론인가 싶은 의구심이 든다. 위에서 찍어 누르면 다 해결되던 시대는 끝났다.
“백성이란 힘이라는 권력에 복종 하는 것이기에 의(義)에 따라서 움직이는 백성은 아주 드물다. 공자는 천하의 둘도 없는 성인이었다. 그는 스스로 행실을 닦고 도를 얻은 다음에 천하를 두루 다니며 설교를 하였다. 그러나 그가 말한 인의에 감동하여 제자가 된 사람은 겨우 일흔 명에 지나지 않는다. 결국 인의를 이해하고 이를 존중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는 것을 증명해 준다.” 33쪽, 오두(五蠹)
이어진 오두(五蠹)는 '혼란을 조장하는 다섯 가지 벌레들'이란 뜻으로 세상이 변하면 리더의 통솔법도 달라져야 한다고 설명한다. 한데 21세기, 기후 위기를 만드는 환경 오염이 판치는 세상을 보자면 인의(仁義)가 없어진 이기적인 세상이라서 그렇다고 하는 게 설득력 있지 않을까? 공자의 철학은 그저 입에 발린 소리일 뿐이라는 한비의 독설은 솔직히 납득하기 쉽지 않다.
또한 타인에게 후한 것이 재물이 넘쳐 쓰고 남아 돌아 그런 것일 뿐 비단 타인을 생각하는 도적적이거나 인격이 고결해서 그런 것이 아니고 철저히 자신의 ‘실익’에 따른 이유라는 내용이 뭉근하게 마음 불편했다. 한편으로는 딱히 딱 잘라 아니라고 하기도 뭔가 찝찝함이 있긴 하다. 그건 그렇고 공자에 열광하는 세상을 보면 한비가 보면 뒷목 잡는 거 아닌가 모르겠다.
반면, 상은 후하고 벌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엄하고 공정해야 한다는 설명이나 널리 백성에게 알려야 하는 말은 고상한 말로 만들어 봤자 필요 없다는 내용에는 급 공감했다.
워크숍이나 세미나에서 학자들이 떠드는 이론은 현장에서 코피 쏟아가며 일하는 실무자에겐 그저 탁상공론뿐인 게 대부분이라서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정치 이론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줄곧 한비가 주장하는 법과 술에서 보면 공자의 인과 의는 허울좋게 떠드는 학자나 유세가들의 립서비스 뿐일지도 모르겠다. 사실 현시대는 법술과 인의가 동시에 필요한 세상이 분명하다. 아무튼 읽으면 읽을수록 한비는 굉장히 극단적인 사람이지 않았을까 싶을 만큼 철학에 있어 모 아니면 도다.
유가와 묵가의 비교도 그렇거니와 부와 빈의 차이 또한 그렇게 본다. 부유한 이는 부지런하거나 근검해서 부를 모은 것이고, 가난한 자는 게으르거나 사치스러워 빈곤한 것이라서 결국, 요즘 말로 후원이나 기부는 열심히 일해서 얻은 것을 빼앗아 노력도 하지 않은 게으른 사람에게 퍼주는 일이라서 잘 살아 보겠다는 백성의 올바른 의지를 꺾는 것이라는 것이라는데 보면 볼수록 그의 견해는 참 낯설다.
보다 보면 일말 공감되는 부분도 적지 않다. 예를 들자면, 한비는 현학(顯學) 편에서 학자들을 시정잡배 취급한다. 조선 시대로 치자면 백성을 주린 배를 움켜쥐고 소작을 해야 하는데 양반은 일도 하지 않고 책장만 넘기면서도 배불리 잘 먹고 잘 사는 불편부당한 일을 지적한다. 그럼에도 한비의 비판은 적지 않은 충격파를 동반해서 도무지 중간이 없다는 느낌이지만 충분히 곱씹을만 하다.
그나저나 군주의 열 가지 잘못에 대한 십과(十過)에서 제나라 안탁취와 환공의 이야기를 보자 문득 지금 이 나라엔 충언을 듣지 않는 임금과 충언을 할 생각도 없는 정치가가 넘쳐나는 정치판인 현실에 참담한 마음이 들었다.
한비에게는 도대체 어떤 피가 흐르고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그의 사상에는 처절한 면이 있다,라는 저자의 표현처럼 한비의 정치 철학은 뼈때리는 단호박이다. 그래서 살짝 불편한 감도 없진 않지만 금세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촘촘한 논리에 매료된다.
그리고 홀로 불만에 가득 찬 마음인 고분(孤憤) 편을 보면, 한비가 왕가의 서출이라는 신분의 한계로 고립되어 뜻한 정치를 펼치지 못하고 <한비자>를 울분을 토하듯 써낸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그의 처지를 헤아린 글을 보면 위로를 건네고 싶어진다.
“일을 안다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안 다음에 어떻게 처신하느냐에 그 어려움이 있다.” 109쪽, 세난(說難)
7장, 세난(說難) 편 ‘상대에 따라 다르게 말한다’에서 나온 문장으로 전기 100만 볼트가 관통이라도 한 듯 머리가 쭈뼛해졌다. 그것이 어디 일뿐이겠나 인간관계에서도 그렇지 않을까?
경험상 조직에서 벌어지는 거의 대부분의 일이나 관계에서 잘못되었다는 것을 리더가 아는 건 어렵지 않지만, 그걸 안 후에도 고쳐지지 않는 분위기나 상황이 점점 조직에서 버티기 어렵게 만들었었다.
결국 튕겨져 나왔지만 여전히 버티고 있는 이들의 고충을 전해 듣는 일은 썩 유쾌하지 않는 일이라서 제발 관리자들의 정신을 차리길 바라는 심정이 크다. 그곳엔 역린을 건드리지 않고는 설득이 되지 않을게 뻔해서 그 누구도 용기를 낼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다. 그래서 조직이 위태로운 것이다. 어쩌면 망징(亡徵)일지도.
저자는 그런 징조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 하는데 퇴사자가 줄을 잇는 것이 신호라는 것을 리더가 모르면 큰일 아닌가.
“징조나 조짐이란 좋은 일이 생기거나 나쁜 일이 생길 기미가 보이는 현상을 가리킨다. 즉 무슨 일이 일어나기 전에 나타나는 수상한 신호와 같은 것이다.” 136쪽, 망징(亡徵)
책을 보노라면 한비의 정치에 대한, 특히 리더(임금)의 통솔에 대한 견해는 깜짝 놀랄 정도로 직설적이다. 아주 탄산 가득한 사이다 같달까. 혼란이 되풀이 되는 세상에서 리더들이 꼭꼭 숨겨 읽는다는 말이 공감이 될 정도로 줄치고 몇 번을 곱씹으면서 되새겨야 할 문장이 많아도 너무 많다.
게다가 해설과 같은 저자의 <붙임말>은 한비의 철학을 요즘에 맞게 생각해 볼 수 있게 쉽게 전달한다. 세상을 지배하려는 욕망을 둘러싼 심리를 파헤친 한비자의 주옥같은 지침을 담은 심리 보고서다.
현 임금에게 읽어 보길 강추한다. 어쩌면 문장 하나 하나에 뼈가 시리지 않을까 싶지만 군주의 자질은 병아리 오줌만큼이라도 좀 갖춰야 하지 않겠나. 그리고 리더를 떠나 현대인들이라면 처세에 꼭 필요한 비기임에는 틀림없다. 두고두고 아껴 곱씹을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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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