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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세대의 거짓말(1)
: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삶

2020년 초반, 대한민국 베스트셀러는 다 누워있다는 우스갯소리가 돌았다. 서점에 가면 예쁘장하고 알록달록한 책들이 하나같이 ‘뭘 안 해도 괜찮다’ ‘하고 싶은 대로 해도 괜찮고 있는 그대로도 괜찮다’라고 말했다. 표지 속 인물들 역시 저자의 조언에 걸맞게 죄다 드러누워 있었다. 요즘 세대는 ‘OO해도 괜찮아’를 좋아한다고 한 줄로 요약해주는 매대였다. 


이런 책들에 시큰둥한 내게 친구가 물었다. 왜 이 좋은 말들에 그렇게까지 시니컬하게 구느냐고. 나는 이렇게 답했다. 


책을 쓰는 건 굉장히 노력이 많이 들어가는 일이고, 그 많은 원고를 뚫고 성공하는 일은 치열한 경쟁이지. 이 저자들은 부지런히 노력해서 쓴 책들로 큰돈을 벌고 있잖아. 그런데 독자에게는 누워서 쉬라는 건 무슨 모순이지?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가 그 책들을 삐딱하게 바라본 근본적인 이유는 내 주변 사람들이, 우리 세대가 그 책처럼 아름답고 여유롭게 살고 있지 않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또, 저자들이 말하는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며 남과 비교하지 않는 삶’은 실현 불가능한 구호에 불과한 것 같았다. 이 책들이 Z세대를 대표한다고 하지만, 나는 Z세대에 대한 잘못된 이해라고 생각한다.


설문 속 Z세대의 소리 없는 아우성


 Z세대가 응답한 설문을 통해 Z세대를 이해해보자.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행복 키워드: 소확행 (51.8%). 그 이유는 ‘가끔 오는 큰 행복보다 자주 느낄 수 있는 작은 행복의 만족감이 크다’ (취업포털 커리어, 구직자 450명 대상, 2018)
‘성공적인 미래를 위해 몰입하기보다 현재의 일상과 여유에 더 집중하겠습니까?’ ‘그렇다 (78%)(대학 내일 20대 연구소, 2017 밀레니얼 세대 행복 가치관 탐구 보고서, 20세~39세 남녀 800명)
‘당신에게 행복이란?’ ‘큰돈을 벌지 못해도 충분히 여가를 즐기는 삶 (1위 33%)’ ‘타인의 기준과 상관없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삶 (2위 23.3%)(서베이몽키, 2018, 2030 대상)


Z세대와 관련된 여러 설문 결과를 얼핏 보면 내 생각과 달라 보인다. 유사 Z세대인 취준생, 2030은 설문 조사에 위와 같이 꽤 건강한 정서의 답변을 보였다. 그러나 프로 불편러인 나는 각기 다른 기관에서 만든 이 설문지들에 어딘가 닮아있는 구조가 신경 쓰였다. 질문이 하나같이 ‘큰 행복’ ‘성공적인 미래’ ‘큰돈’ ‘타인의 기준’ 등을 부정하는 형태로 작성되었다.


문득 회색 코끼리 이야기가 떠올랐다. 회색 코끼리를 떠올리지 말라고 말하면 아무리 애를 써도 회색 코끼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보기에 ‘큰돈을 벌지 못해도 괜찮지~?’라고 물어보는데 괜히 괜찮다고 답하고 싶어지지 않을까? ‘설마 타인의 기준을 신경 쓰는 사람은 아니지?’

 

그렇다면 애초에 이 설문기관들은 왜 이런 단어들을 언급하게 되었을까? 보통의 설문지는 제작에 앞서 소수의 타깃을 인터뷰하며 질문지를 만든다. FGI(Focus Group Interview)라 불리는 이 과정은 쉽게 말해 타깃에 해당하는 인터뷰이를 뽑아 이런저런 질문을 미리 해보고 ‘좋은 질문과 보기’를 뽑는 과정이다. 


예컨대 사과를 좋아하는 사람이 80% 이상인 집단에 선택지로 [포도, 복숭아, 기타]를 제시하면 80% 이상이 기타를 선택하게 된다. FGI로 이런 오류를 찾아내 이후 선택지에 사과를 추가하는 등 수정을 하며 바보 같은 질문을 피할 수 있다. 즉 연구자가 생각하는 답이 아닌, 응답자가 자주 언급하는 키워드를 뽑아내는 과정이 FGI다.


따라서 위 설문들에 앞선 사전 인터뷰에서 인터뷰이들은 ‘큰 행복’ ‘성공적인 미래’ ‘큰돈’ ‘타인’ 같은 단어들을 (부정하긴 했지만) 꽤 자주 언급했다고 추측할 수 있다.


느낌이 오기 시작한다. 사회에서 만난 상사나 선임이 ‘나는 좀 개방적인 편이야’라든지 ‘나는 그렇게 막힌 편은 아니야’라고 말하면 뒷목이 섬찟하다. 이들은 꽉 막혔을 가능성이 높다. 큰돈을 좇지 않는다면서 주식에 전재산을 거는 Z세대들처럼. 오히려 본인이 꽉 막혔다는 사실을 의식하면서 입에 달고 사는 말일 수 있다. 설문을 뜯어봄으로써 ‘말하는 것’의 오류를 살펴봤다. 더 나아가면 ‘말하는 것’과 ‘행하는 것’은 거리가 멀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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