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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석진 Mar 25. 2024

봄밤을 소요하는 즐거움

봄밤에 아내와 산책을 나섰다

봄밤이다.

오늘은 한낮의 온도가 20도를 훌쩍 넘었다. 공기의 질도 깨끗해서 시야가 하루종일 선명했다. 본격적인 봄이 펼쳐져 풀과 나무들이 봇물 터지듯 깨어나고 있다. 너무나 짧게 사라져 버리는 봄날을 붙잡고 싶었다.

산수유와 돌단풍

교회에 다녀온 후 저녁을 간단히 먹고 아내와 산책을 나섰다. 일요일 오후 저녁을 먹고 나면 대부분 TV 앞에서 시간을 보냈지만 오늘은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별다른 계획은 아니었고 가벼운 마음으로 밖에 나가 어슬렁 대다 차 한 잔을 마시기로 하고 집을 나선 것이다.


산책할 데는 아파트 주위를 돌거나, 의릉이 있는 한예종을 가거나 조금 더 멀리 가면 외대 캠퍼스가 있다. 오늘은 외대로 가서 별다방에 들르기로 했다. 가는 길은 아파트를 나서서 주택가 골목길을 지나 한예종 캠퍼스를 거처 외대캠퍼스로 가는 코스로 호젓한 길이다.


아파트를 나서는 길목에서는 회양목 향기를 만난다. 회양목 꽃은 얼른 눈에 띄지 않지만 향내가 진하다. 봄의 전령이 전하는 환영 인사라고 할 수 있겠다. 주택 골목길에는 홍매가 피어 거리가 환하다. 매화의 그윽한 향기는 봄이 선사하는 귀한 선물이다.


골목을 지나면 한예종 캠퍼스에 들어선다. 교정에는 개나리 울타리가 길게 이어져 있다. 그곳에는 본격적으로 개나리가 앞 다투어 피어나는 중이다. 며칠 후에는 온통 노란 물감으로 선명해질 것이다. 목련도 우아하게 늘어뜨린 가지마다 촘촘하게 꽃송이가 맺혔다. 같은 꽃나무라도 햇볕이 드는 쪽은 꽃잎이 벙글어졌다. 목련이 피는 순간은 숨이 멎을듯한 아름다움이 있다. 그 순간을 맞이하는 감격의 시간이다.


외대 캠퍼스 뜨락에도 목련이 한창이다. 가장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중이다. 밤이 내리고 있지만 꽃은 고혹적이다. 아름다운 봄밤이 여기저기서 반짝이고 있다.

별다방에서 밀크티를 주문했다. 지인이 보낸 커피선물을 아껴놓았다가 쓰는 중이다. 아내와 마주 보며 달콤하고 부드러운 차를 마신다. 좌석은 젊은 친구들로 자리가 거의 찼다. 우리는 조곤조곤 친구들 이야기를 시작으로 아이들을 비롯한 자질구레한 우리 일상을 소재로 한담을 나눈다. 그러다 연락이 뜸한 친구가 생각나 바로 전화를 건다. 친구와 반가운 통화를 나누고 그 친구 이야기가 이어진다.

옥시페탈룸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똑같은 코스지만 따릉이를 탔다. 아내가 하루 동안 너무 많이 걸었기 때문이다. 따릉이를 타고 달리는 길, 산뜻한 미풍이 얼굴을 기분 좋게 어루만진다. 오랜만에 맛보는 상쾌함이다. 집을 나서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별 것 아닌 일들이 때로는 기대하지 않은 즐거움을 준다. 이 봄이 가기 전에 자주 이런 시간을 가져야겠다.


#봄밤 #산책 #꽃 #목련 #매화 # 회양목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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