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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석진 Dec 13. 2024

독서 일기-스피노자의 진찰실

나쓰카와 소스케 소설을 읽고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겨우 읽어내고 숨을 돌릴 겸 집어든 책이 스피노자의 진찰실이다. 제목을 보고 처음에는 철학 관련 에세이인줄 알았다. 흥미롭게도 의사가 쓴 소설이었다. 처음부터 관심이 갔다. 교토가 소설의 배경이었기 때문이다. 최근에 아들과 함께 이곳을 여행을 했고 그 여운이 아직 남아있다.


작가의 이름부터 특이했다. 그가 존경하는 일본 문인들 이름 조합이라고 한다. 유명한 일본 작가들이 총망라되었다. 나쓰메 소세키, 가와바타 야스나리, 아쿠다와 류노스케에서 따온 필명이라고 한다.


잘 쓴 일본 소설의 특징 중 하나는 섬세한 울림이 있다는 것이다. 이 책도 따스한 휴머니즘을 담고 있다. 주인공 데쓰로 의사가 환자를 대하는 자잘한 일상 속에서 사람을 존중하는 사랑이 읽는 내내 가슴을 따뜻하게 한다.


그는 대학병원에서 촉망받는 젊은 의사였다. 뛰어난 내시경 시술 실력을 갖춘 내과의다. 그런 그가 여동생의 죽음을 겪고 조카를 돌봐야 하는 이유로 시골 병원으로 자리를 옮긴다. 그곳은 주로 죽음을 목전에 둔 노인들을 돌보는 병원이다. 그가 근무하는 병원의 의사들은 제각각 개성이 강한 의사들이지만 환자에게 안심을 주는 병원의 방침에 딱 맞는 훌륭한 의사들이다.


데쓰로는 철학을 지닌 의사다. 책 제목에서 왔듯 그는 스피노자를 존경한다. 스피노자는 인간의 의지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한다고 한다. 데쓰로는 염세주의자다. 그런데도 그는 의사로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고 믿지만 최선을 다해 치료에 임하는 삶을 산다.


대학병원을 그만두었지만 선배 의사인 하나가키는 여전히 그를 찾는다. 그는 세계적으로도 권위를 지닌 의사로 데쓰로를 진심으로 아끼는 사람이다. 아울러 그의 뛰어난 의료실력을 인정하며 신임을 거두지 않는다. 그만큼 그는 많은 이들이 존경하는 인물이다.


그의 처치를 받은 이들은 하나같이 선생님을 만나 안심이라고 말한다. 그만큼 그는 환자들에게 신뢰를 받는다. 그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 알코올중독자로 누구나 꺼려하는 환자에게도 진심이다. 그런 그를 환자들은 절대적으로 신뢰한다. 신분을 가리지 않고 모든 환자를 소중하게 대하기 때문이다.


 그는 얼마든지 높은 자리에 올라 명성을 떨칠 수 있지만 환자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기억하며 돌볼 수 있는 지금의 환경을 더 사랑한다. 가장 감동스러운 장면은 선배가 연구발표를 위해 미국으로 가는 동안 그가 시술했던 어린 환자의 응급상황에서 발생한 이야기다. 그의 내시경 기술을 신뢰한 하나가키는 위험한 시술을 두고 그의 도움을 청한다. 그를 싫어하는 이들이 있어 조심스럽게 수술과정에 참여해서 난관을 해결한다. 그 사실은 몇몇 의사만이 안다.


수술이 성공리에 마치고 복귀한 그에게 선물이 한아름 답지한다. 그가 평소에 단 것을 좋아하는 취향에 따라 지역별 명품 떡과 사탕 같은 간식이 병원에 전달이 된다. 그를 알아본 후배 의사들이 그에게 보내는 존경과 사랑이다. 그가 의사들에게 얼마나 사랑을 받고 있는 존재인지 알 수 있는 대목으로 읽는 내게도 뭉클한 마음이 들었다.


성탄 즈음에 딱 맞는 가슴을 훈훈하게 만드는 참 따뜻한 책이다. 행복의 정의가 기억에 남는다.


"사람은 무력한 존재이기 때문에 서로 손을 잡지 않으면 금세 무자비한 세계에 잡아먹혀 버리지. 손을 맞잡아도 세상을 바꿀 수는 없겠지만 풍경은 바꿀 수 있어. 캄캄한 어둠에 잠시 작은 불이 켜지는 거야. 그 불빛은 분명 똑 같이 어둠에 갇힌 누군가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지. 잠시 작은 불이 켜지는 거야. 그렇게 만들어진 작은 용기와 안심을 사람들은 행복이라고 부르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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