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사이 내린 눈으로 뜻밖의 멋진 겨울날을 맞았다. 발왕산 정상까지 케이블카가 운영 중이어서 먼저 가볼까 하다 하늘이 잔뜩 흐려 오대산을 먼저 가기로 했다. 산마루에 오르면 운무로 인해 시야가 제한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적당한 운무는 풍경을 신비롭게 하지만 지나치면 독이 된다.
용평에서 오대산까지는 한 시간도 채 안 걸리는 거리다. 바닥에는 눈이 쌓였지만 숲의 나무에는 없다. 세찬 바람 탓이다. 온통 눈 덮인 풍경을 만나고 싶은 마음에 아쉬움이 인다. 눈이 온 전나무 숲길을 기대하며 도착한 월정사에는 전각 지붕에만 눈의 자취가 뚜렷했다.
아무도 밟지 않은 계곡의 설경이 자연 그대로 모습으로 우리를 맞는다. 순수함은 눈 내린 풍경이 주는 가장 강한 힘이다. 온통 눈으로 가득한 장면은 보는 이들에게 순진한 마음을 불러낸다. 순진무구한 풍경이 마음에 들어와 때묻은 얼룩을 씻어낸다.
월정사 경내에 들러 월정사지 10층 석탑을 둘러본다. 균형 잡히고 세련된 국보의 자태가 눈으로 옷을 입은 전각과 어우러져 우아하다.
전나무와 소나무가 하얀 풍경에 싱그러움을 더한다. 사철 푸른 잎을 달고 있지만 겨울에는 더 싱싱하다. 평상시에 느긋한 삶을 살다 풍파가 일면 누구나 단단해지는 법이다. 어려운 환경을 견디는 모습은 더 당찰 수밖에 없다. 겨울 숲에서 푸른 나무를 만나면 나도 덩달아 생기를 얻는다.
생각보다 적설량이 많지 않아 전나무 숲길은 풍취가 덜하다. 그래서 주변 풍경에 더 마음이 간다. 고요한 겨울숲이 주는정적에 몸을 맡긴다. 차갑기에 더 맑은 공기가 상쾌하다.
월정사 주변을 도보로 돌고 나서 상원사를 향해 눈길을 차로 달린다. 오대산을 바로 떠나기가 아쉬워서다. 비포장 도로의 눈길을 두려움 없이 미끄러지듯 간다. 사륜구동의 차가 주는 안정감이다. 역량은 안정감과 자유를 가져다주는 힘이다. 호젓한 산길을 편안하고 느긋하게 주변을 감상하며 간다. 오디오에서 흐르는 노래가 낭만을 더한다. 멋진 겨울 여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