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구를 논하다
탁구를 오랫동안 쳤다. 그런데 제대로 배우지 않고 하는 탁구라 자세가 형편이 없다. 나쁜 습관을 바로잡으려고 레슨을 받기도 했다. 레슨 때는 좋아지는가 싶다가도 그 순간뿐이고 경기에 임하면 곧바로 예전으로 돌아가 버렸다. 그야말로 도로아미타불이다. 그 후로도 숱한 레슨을 받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오죽했으면 탁구 선수 출신으로 나를 도와주려 했던 후배가 형은 평소 치던 대로 그냥 치라고 아예 포기를 했다.
시간이 흐르자 나보다 실력이 부족했던 이들이 레슨을 통해 실력이 일취월장하면서 나를 능가하기 시작했다. 나는 실력이 예전 그대로인데 남들은 점점 실력이 늘었기 때문이다. 게임을 해서 질 때마다 기분이 나빠서 아예 탁구를 때려치우고 싶은 심정도 들었다.
기본을 잘 다지는 일은 다음 단계로 올라서기 위한 베이스다. 초보들이 레슨을 받을 때 집중적인 훈련을 하는 것이 바른 자세를 갖도록 하는 것이다. 다른 운동도 마찬가지겠지만 탁구는 폼이 정말 중요하다. 그런데 막 탁구를 치다 보니 폼이 좋을 리 만무다. 공이 치기 좋게 올 때는 정석으로 스윙을 하지 않고 변칙적으로 대응해도 잘 받아넘길 수 있지만 조금만 바운더리를 벗어나면 곧바로 네트에 걸리거나 아웃이다. 그러니 기본기가 탄탄한 상대를 만나면 고전하는 수밖에 없다. 비슷한 수준의 사람들끼리 경기를 하면 많이 경기를 많이 해 본 유경험자가 대부분 이긴다. 구력이 힘을 발휘하는 것이다. 그런데 기초가 되어있지 않으면 구력으로는 안된다. 계속 이기기 어렵다. 밑천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더 좋지 않은 습관은 경기 내내 스텝을 거의 밟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른바 망부석 탁구다. 발의 움직임이 없이 붙박이처럼 한 자리에 서서 손목으로만 해결하려고 하니 각도가 있게 공이 들어오면 속수무책이다. 급한 성격도 한몫을 단단히 한다. 랠리가 길어지면 빨리 해결하려고 마음이 조급하다. 느긋하게 치면 얼마든지 랠리가 이어질 수 있는데도 닥치고 공격 일변도다. 그러다 보니 실수 연발이다.
예전에 실력이 비슷한 수준이었던 이들은 앞서 가고 몇 개씩 잡아줘도 너끈히 이겼던 상대는 나를 추월해서 지는 것이 비일비재 해졌다. 승부욕이 강한 편이라 게임에 지면 엄청 화가 난다.
나와 자주 탁구경기를 하는 교회 후배가 있다. 예전에는 게임을 하면 승수가 높았는데 요즘은 판판이 진다. 그래도 어떻게든 이겨보려고 끝까지 도전을 하고 안간힘을 써보지만 마음뿐이고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다. 사실 이기고 지는 것이 그게 무슨 대수이겠냐 마는 지게 되는 순간 알량한 남자의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난다. 체면상 차마 겉으로 분출은 할 수 없다. 속으로만 끙끙 앓는다. 건강하려고 운동하는 것인데 화병이 나는 것이다. 아내는 그런 나를 보고 실소를 금치 못한다. 그렇게 열받을 거면 아예 그만두라고 잔소리다.
그렇지만 아내도 사실 내 승부에 관심이 많다. 탁구를 치고 오면 아내는 항상 묻는다. "오늘은 이겼어요?" 때때로 이긴 날은 의기양양해진다. 유감스럽게도 그런 날은 손에 꼽을 정도다. 대부분 지는 일이 일상이다 보니 진 것이 별 것 아닌 것처럼 쿨한 모습을 보이고 싶은데 의기소침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나도 탁구를 잘 치고 싶다. 흥분을 가라앉히고 차분하게 치면 충분히 좋아질 수 있는데 성격은 어떻게 할 수 없다. 그럼에도 맞수들을 이기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다. 마음 같아서는 얼마든지 잘할 수 있다고 의욕은 차고 넘치는데 그저 마음뿐이다. 게임의 결과에도 초연하고 싶다. 하지만 그것도 내 마음대로 안된다.
탁구가 정말 얄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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