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막걸리 장수
밤 열한 시의 합정역 8번 출구 앞에서 막걸리 파는 남자를 보았다.
남자는 낡은 수레에 막걸리를 가득 채워 싣고 얼마 남지 않은 한 통의 막걸리를 입에다 털어 넣었다.
고개를 위로 한껏 젖힌 남자의 동공에 삼십 층이 넘는 푸르지오 아파트와 메세나폴리스와 그리고
맞은편에서 저주받은 듯 혁혁한 전광판이 분주한 사거리를 태양처럼 비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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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원 버스처럼 빽빽한 수레에서 막걸리들은 저마다의 사정으로 출렁거렸다. 남자가 비워버린 한 통은 어떠한 상념의 잔상, 백색의 허공을 떠다니다 침전한 응어리들을
남자는 심장까지 탈탈 털어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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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 하나 살게요, 하는 어느 젊은 여자의 말을
남자는 막걸리요-하는 아우성으로 받아쳤다.
거리에는 사람과 승용차와 버스가 많아
기세 높은 아우성은 그리 멀리 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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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가 짜들어 버린 웃음을 지었다.
눈가에 팬 계곡을 따라 뿌연 습기가 고였다.
그곳의 공기는 6도 정도 되는 취기를 풍기고
남자의 웃음은 저주받은 전광판에서 나오는 빛을
불그스름한 낯빛으로 받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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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큼한 냄새가 났다. 응어리들이 마구 발효하여
찐득하고 거추장스럽게 엉겨 붙는 냄새가
아마 여자가 사간 한 통의 막걸리에는
어떠한 굴곡이 출렁이고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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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그만 수레를 밀어 8차선의 대로를 지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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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열한 시의 합정역 8번 출구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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