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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디 Aug 11. 2019

드라마 <보좌관>을 보다 만 이유

6화까지 보고 그만 보기로 결심했습니다.

최근 JTBC 드라마 <보좌관> 시즌1이 종영했다. 첫 방송을 시작하기 전부터 '이정재가 드라마에 나온다'는 사실만으로 기대감을 모았던 작품이었다. 평소 정치권력을 다루는 드라마 장르를 좋아하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도 기대가 컸던 작품이다.


결과적으로는 6화까지 보다 말았다. 그 뒷 이야기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르겠고, 시즌제라고 하니 시즌2에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그건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보다 말았고 안 볼 거니까. 워낙 여러 드라마를 정주행 했고, 중간에 보다 만 것들도 수두룩하다. 그렇지만 보통은 '에이 내 스타일 아니네'라든가, '재밌긴 한데 바쁘니까 안 보게 되네' 정도의 이유였다면 <보좌관>은 좀 다르다. 회차를 거듭할수록 <보좌관>이 별로인 다양한 이유들이 점진적으로 증가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특별히 왜 <보좌관>을 보다 말았는지 적어보려 한다.




첫째. 신민아는 도대체 무슨 역할?

JTBC에서 제공한 '강선영' 캐릭터 소개

<보좌관>에서 신민아의 역할은 뭐였을까? '이정재가 나오는 드라마'라는 것만큼이나 '신민아가 국회의원 역할을 맡은 드라마'라는 사실도  <보좌관>이 많은 기대를 모은 이유 중 하나다. 나 또한 그랬다. 등장인물 소개를 보니 '유리천장에 도전하는 여성 정치인', '자신의 유능함과 성취욕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다'라는 말이 돋보였다. (자신의 유능함과 성취욕을 부끄럽게 여기는 사람이 존재하긴 할는지 싶긴 하지만) 국회의원 신민아가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최고의 자리까지 올라가는 그런 치고받고 하는 내용인 건가? 싶었다.


까고 보니 신민아의 역할은 결국 이정재 여친이었다. 차라리 멜로드라마였다면 재미라도 있었을 걸! 등장인물 소개만 보면 신민아가 연기한 강선영은 꼭 최고의 자리에 오르려는 야망으로 가득할 것만 같은데, 까고 보니 이정재 여친에 이정재가 뒤통수를 쳐도 잠깐 화내다가 금세 다시 이정재와 합심하는 아주 도구적이고 부수적인 역할에 불과했다. 6화까지 보던 중에 이정재가 연기한 장태준이 본인 살길을 위해서 강선영을 배신하는 에피소드가 있었다. 나는 당연히 강선영이 흑화할 줄 알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등장인물 소개 멘트를 저렇게 썼을 리가 없으니까. 그런데 강선영은 매번 결국 장태준에게 설득당하고, '헉 그렇게 좋은 방법이!'라는 반응을 보였으며 납득하기 힘들 정도로 평온하게 장태준을 도와준다.


강선영은 극 중 한부모 가정 지원사업을 진행하기 위해 여러 난관을 헤쳐 나가는데, 이것 또한 최고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소개와는 딴판인 설정이다. 드라마를 보면 강선영은 최고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권력형 캐릭터가 전혀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가치를 위해 직진보다는 돌아가는 걸 택한 사람이다. 이 말은 뭐냐 하면, <보좌관>을 제작하는 사람들도 이 캐릭터의 갈피를 못 잡았다는 뜻이다. 그러니 6화 내내 강선영의 행동은 갈피를 못 잡는다. 분명 성취욕 가득하고 정적을 공격하기 위해 꼼수도 쓰는 권력형 캐릭터인데 그 동시에 정의롭게 미혼모도 도와야 하고, 그러면서 결국 남자 친구인 이정재를 도와야 한다. 그러니까 보는 입장에서도 강선영이 도대체 무슨 역할인지 알 수가 없다.


왜 이렇게 됐는지 추측해보자. 요약하자면 <보좌관>은 '국회의원보다 똑똑한 보좌관 이정재가 국회의원이 되는 권력다툼 이야기'다. 여주인공이 필요했고, 요즘 트렌드에 맞게 '여자 국회의원'을 집어넣어 '유리천장' 같은 것들과 결부시켰겠지. PC를 위한 일종의 '할당량'처럼 말이다. 여성 서사를 넣고 싶었다면 이런 식이어서는 안 됐다. 드라마에 딱히 신민아가 부딪친 유리천장에 대한 내용이 자세히 나오지도 않는다. 멋진 걸 크러시 캐릭터를 만들어야 하니까 권력욕도 있고, 성취욕도 있다는 설정을 부여했을 것이며 그렇지만 '깨어 있는' 캐릭터여야 하기 때문에 본인 신념을 위해 권력 획득에 아무 도움도 안 되는 한부모가정 지원사업을 추진한다는 설정을 끼워 맞췄을 것이다. 강선영 캐릭터의 서사가 더 탄탄했다면 서로 상충되는 설정들이 충분히 납득되었겠지만, 강선영의 서사는 애초에 비중 있게 다뤄지지도 않는다. 이렇게 저렇게 계획적으로 만들어진 강선영 캐릭터는 결국 혼자서 뭔가 열심히 하는 것 같다가도 결국 장태준의 장단에 따라 휙휙 변하는 말 그대로 '장태준 여친'으로 전락했다. 다시 말하지만 그냥 국회의원 신민아와 보좌관 이정재의 비밀 연애 스토리가 더 재밌었을 것 같다.


잠깐 영은수를 소개하겠습니다
굳이 영은수인 이유는, 내가 <비밀의 숲>을 참 재밌게 봤고 영은수를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대조적인 예로 <비밀의 숲>의 영은수에 대한 얘기를 좀 해보겠다. 영은수의 캐릭터는 뚜렷하다. 고집 세고, 자존심 세고, 인정받고 싶어 하고, 그러다 보니 독단적으로 행동하고 제 나름대로 사건을 해결하려고 갖은 애를 쓴다. 분명 주인공 황시목과의 은근한 감정 라인도 있고, 황시목의 조력자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비밀의 숲>에서 영은수의 역할은 '황시목의 조력자'가 아니다. 영은수는 영은수의 이유가, 목적이, 방법이 있다. 황시목과 그것이 충돌한다면, 영은수는 영은수의 길을 간다. 그래서 <비밀의 숲>에서 영은수의 역할은 '영은수'다. 드라마의 전체 플롯에서 영은수가 기여하는 바가 확실하고, 그것은 누구의 딸, 누구의 애인, 누구의 조력자로서가 아니라 영은수 본인의 욕망에서 비롯한다. 그러니 이 드라마에서 영은수를 빼면 스토리가 진행되지 않는다. 영은수는 드라마의 메인 캐릭터가 아니고, 조연이다. 그러나 플롯의 완성도는 주조연이 모두 제 역할을 뚜렷하고 분명하게, 톡톡하게 해 내는 것에서 시작한다.


(덧붙여 <비밀의 숲>은 영은수 캐릭터를 차치하고서라도 완성도 높은 드라마이니 아직 안 본 눈이 있다면 제가 사고 싶습니다. 연락 주세요)


<보좌관>에서 강선영 캐릭터의 매력도가 떨어지는 건 바로 이것 때문이다. 강선영이 '강선영'이 아니기 때문이다. 드라마에 '멋진 여성 캐릭터' 하나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주인공과의 '로맨스'도 있어야 하기 때문에, 사회적 시사점을 던지는 '진보적인' 안건을 언급해야 하기 때문에. 강선영에게 부여된 역할은 이런 것들이다. 강선영이 진짜 재선이 목적이고, 최고가 되려는 성취욕으로 가득하다면 강선영은 강선영의 길을 가야만 했다. 여러 명분들이 짬뽕되어 결국 강선영은 드라마를 장식하는 부품이 되고 말았다. 내가 본 6화 동안, <보좌관>은 사실 강선영이 없어도 되는 드라마였다.




둘째. 너무 직접적인 메시지 전달

<보좌관>은 나름대로 사회적 시사점을 다루려고 애쓴 드라마다. 그 점에서는 작가를 비롯한 제작진들의 노고가 컸을 것이라 예상한다. 또한 바람직한 노력이라고도 생각한다. 그러나, 강선영 캐릭터가 PC를 위한 일종의 할당량처럼 드라마에서 기능했던 것처럼, <보좌관>이 사회적 시사점을 언급하는 것 또한 굉장히 작위적으로 다가온다. 특히 그랬던 장면은 바로 5화에 나온 강선영과 장태준의 첫 만남 장면이다.


바로 이 장면이다.


이 장면의 문제는... 메시지 전달 방식이 너무 촌스럽다는 거다! 이 장면에서 장태준은 1분이 넘는 시간 동안 진지한 목소리로 자신의 신념을 말 그대로 '읊는다'. 작가가 배우의 입을 빌려 드라마의 기획 의도를 브리핑한 거다. 장태준의 신념에 공감하기에는 장태준이 과거 시위 진압에 참여한 후 경찰을 그만뒀다는 사실과, 그때를 회상하는 장면만으로도 충분했다. 이렇게 직접적인 대사와 전달은 분명 세련된 방식은 아니다. 개인적으로는 너무 싫어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사실 이 장면 보고 육성으로 '아...'하고 탄식했다. <보좌관>은 이 장면 외에도 직접적으로 교훈을 전달하는 듯한 대사가 꽤 많다.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시청자들은 충분히 장면의 의도를 추론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셋째. 제발 이런 OST는 쓰지 말아 주세요

일단 세 번째 이유는 아주 개인적인 취향의 문제임을 밝힌다. <보좌관>을 보는 내내 OST가 나오는 장면마다 몰입이 흐트러졌고 엔딩 장면에 '블랙 스카이~'하는 발라드 노래가 나올 때는 엔딩의 긴장감이 깨지기도 했다. '왜 그럴까?' 하는 생각을 해 봤는데, 아무래도 <보좌관>의 음악 감독이 살짝 촌스러운 센스를 가진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비슷한 시기에 방영을 시작한 드라마 <60일, 지정 생존자>가 워낙 소리를 잘 써서 더 비교됐다. <60일, 지정 생존자>는 OST뿐만 아니라 배경음악과 효과음까지 등장인물의 감정과 밀접하게 배치해서 시각과 청각 모두를 긴장시킨다. 특히 소리를 잘 쓴다고 느낀 장면은 2화에서 주인공 박무진의 혼란스러운 감정을 수도꼭지에서 흐르는 물소리로 표현한 장면이었다.

2화 13분 정도에 나오는 장면이다.


사실 '발라드'라는 장르의 문제는 아니다. 유독 OST가 잘 들어맞는 드라마들이 있었다. 대표적인 예로 <시그널>. <시그널>이 극찬받는 이유는 스토리와 배우들의 연기가 가장 큰 이유겠지만, 음악 면에서도 흠잡을 데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장범준의 '회상', 김윤아의 '길' 등, 노래의 분위기뿐만 아니라 가사까지 <시그널>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딱 맞는 곡들이 적절한 장면에 등장했다. <시그널>에서 분명 OST는 시청자의 몰입도를 극대화시키는 역할을 했다.

<시그널>을 본 사람은 안다, 이 장면. 장범준의 '회상'과 이 장면의 조합은 모든 시청자를 눈물범벅으로 만들었다.


드라마에서 소리가 맡은 역할은 크다. 배경음악 없이 대사만 나온다면 드라마가 얼마나 싱거워질지 상상도 되지 않는다. 그래서 드라마 제작자들은 효과음부터 OST까지 모든 배경음악에 공을 들이고, 그 공은 고스란히 시청자의 몰입으로 이어진다. 특히 가사와 목소리로 감정을 폭발시킬 수 있는 OST 곡들은 더 중요하다. 위에 언급한 <시그널> 외에도 드라마 <도깨비>, <SKY 캐슬> 등은 각 등장인물, 각 감정선에 딱 맞는 OST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시그널>의 '회상'처럼 오래전 노래 중 드라마에 어울릴 만한 노래를 선별하여 리메이크하기도 한다. <청춘시대>의 경우 드라마 방영 전에 발표된 곡인 선우정아의 '사랑의 한가운데'를 OST로 사용하기도 했다. 이렇게 OST는 드라마를 더 풍부하게 만들기 위해 있는 곡, 없는 곡 다 가져다가 고르고 골라서 선정된다. 과연 <보좌관>의 OST 선정에 그만큼의 신중함이 있었는지는 조금 의심스럽다.


보좌관에서 사용된 OST 두 곡은 김재환의 'Black Sky'와 첸의 'Rainfall'이다. 안 그래도 <보좌관>은 정치권력의 다툼을 다루는 드라마치곤 긴장감이 느슨한 편인데, 메인 OST가 둘 다 느슨한 발라드여서 더 긴장이 풀렸던 것 같다. 뭔가... 나와 비슷한 OST 취향을 가진 사람이라면 두 곡을 들어보고 아마 비슷한 생각이 들지 않을까 싶다. 어딘지 모르게 촌스럽다. 가사가 와 닿지 않았던 탓도 있는 것 같고.





쓰고 보니 너무 까는 말만 가득한 것 같은데, 기대한 바가 컸던 만큼 실망감이 너무 컸기 때문에 이렇게밖엔 글을 쓸 수 없었다. 위의 세 가지 이유도 있지만, 그냥 <보좌관>은 계속 보고 싶은 플롯은 확실히 아니었던 것 같다. 아주 기억에 남는 대사도 없고... 그나마 마음에 들었던 건 이엘리야가 연기한 윤혜원 캐릭터다. 큰 비중을 가진 건 아니지만, 이 드라마에서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는 윤혜원이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주인공 장태준도 정이 안 갔다... 오래간만에 드라마에 복귀하는 이정재인데, 좀 더 흡입력 높은 캐릭터였다면 좋지 않았을까 싶다. 시즌2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아마 안 볼 것 같다.


이런 장르의 드라마가 대중에게 쉽게 먹히는 것 같으면서도, 잘 만들기가 정말 힘들다. 자칫하면 뻔해지고, 계속해서 서스펜스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조금만 느슨해져도 시청자는 지루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드라마를 제작함에 있어서 어떤 명분을 포함할지 생각하는 것보다 각각의 캐릭터가 어떻게 하면 더 입체적일 수 있을지 고민했다면 <보좌관>은 더 재밌어지지 않았을까. 메시지의 전달 방식이나 OST의 문제는 차치하고, 6화를 마지막으로 <보좌관>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아진 이유는 아무래도 캐릭터가 매력이 없어서, 인 듯하다. 이상 아주 개인적인 <보좌관> 보다 만 리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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