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불쑥 찾아온 누군가의 선의
지나온 매 계절마다 꼬박꼬박 한 번씩 여행을 다녀왔다. 지난가을의 제주, 겨울의 LA, 봄의 후쿠오카. 그러나 이번 여름에는 여행을 떠나지 못했다. 아마 지금의 무더위가 지날 때까지 여행을 다녀올 여유는 나지 않을 것 같다. 그럴 때면 지난 여행에서 찍어온 영상이나 사진들을 뒤적거린다. 오늘도 딱 그런 날이다.
사실 나는 여행을 그렇게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일단 체력이 좋지 않고, 평소에도 밖을 많이 돌아다니는 편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행을 간다면 혼자, 여유롭게, 쉬면서 다니는 것을 선호한다. 드넓은 초원이나 깎아지른 절벽 같은 대자연을 본다면, 트레킹보다는 돗자리 깔고 누워 멍 때리다 낮잠을 자는 편이다. 여행지에서 들른 카페에 두세 시간씩 눌러앉아 쉬는 것을 시간 아까워하지도 않는다. 그런 성격이다 보니 '여행 가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집 주변 조용한 카페에서의 커피 한 잔이면 여행에 대한 갈증이 금방 식어버린다.
여행을 떠날 때마다 적어도 한 번씩은 곤란한 일을 겪었다. 여행지에서의 불행은 시간이 지나면 금방 미화되고 해프닝으로 웃어넘겨지곤 하지만, 그래도 그런 일들은 분명 여행에 대한 안 좋은 기억으로 쌓이기 마련이다. 평탄한 일상을 벗어나 언제라도 예상치 못한 불행이 들이닥칠 수 있다는 사실은 내가 여행을 특별히 여기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금 떠나는 여행을 특별하다고 여기면 여길수록, 꼭 그 특별함에 걸맞은 스케일의 불행이 찾아올 것만 같아 여행을 가서도 항상 들뜨지 않고 평소처럼 행동하려는 강박이 있다.
그럼에도 여행이 특별한 이유가 있다면, 그것 또한 바로 그 '예상치 못함' 때문일 것이다. 예상치 못한 불행이 있다면, 예상치 못한 행운도 있는 법. LA 여행을 갔을 때, 그랜드캐니언 투어에 맞춰 숙소를 변경했다. 투어는 당일치기였지만 이동 시간까지 고려하면 사실상 1박 2일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 하루 동안 숙소를 예약하지 않고 짐만 따로 맡겨두기로 했다. 원래 투어가 끝나고 다시 LA로 돌아오면 오전 9시쯤일 예정이었고, 아침 식사 후 카페에서 좀 쉬다 바로 새로운 숙소에 체크인을 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오전 6시도 되기 전에 LA에 도착하게 되었다. 당연히 그 시간에 문을 연 가게는 근처에 아무 데도 없었고, 우리는 급하게 아침 일찍 여는 식당이나 카페를 찾았다. 구글맵을 보니 24시간 운영하는 곳은 아예 없었고, 몇몇 가게가 6시나 7시부터 문을 연다고 적혀 있었다. 6시에 연다는 카페가 있어 우리는 택시를 타고 바로 그곳으로 향했다. 사실 한국이었다면 아무 문제가 없다. 24시간 카페, 찜질방, 하다 못해 편의점이라도 들어가면 되니까. 하지만 그때의 LA는... 동절기라 해도 전혀 뜨지 않은 깜깜한 밤에 듬성듬성 불 꺼진 건물들이 있는 거리는 정말이지 공포 그 자체였다. 카페 앞에 도착한 우리는 추위에 떨며 카페가 문을 열기를 기다렸지만, 카페는 6시가 되어도 문을 열지 않았다. 잠시 후 카페 근처에서 비니를 쓴 푸근한 인상의 한 아저씨가 다가와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 이 카페에 온 모양인데, 여긴 어젯밤 화재가 나서 오늘 영업을 하지 않는다고. 왜 하필 우리가 오기 전날 밤 불이 난 건지, 꼭 이런 불행은 왜 겹치는 건가 싶었다. 그는 우리를 한참 쳐다봤다. 하루 종일 투어를 하고 버스에서 6시간가량을 보낸 탓에 다들 꾀죄죄한 몰골이었다. 당장 갈 곳이 없다는 우리의 사정을 들은 그는 갑자기 자신의 차를 가리키며 근처에 지금 문을 연 맥도날드가 있으니 태워주겠다는 말을 했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지만, 솔직히 말하면 경계심이 먼저 들었던 것은 사실이다. 겁이 많은 친구는 그냥 기다리는 것이 낫지 않겠냐고 말했다. 하지만 새벽은 너무 추웠고, 어두웠고, 무서웠다. 우리는 네 명이니 위험한 일은 생기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그의 차를 얻어 탔다. 그는 카페에서 고용한 사설 경호원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어젯밤 화재 이후 카페 앞을 밤새 지키다가, 막 퇴근하려는 길이었다고 했다. 사실 우리를 도와줄 생각은 없었다고도 했다. 너희는 젊고, 또 혼자도 아니고 여럿이니 뭐 알아서 하겠지,라고 생각했다고. 그리고 그는 덧붙였다. 그럼에도 우리를 도와준 이유는 밖이 너무 춥기 때문이라고.
그는 우리를 근처 맥도날드에 내려주고 집으로 떠났다. 해가 막 뜨기 시작할 무렵이었고 맥도날드는 노숙자들로 가득해서 우리도 꼭 노숙자가 된 기분이었으나(사실 노숙자가 맞았다) 그날 먹은 맥모닝은 여태껏 먹은 맥도날드에서의 식사 중 가장 맛있었다.
어떤 날은 할리우드 대로에서 바가지 씌우는 상인을 피해 도망치는데 그 상인이 끝까지 우리를 쫓아와 숨었던 일이 있다. 글로 적으니 별로 안 무서워 보이는데, 거구의 외국인들이 욕을 내뱉으며 당장 200달러를 내놓으라고 하는 상황이었다. 나는 대낮의 대로에서 말 그대로 공포에 떨면서 숨을 골라야 했다. 그럼에도 그날을 지금은 웃어넘길 수 있는 이유는 같은 날 겪었던 다른 일 때문이다. 할리우드 대로에서 혼자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지나가던 사람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나는 음악을 듣고 있었고, 사실 누군가 나에게 말을 거는 상황이 무서웠기 때문에 안 들리는 척을 하려 했지만 그는 집요히 나에게 말을 걸었고 결국 나는 이어폰을 빼고 대답을 해야 했다. 알고 보니 근처에 산다는 그는 이 정류장에는 버스가 오지 않기 때문에 버스를 타려면 다른 곳으로 가야 한다고 알려주려던 것이었다. 내가 '띠용?' 한 표정을 짓자 그는 내게 목적지를 묻고, 목적지까지 가는 버스가 오는 역까지 나를 데려다주었다. 함께 걷는 동안 나눈 잠깐의 대화에서 그는 이곳은 대중교통이 잘 되어 있지 않다며,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길을 잃기 쉽다는 말을 했다. 또 남은 시간 동안 LA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길 바란다는 말도.
선의가 악의로 오해받는 것을 많이 보았다. 나 또한 누군가의 선의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못한 적이 많고, 고맙긴 한데 부담스럽다는 명분으로 친절을 꺼린 적도 많다. 자연히 타인에게 선의를 아끼게 되었다. 아마 저 사람도 나처럼 부담스러워할 것이라는 이유로. 우리 모두는 서로 간 그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사실 선의를 부담스러워하고 꺼리는 이유는,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것도 있어야'할 것만 같아서이다. 저 선의에 나도 보답을 해야 할 것 같아서, 그러자니 제대로 보답할 자신이 없어서. 실은 보답을 바라지 않는 선의도 많은데, 이 선의가 어떤 목적인지를 모르니 그냥 일단 꺼리고 보는 거다.
그러나 선의를 진심으로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그냥' 우러나오는 친절을 진심으로 마다하고 싶은 사람은 없다. 맹자가 그랬다, 우물가로 기어가 빠지려는 아기를 보면 누구든 구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 마련이라고. 그 측은지심이 인간의 본성이라고. 완전히 동의하는 바는 아니지만 분명 누구든 그 자연스러운 연민과 친절을 갖고 있을 것이다. 그런 마음을 갖는 이유는, 누군가 나에게 그런 마음을 가지길 바라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쩌면 우리가 서로 간 거리를 유지하고 데면데면하게 살아가는 이유는 그 거리를 좁혀줄 선의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런 면에서 여행은 특별해진다. 이방인이 된다는 것은 무척 외로운 일이지만, 무척 외롭기 때문에 무척 불쌍해 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불쑥 찾아오는 선의를 마주하곤 한다. 새벽의 문 닫은 카페 앞에서, 오지 않을 버스를 기다리던 할리우드에서처럼 말이다. 그리고 외로운 이방인은 불쑥 찾아온 선의 앞에서 더 쉽게 감동받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 밤 아늑한 카페에 앉아 여행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여행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익숙함으로 가득하지만 모두가 서로 낯을 가리며 살아가는 요즘의 일상에 그때의 선의와 감동이 찾아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