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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숲 Apr 17. 2023

소생蘇生

모라넨시스의 봄



겨우내 발코니의 추위를 버티던 연두색 잎의 여리여리한 모습이 대견했었다.

 

이른 아침 발코니 창문을 열다 구석진 곳에 숨은 진분홍 꽃을 발견했다.  

청초하게 피어오른 모라넨시스의 봄!

추위와 맞서오다 저토록 이쁜 꽃을 피워내다니!!

살짝 만져도 톡톡 부러질 만큼 여리고 약한 잎.

저토록 여릿하고 말간 얼굴로 벌레를 잡아먹는, '식충식물'의 별칭이 어울리지 않는다. 


나만의 작은 정원에서 하나하나 소생하는 봄.     


한 달 넘도록 약을 삼키며 병명도 분명치 않은 고통과 싸웠다.

와르르 무너진 3월의 창대한 계획 앞에서 무릎을 꺽었고, 

잦은 눈물이 멋대로 흐르도록 내버려 두었다. 


건강검진을 위해 며칠 약을 끊었다. 약을 끊어서인지 병(?)이 가라앉은 탓인지, 아픈 증상은 많이 줄어들었다. 그리고 힘겹게 건강검진을 끝냈다. 여러 개의 혈액을 채혈하는 동안 동글한 간호사의 이마가 간호사의 등 뒤에 펼쳐진 의료기구들이 빙글빙글 돌았다. MRI 기계 안에 누워 40분 동안 엄청난 소음과 싸웠다. 

검진을 끝내고 오랜만에 밤새 깊은 잠에 빠졌다. 

아침에 깨어나니 마치 길고 어두운 터널을 겨우 빠져나온 기분이다. 


겨우 소생한 여린 식물처럼. 


모라넨시스처럼 내게도 작고 수수한 꽃을 피울 시간이 필요하다.

나를 감싸고 있는 흙을 단단하게 다질 필요가 있다.

 

봄에 태어나 봄에 약한 나는 이 봄에 무릎을 꺾이지 않도록 조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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