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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숲 Apr 17. 2023

단편소설/ 두 겹의 노래(1)

<2023 아르코 문학창작 발표 선정작-박숲>

    


   두 겹의 노래     



    CCTV 화면 속 여자는 유리코가 틀림없었다. 문득 생의 끝에서 맞닥뜨릴 그녀의 기억들이 궁금했다. 길을 잃고 헤매는 유리코의 미소가 너무도 무구(無垢)해 보여 나는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무서운 속도로 달려오는 차를 마주한 채 멍하니 서 있는 유리코. 차체에 몸이 튕겨 나가는 순간까지 그녀의 눈동자는 다른 세계를 경유하듯 풀어헤쳐져 있었다. 내 눈에는 꼭 그렇게 보였다. 색과 소리가 사라진 CCTV 속 사고 장면은 그래서 더욱 안타까운 장면이었다. 마치 시공을 벗어난 다른 차원에서 벌어진 사고처럼 아득하고 멀었다.           


                                                *

    오늘도 그녀, 유리코는 보이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자주 출입문을 돌아보았다. 조 군은 손을 부들부들 떨며 간신히 부직포 구멍에 마 끈을 끼워 넣었다. 내리다 만 창문 블라인드 아래로 햇살이 쏟아져 들어왔다. 조 군의 머리에 햇살이 닿아 머리카락이 은회색 빛을 냈다. 조 군에게 다가가 손에 들고 있는 부직포 주머니와 흰색 마 끈을 슬그머니 잡아 뺐다. 유리코 양은 왜 안 왔어요? 조 군은 발음이 잘 안 되는지 입술을 비틀며 대답했다. 몰라. 어머나, 여자 친구가 왜 안 나오는지 몰라요? 난 몰라. 치매 과정이 급격히 진행된 조 군에게 제대로 된 답을 기대하는 건 무리였다. 이 주째 유리코는 나오지 않았다. 육 개월 동안 한 번도 활동에 빠진 적 없던 그녀다. 혹시 그녀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

    상담 활동 초기만 해도 조 군은, 내 여자 친구 예쁘지? 자랑스럽게 소개했었다. 그녀는 새침하고도 도도한 표정을 지었고, 활동 시간마다 두 사람은 티격태격 말싸움을 했다. 대개 조 군의 일방적 애정 공세 때문이었다. 조 군은 입술에 힘을 주며 내 손에 들린 부직포를 쳐다보았다. 나는 부직포 구멍을 연결한 끈이 뒤엉킨 부분부터 모조리 빼냈다. 다른 노인들은 주머니 구멍에 마 끈을 끼우는 것에 집중했다. 좌석을 둘러보며 질문을 유도했다. 다들 떡국은 드셨어요? 어린아이들처럼 천진한 표정을 지으며 노인들은 제각각 다른 대답을 했다. 그럼, 먹었지. 당연히 설에 떡국을 먹어야지. 선생님은 먹었어? 노란 햇살이 긴 탁자 위로 구부정하게 드러누웠다. 

    드뷔시의 〈아마 빛 머리의 소녀〉가 흘러나왔다. 그녀가 좋아하는 음악이었다. 상담 작업실을 일 층에서 이 층으로 옮긴 뒤부터 음악을 틀기 시작했다. 노인들은 음악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다른 노인들과 달리 음악에 관심이 많았다. 음악이 흘러나오면 작업을 하다가도 잠깐씩 눈을 감고 움직이지 않았다. 뭐 하세요? 물으면 도도한 표정으로, 이거 내가 제일 좋아했던 곡이야, 쉿, 이 부분은 너무 애절하지? 하며 입술을 동그랗게 오므렸다. 그럴 때마다 그녀의 감춰 둔 기억의 한 조각을 들여다보는 것 같아 기분이 묘했다. 스치듯 보았던 그녀의 희미한 미소가 떠오르자 작고 여린 새 한 마리가 가슴 한복판을 통과하며 지나갔다. 문득 그녀, 유리코 얼굴에 내 할머니 미소가 겹쳤다. 

    요양원에 위탁한 뒤 돌아설 때 짓던 할머니의 미소. 그 미소는 비나 눈을 맞으면 색이 사라지고 투명하게 변하는 산하엽이라는 꽃과 흡사했다. 삶 안에 생이 제거된 영혼처럼 서서히 투명해지던 미소. 나는 그 미소를 잊을 수 없었다. 고향 바다 가니까 좋지? 할머니는 고향에 간다는 말에 처음엔 설레는 눈치였다. 나는 나의 선택을 후회하고 싶지 않았다. 동생과 내가 살기 위해선 어쩔 수 없었다. 요양원에 가는 동안 할머니는 내게 끊임없이, 엄마 어디가? 물었고 그때마다 나는 고향 바다에 가는 거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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