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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협아 Nov 24. 2023

3년, 가르친 것보다 배운 것이 더 많은 시간

언어를 가르치고 사람을 배우다 (1)


코로나가 내 귀국의 이유가 된 건 아니지만, 귀국과 동시에 전 세계에 퍼진 역병으로 인해 내 계획에 변경도 생겼고, 지내고 싶던 곳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고향에 갇혀 있어야 했고.


바쁘게 지내던 영국에서의 3년을 뒤로 하고 갑자기 일상 없는 하루를 시작해야 했다. 말 그대로 소속 없는 백수가 된 셈이다. 말이 좋아 고향이지 18년 넘게 몸도 마음도 들여놓지 않았던 곳에서 다시 모든 것을 시작해야 했다. 그리고 세상을 뒤엎었던 역병은 사람을 만나야 가능하던 나의 일을 가로막는 큰 담벼락 같이 자리잡고 있었다.




금의환향은 무슨,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3년 가까이 외국에서 보내고 온 시간이 하나도 의미 없는 것이었나 싶을 정도로 무력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렇게 삼 개월 정도를 조금 귀여운 방황을 하 보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더없이 행복한 때였건만!) 늦잠도 실컷 자고, 아무 생각 없이 침대에 누워 핸드폰을 보고 다른 사람들의 삶을 부러워하며 그렇게 의미 없는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삼 개월이 지나고 다시 일상을 만들기 위해 내민 첫 발이 영어 학원이었다. 유학을 마치고, 공부를 끝내고, 그리고 그곳에서 일을 하고 왔다고 해서 내 인생의 영어 공부가 끝난 것은 아니었다. 쓰지 않으면 무너지는 것이 한 순간인 것이 바로 언어다. (모국어도 예외가 아니다.) 인터넷을 검색해서 회화 위주로 진행되는 학원을 하나 찾아 당장 등록했다. 뭐가 됐든 다시 영어를 사용해야 했고, 그럴 수 있는 환경이 필요했다.




그렇게 다시 일상이 생기고, 영어를 사용하고,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아침에 눈을 떠서 집을 나갈 이유가 생겼고, 사람을 만나고 외국어를 사용하면서 다시 뭔가를 해야겠다는 의욕이 찾아왔다. 마스크를 쓰고 사람을 만나는 것조차 두려웠던 날들이었지만, 용기를 내서 수업을 할 학생들을 찾는 플랫폼의 문을 두드렸고, 영어 공부를 하면서 나의 수업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해 수업을 진행했다.

일상 회화 수업을 원하는 학생들도 있었고, 역병 창궐에서 불구하고 영국으로 유학을 준비하는 학생들을 위해 아이엘츠 수업 혹은 오픽이나 토익 스피킹 같은 회화 시험 준비도 진행했다. 코로나가 세상을 멈춰도 앞으로 전진하는 사람들은 늘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이 시기에 꿈을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려던 이 친구들의 노력이 정말 대단했던 것 같다. 뒤늦은 박수를 보낸다.



그렇게 붙은 자신감으로 본격적인 일터에 둥지를 틀게 되었다. 나의 개인적인 수업도 진행하면서 나의 장점(?)을 가장 살릴 수 있는 회화 전문 어학원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몇 번의 과외 경험을 제외하면 제대로 접해보지 못했던 초등학생 회화 학원에서도 일을 시작했다. 아이엘츠 등 영어 시험 수업도 계속 진행하고 있다.







길게는 수십 년, 혹은 십 년 전 후 긴 시간을 이 분야에 몸 담고 계시는 전문가 선생님들과 비교하면 아직 햇병아리에 불과하지만 (사실 요새 성질 머리 가득한 싸움닭 오골계가 되긴 했다.) 3년, 더 정확히는 3년 반이 지나고 나니 숨통이 트였다. 그 동안의 나를, 혹은 나의 수업을, 더 나아가서는 내가 만난 사람들, 내가 겪은 시간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얻고 배운 소중한 것들을 뒤돌아 볼 여유가 생겼다. (이 3이라는 숫자가 괜히 신성시되는 게 아닌가 보다!)


물론 또 언제 무슨 일이 터지고, 다시 바쁜 시간이나 우울감 넘치는 슬럼프를 겪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그나마 심적 여유가 생긴 지금, 조금씩 기록으로 남겨 보려고 한다. 가르침이라는 기회를 통해 내가 무엇을 가르쳤고, 더 중요한 건 내가 무엇을 배워왔는지. 그리고 무엇을 배우고 있는 중인지.


어느 것부터 어떻게 이야기 보따리를 풀지 아직 그 얼개는 잡히지 않았다. 그 얼개를 찾는 과정조차 즐거움인지라 기분 좋게 생각해 보려고 한다. 이 예고편을 적는 것부터 이미 어깨가 들썩들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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