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가자, 태국으로(2)

드디어 도착

by ONNA

합격했다는 통보는 받았지만, 한국에서 업무를 마무리하느라 출발 전까지 태국에서 어떻게 살지 아무런 대책이 없었다. 머릿속이 새하얗게 질리듯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몰랐고 그저 출발 일자가 다가올 때까지 하루하루 구름 위를 걷듯 살았다.


인사명령이 드디어 발표되고 나서야 나의 태국살이가 곧 시작된다는 것이 실감 났다. 인사명령에 찍힌 날짜에 맞추어 부랴부랴 비행기 티켓을 준비하고 캐리어에 짐을 욱여넣었다.


이삿짐은 2주 전에 이미 싸서 보냈고-동남아시아의 국제이사는 통상 1달 정도 소요 된다-거실에 펼쳐뒀던 캐리어에 당장 입으려 남겨둔 옷이며 갖가지 소지품만을 채워나갔다.


급하게 가족의 배웅을 받으며 수서행 기차를 타고서야 내가 태국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확실히 느껴졌다. 바로 함께 살아야 할 집을 구하는 일이었다.


‘이런, 어디서 살아야 하나…‘


여러 생각을 뒤로하고 출국에 앞서 본사에 들러 여러 부서를 돌며 인사를 나누고 공항으로 향했다. 비행기를 기다리며 이것저것 끼적이다 보니 태국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고 준비된 것이라곤 내 몸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과 아이는 한국에 남은 집과 잔여 짐을 정리하고 내가 집을 구해 놓은 후에 합류하기로 했기 때문에 홀로 오르는 비행기가 더욱 의미심장했다.


방콕행 비행기는 출발이 30분 정도 지연됐다.


앞 좌석 아이는 우리는 언제 출발하냐고 엄마에게 묻고 또 물었다. 시끌한 아이의 물음에 곤란한 엄마는 점점 말을 잃어가고 통로 건너편 백인 남자는 심드렁하게 내민 배를 들쑥날쑥 깊이 몰아쉬며 숙면 중이었다.


저녁 비행기에 혼자 앉아 있으니 이제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처럼 여기저기 전화를 해댔다.


“나 이제 가. 그러게 벌써 가게 되었네.”


여러 건의 전화가 끝나고 비행기는 출발했다. 나는 새로운 나를 만나기로 했다. 가족을 더 크게 품어내며 나다움의 초석 위에 이제는 주춧돌 정도 올려야겠다며 다짐한 것이다. 그런데 생각을 계속 이어 나가다 보니 내 손에 쥐어진 것이 하나도 없었다. 살 집도 없고 오래된 집기들은 내다 버렸으니 새집에 맞춰 새로 넣어야 할 것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벌써 수완나품공항에 도착했다. 6시간 남짓 비행이 이토록 짧았나?!


한밤에 도착한 비행기는 수백의 여행객과 나를 한 번에 쏟아냈다. 이민국 수속이 끝나자 후끈한 동남아의 공기가 폐부로 밀려들었다. 어둑한 길 위에 서서 그랩을 부르고 기사와 서로 짧은 인사를 나눈 뒤 호텔로 향했다.


방콕에서의 짧은 밤이 지나고 첫 아침이 밝았다. 친절하게도 회사에서 나를 데리러 와주었다. 회사가 호텔에서 많이 먼 것은 아니었지만 초행길에 마중을 나와주니 감사했다.


나는 2009년에 방콕에 다녀와 본 적이 있었는데 15년 사이에 너무나 많이 변해 모든 것이 처음 같았다. 첫날 일정이 끝나고 덩그러니 누운 호텔 방에서 내 꿈을 찾아왔건만, 아무것도 없는 제로에서 다시 시작하는 지금이 맞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당장에 ‘비자도 집도 어떻게 아무것도 없을 수가 있을까’라며 푸념 섞인 생각이 잠시 떠올랐다. 하지만 이왕 이렇게 되었으니 길게 계획을 세워서 ‘왜 안 되는 것인가’에 몰두하지 말고 닥치는 대로 ‘하나씩’ 해결해 보기로 하고 잠을 청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