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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앵 Aug 03. 2024

나는 김밥에 우엉을 넣지 않는다

기억을 품은 오래된 맛


들어올 때 김밥 재료 좀 사다 줘.

외출한 남편에게 문자를 보냈다. 특별한 메뉴가 떠오르지 않을 때 김밥을 말기 때문에 김밥으로 한 끼를 때울 요량이었다. 남편이 돌아와 건넨 김밥 재료 중에는 단무지와 우엉 조린 게 같이 패키지로 묶어 나온 상품이 있었다. 아... 이게 아닌데. 단무지는 내가 주로 쓰는 것보다 얇고 더 노랗고 너무 많이 절여져 꼬들해 보였고(나의 김밥엔 아삭한 단무지가 어울린다.) 나는  김밥에 넣지 않는 우엉도 마음에 안 들었다. 그냥 내가 사올 걸.


신혼 때부터 김밥을 자주 만들었는데 나의 김밥 레시피의 출처는 요리책도 인터넷도 아니었다. 바로 기억 속에 있는 친정엄마의 김밥! 국민학교 때 소풍을 가면 친구들과 김밥을 하나씩 나눠먹었는데 그때마다 마음속으로 '우리 집 김밥이 1등이야.'라고 외치곤 했다. 엄마의 김밥은 기본에 충실했다.


단무지, 계란, 삶아서 무친 시금치, 볶은 당근, 간장양념한 어묵, 구운 소시지(혹은 햄)와 맛살... 이렇게 일곱 가지 재료가 들어가고 참기름과 소금, 깨소금으로 양념한 밥을 사용했다. 가끔 당근을 길쭉하게 썰어서 넣는 대신 아주 곱게 다져서 밥에 섞기도 했다.(난 이런 디테일은 힘들다.) 그리고 엄마는 단 한 번도 김밥에 우엉을 넣지 않았다. 


김밥을 쌀 때마다 기억을 더듬어 엄마의 김밥 맛을 내려고 하다 보니 몇 년 후엔 사람들로부터 김밥을 맛있게 만든다는 소릴 듣기 시작했는데 그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이 있다.


어릴 때 엄마가 싸주던 김밥 맛이에요.


참치김밥을 좋아하는 아이들을 위해 마요네즈에 버무린 참치를 추가한 김밥을 만들 때도 있고 남편이 해달라는 진미채 김밥을 쌀 때도 있지만 난 그런 버전은 입에 대질 않는다. 지극히 사적이고 주관적인 기준으로 내겐 친정엄마의 김밥이 가장 옳기 때문이다.


얼마 전, 집에서 포트럭 모임을 했는데 나는 큰 고민 없이 김밥을 준비했다. 그런데 그날 왔던 손님 중 K가 유난히 김밥을 맛있게 먹는거다. K로 말할 것 같으면 직접 키운 천연 발효종을 넣은 건강빵을 만들고 채소도 직접 길러서 샐러드도 해 먹고 바질페스토도 직접 만들어 먹는, 내게는 넘사벽인 요리실력의 소유자이다. 그런 그녀가 자신은 전에 김밥을 만들 때마다 실패해서 김밥이 만들기 어려운 음식인데, 내가 만든 김밥이 옛날 친정엄마의 김밥 맛이라 너무 좋다고 했다. 잊고 있던 음식의 맛을 오랜만에 보았을 때의 그 기분을 너무 잘 알기에 나는 K에게 자주 김밥을 만들어주겠노라 했다. 그 이후로 그녀를 만날 일이 있으면, 약속 전날 김밥재료를 사러 간다.


어떤 음식이 맛있다고 느끼는 것, '이 음식은 이래야 해.'라는 것의 기준은 지극히 주관적이다. 그 주관적인 기준에는 미각 뿐만 아니라 온몸에 새겨진 어린 시절의 기억이 절대적인 영향을 주는 것 같다. 나에겐 우엉이 들어간 김밥은 옳지 않지만, 어떤 이에겐 짭쪼름하게 조려진 우엉이 들어간 김밥이 최고의 김밥일 수 있을거다.


나는 앞으로도 김밥을 자주 만들 것 같다. 다른 음식 보다 김밥을 다른 이들과 나눌 일도 아마 많을거다. 내게 맛의 기준점이 되어주는 엄마의 맛을 나눌 수 있어 좋다. 엄마로부터 전해진 나의 음식을 먹고 누군가가 자신의 엄마를 떠올리는 경험은 참 따뜻하고 소중하다.



그날 남편이 사온 재료 중 섞여있던 우엉이 아까워서 김밥에 넣었더니... 역시 모양도 맛도 거슬렸다. 음식에 있어서 만큼은 내스타일이 아닌 것은 시도하지 않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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