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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피윤 Apr 29. 2020

첫 회사는 월급이 밀렸다

Nothing Perfect, Something Special

늘 하고 싶은 게 많았다. 그래서 대학교를 졸업하고서도 '뭘 하고 먹고살지?'가 아닌 '뭘 하면 재밌을까?'라는 생각으로 직업을 탐색했다. 너무 많이 고른 탓일까. 약 2년이라는 시간을 취업 준비생으로 보냈다. 마음속에 그늘이 지기 시작했다. 비교하지 않기 위해 친구들도 만나지 않았다. 내 가능성에 대한 의문이 조급함으로 변질되기 시작했다. 올해는 넘기지 말겠다는 생각 하나로 한 회사에 입사했다. 그렇게 집에서 걸어갈 수 있는 작은 회사의 인턴으로 비공식적인 첫 회사 생활(이하 A회사)을 시작하게 됐다. (이력서 경력 칸에 넣지 않으므로 비공식이다.)





월급은 80만 원이었다. 하지만 교통비가 들지 않고 점심 식비를 제공해주어 선택한 곳이었다. 교통비와 식비를 아낄 수 있어 선택했다고는 했지만 해외 출장 일정에 넘어가 입사를 결정한 것이 크다. 해외 출장을 노다니는 커리어우먼의 모습을 꿈꿨기 때문이다. 재밌던 것은 A회사 대표님이 알아듣지는 못하셨으나 영어와 일본어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렇게 나는 직원 수가 5명도 되지 않는 이 곳에서 국내외 영업부 팀원이 되었다.


홍콩으로 내 생애 첫 해외 출장을 가며 소원 성취하였지만 여러 시련이 있었다. A회사의 재정난으로 장부를 걸어 식사를 하던 식당에서 따가운 눈총을 받아야만 했고 결국 월급이 밀리는 대참사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퇴사 후에 밀린 월급을 나눠 받긴 했지만 당시에는 마음 쓰린 경험이자 이것이 곧 내 실패같이 느껴졌다. 고작 월급 80만 원 주는 회사를 선택한 나에 대한 자괴감이 이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그럼에도 3개월이라는 시간이 헛되지는 않았다. 회사를 선택하는 기준을 배웠고 회사를 이끄는 대표의 마인드가 얼마나 중요한지도 경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귀중한 경험은 사람으로부터 오는 배움이었다. 그 사람은 바로 팀장님이었다. 우리는 매일 1시간 일찍 출근해 함께 영어 스터디를 했고 이 시간이 좋아 출근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와 같이 국내파 영어 구사자였던 팀장님을 통해 환경보다 의지와 노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몸소 배웠다. 그는 영어뿐만 아니라 중국어 또한 독학했고 단순히 배우는데 그친 것이 아닌 강사의 삶을 살고 있다.


비공식적인 첫 회사가 열정 페이를 요구했음에도 입사했고 열정 페이였음에도 급여가 밀리는 경험을 했다. 덕분에 A회사에서의 생활은 인턴 기간 3개월로 빠르게 정리할 수 있었다. 특별할 것 같았던 첫 직장 생활은 이와 같이 짧고도 강렬했다. 그리고 다짐했다. 직원이 누려야 할 당연한 권리를 모르는 대표가 있는 곳은 가지 않겠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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