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돈을 벌고 싶어한다. 하지만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 직업을 선택하거나, 꿈을 저버린다면 짧은 우리 인생이 너무 슬프지 않을까?
초등학교 시절, 내 꿈은 구름 사진 작가였다. 그냥 구름이 좋아 구름만 찍고 살고 싶다고 생각한 순수한 꿈. 그리고 관악부에서 작은 북을 쳤는데 소질을 인정 받고 좋아하며 북치기 소녀를 꿈꿨고 중학생 때는 초등학교 내내 배운 피아노에 뒤늦게 흥미를 느끼고 피아니스트를 꿈꾸기도 했다.
세계 여행을 꿈꾸던 고등학생 때는 스튜어디스가 장래희망이었다. 스튜어디스는 꽤 오래동안 원했던 꿈이기도 했다. 외적으로 키도 크고, 일하면서 세계 여행을 원없이 할 수 있겠다는 단편적인 스튜디어스의 세계를 경험하고 싶었던 작은 어른이었다.
주제로 돌아가보자. 사람들은 직업을 원한다.
우리는 쉽게 성공한 사람들의 스토리를 듣는다. 또한 많은 채널을 통해 여러 직업에 대한 지식을 소비한다. 여기서 우리는 직업의 귀천이 있다고 믿고, 직업을 통해 그 사람을 단적으로 판단하기도 한다. 사람을 직업에 따라 의식하고 싶지 않지만 내 환경은 그것을 쉽게 허락해주지 않았다. 때문에 옛 말에 따르면, 사자 돌림 직업은 좋고 청소부는 은퇴 후 고려할 단순 노동 직업 정도로 치부됐으니까.
그런데 생각의 전환이 된 사건이 있었다. 젊은 청소부의 스타벅스 테이크아웃, 젊은 버스 운전기사의 힙합 BGM. 캐나다에서 본 풍경으로 이는 그들의 가치관을 알 수 있었던 사건이었다. 딱히 일의 욕심을 내지 않는 이상, 그들에게 직업은 그저 생계 수단이며 직업에 상관없이 그들의 삶을 살고 있었다.
부끄러운 것도 부끄러움 당할 일도 없는 삶. 한국에서 같은 상황이 있었다면 열에 하나는 젊은데 벌써부터 청소부를 하냐며 눈초리를 주는 어른들이 많지 않았을까? 젊은 버스 운전기사에게 이 버스를 너 혼자 이용하냐며 노래가 시끄럽다고 하는 사람도 있을지도.
직업의 귀천은 없다. 타인이 하찮게 생각할 수도 있는 직업도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일이다. 그 직업이 평생 꿈꿔온 커리어가 아니더라도 스스로 버티며 살거나 감사하게 일한다. 나역시 일개 직장인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그 타이틀을 비집고 내가 하는 일과 하고 싶은 것에 집중하고자 한다. 언젠가는 그것이 업이 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아니, 내 꿈을 이루기 위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