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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진아 Nov 03. 2021

정신과 다녀온 썰 풉니다.

고민을 거듭한 끝에 오늘 회사를 1시간 반 정도 일찍 퇴근했습니다.

평소 타던 버스를 타고 가다 중간에 내려 다른 버스로 환승했습니다. 아버지가 알려준 병원에 가려면 그래야 했습니다. 의사 선생님의 이름을 딴 그 정신의학과 병원은 예전에 내가 살았던 동네에 있었습니다. 지금 살고 있는 곳이면서도 묘하게 생활 반경에 들어가지 않는 곳이기도 했습니다.  지난주, 내 상처를 마주해버린 아버지는 이면지에 손수 그린 약도 한 장을 쥐어주시며 집에서도 멀지 않고, 여자 의사고, 찾아보니 괜찮은 곳 같더라면서 꼭 가봤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다른 곳을 갈까도 생각했지만, 익숙하지도 않은 인터넷을 뒤져 이곳을 찾아냈을 아버지를 생각하니 일단 한번 가보고 싶었습니다.


반듯한 명조체로 의원 이름을 새긴 오래된 나무 간판이 있는, 그리고 그 간판과 잘 어울리는 낡고 오래된 건물 3층에 있는 병원이었습니다. 들어가는 입구가 너무 어두워서 순간 던전 입구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입구까지 왔으니 물러설 수 없었습니다. 나는 용기를 내서 계단을 올라갔습니다. 엘리베이터도 있었지만 계단 쪽이 오가는 사람이 없을 것 같았거든요.


다행히 병원은 생각보다 쾌적했습니다. 조금 어두운 느낌이 있긴 했지만 어릴 때 자주 다니던 병원과 제법 비슷해서 조금 친숙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색색깔 돌들이 알알이 박힌 시멘트 바닥, 낡았지만 관리가 잘 되어 윤이 반질반질 나는 가죽소파. 나는 그 소파에 앉아 시멘트 바닥을 발끝으로 톡톡 두들기며 내 이름이 호명되길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대기 손님이 한 명도 없었기 때문에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진료실에서 들어오라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목소리가 남자입니다. 진료실에는 의사 선생님밖에 없을 텐데요. 뭔가 잘못된 것 같았지만 별 수 있나요. 이미 주사위는 잃어버린 지 오래입니다.


겉모습만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만큼이나 의미 없는 것이 이름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이란 걸 오늘 깨달았습니다. 아버지도 나도 당연히 여성일 거라고 생각한 의사 선생님은 아버지 또래의 인자해 보이는 중년 남성이었습니다. 사실 남자여도 상관없습니다만 아버지는 남자보단 여자가 상담을 받기에 더 편할 거라고 생각하시고 열심히 찾아보셨을 텐데 나중에 아시면 얼마나 허탈하실까요. 하지만 저는 조금씩 미묘하게 틀어지고 있는 이 상황이 우습고 차라리 잘 되었다 싶었습니다. 마음에 끼었던 우울감이 순간 옅어져서 덤덤하게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오랫동안 정신과 상담을 받아야 할까 고민했었기 때문에  인터넷에서 관련 자료나 경험담을 많이 찾아보았습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자신은 괜찮을 줄 알았는데 막상 이야기를 시작하려 하니 눈물이 나와서 의사 선생님이 휴지를 건네주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울고 싶지 않았습니다. 울면 얼굴에 티가 납니다. 그리고 우는 건 생각보다 힘든 일입니다. 온몸에 진이 빠져 일상을 유지하는 게 어려워집니다. 나는 그게 싫었습니다. 그러나 이야기를 시작하려 하자 다시 우울감이 밀려오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선생님은 괜찮다면서 휴지를 건네주셨습니다. 아, 이런 클리셰 정말 싫어하는데요, 저도 별 수 없는 인간이었나 봅니다. 


나는 어린 시절 겪었던 상처에 대해, 한 번씩 터져 나와 일상을 파괴하는 폭풍의 시간에 대해 간신히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이야기하다 문득 '평소에는 괜찮은데'라는 말을 강박적으로 반복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평소에는 괜찮은 게, 내세울만한-누군가에게 말할 수는 없습니다만-  장점이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쩌면 나는 평소에 괜찮지 않았던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왜 자존감 낮은 사람들이 자존감에 집착한다고 하잖아요.

평소에 괜찮아 보이기 위해 해왔던 노력들이 스스로를 더 힘들게 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습니다. 처음이라 그런지 말이 잘 안 나왔습니다.


이야기를 들은 선생님은 이런 일을 겪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 보셨다고 했습니다. 마음에 난 그 상처가 완전히 없어질 수는 없다, 대신 상처가 작아 보이게 마음에 다른 것들을 채워 넣는 것이 도움이 되기도 하니 몰두할 수 있는 다른 일을 찾아보려는 시도도 필요하다, 때로는 종교도 큰 힘이 될 수 있다 같은 평범한 조언들과 기억에 남았던 환자들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환자를 어떤 식으로 치료를 했고 얼마나 나아졌는지로 시작한 이야기는 샛길로 빠져서 나중에 나는 그 환자의 인생과 선생님의 사생활까지 알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눈물은 쏙 들어가고 벽에 걸린 시계에 자꾸만 시선이 갔습니다. 그저 선생님 이야기가 빨리 끝났으면 하는 생각만 들었습니다. 그러다가도 한 번씩 동의를 구하는 듯, 나를 쳐다보시면 조용히 고개를 몇 번 끄덕였습니다. 점점 힘들어지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헤비 토커였고 나는 INFP. 빨리 집에 가서 혼자 있고 싶었습니다.

 

다행히 다음 타임 예약 손님이 있어 30분 만에 풀려날 수 있었습니다. 간호사 선생님이 노크를 하고 들어와 사인을 주자 선생님은 급히 요즘 기분이 어떤지, 잠은 잘 자는지를 물었습니다. 나는 회사에서는 평소와 다름없이 지내고 있다고 그런데 집에 오면 이게 맞는 건가 싶다고 또 울면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잠은 많지만 밤에는 쉽게 잠들지 못한다는 이야기도 했습니다. 선생님은 기분을 좀 나아지게 해주는 약을 처방해주셨습니다. 잠들기 1시간 전쯤 복용하면 된다고 했습니다. 


로비의 가죽 의자에 앉아 처방전이 나오길 기다리면서 나는 정신과 처방전을 들고 부운 눈으로 약국을 가야 하는 게 아주 살짝, 손톱만큼 불편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간호사 선생님은 처방전이 아닌, 조제된 약이 담긴 봉투를 건네주셨습니다. 정신과에서는 약 처방을 직접 할 수 있다는 걸 오늘에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병원비도 매우 저렴했습니다. 30분의 상담-절반은 딴이야기였습니다만-과 일주일치 약이 1만 원 조금 넘는 금액이었습니다. 의사 선생님과의 상담은, 물론 울긴 했지만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고 비밀이 보장되니 이 이야기가 새어나가면 어떻게 하나, 내 약점이 되면 어떻게 하나 끙끙 앓을 필요도 없었습니다. 나는 그동안 왜 그렇게 주저했을까요. 이렇게 별거 아닌 것을.


사랑의 역사만을 기록하려고 했던 브런치에 이런 글을 쓰게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인생은 정말 한 치 앞도 알 수 없네요. 오늘 쓰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는데 밤 11시 반쯤, 오늘 처방받은 약을 먹었더니 약효가 있는지 졸리기 시작합니다. 새벽 1시에 잠들 수 있다니 놀라운 일입니다. 이런 기회가 흔치 않아서 일단 잠들어야겠습니다. 왠지 내일 아침은 웃으면서 눈을 뜰 수 있을 것만 같은 부푼 기대감을 앉고 눈을 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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