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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담 Aug 11. 2022

이 순간을 꼭 기억해줘

더이상 함께 기억할 수 없는 시간들

2020.09.29


지현아, 나중에 이 순간을 꼭 기억해줘.
가을이 오는 어느 날. 아빠와 할머니와 함께 차를 타고 용담댐을 지나갔어. 하늘은 푸르고 물은 맑았어. 날씨 좋은 날, 함께 좋은 노래를 들으며 드라이브를 했지.

 

 할머니가 말씀하셨다.

 짧게는 몇 년 뒤, 뒷자석에 아무도 타 있지 않고 아빠와 같은 곳을 지나며 오늘을 회상하는 상상을 했다. 눈물에 목이 메어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말을 건네도 돌아오지 않는 대답만 기다리게 되는 날이 올까봐 갑자기 무서워졌다. 함께 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은 너무 슬픈 일이다.


먼저 가신 할아버지와 후회만 쏟아내던 내 모습이 생각났다. 내일이 없을 수도 있다는 걸 왜 몰랐을까. 미루고 미루다 여행 영상을 만들어드리지 못한 게 가슴 깊이 후회로 남아있다. 1년 후에도, 2년 후에도 내 옆에 계실 줄 알았던 거다. 가시기 전날까지도 영상을 물어보셨는데.. 지나고 보면 별 일 아닌 것을 그땐 왜 그렇게 하기 싫어서 온갖 변명을 늘어놓았을까. 이제 와서 하는 후회가 무슨 소용이 있겠을까. 이미 그는 떠나고 곁에 없는 것을.


할아버지를 보내드리며 가슴에 맺힌 후회들로 할머니께 더 잘해드려야겠다 다짐했다. 하지만 곧 나태해졌다. 정정한 할머니를 보며 안일하게 보낸 2년. 할머니는 홀로 많이 힘드셨나보다. 평생의 동반자를 하루아침에 잃은 게 너무 충격적이셨던 거다. 우린 그 슬픔의 깊이를 잘 알지 못했다. 그저 말뿐인 위로만 반복했었다.


결국 할머니는 기억을 점점 잃기 시작했다. 또 다시 후회해도 소용없었다. 우리의 평범한 일상은 그해 가을에 갇혔버렸다. 더 이상 할머니와 함께 기억할 수 있는 날은 없다. 여러 번 갔던 카페도 매일 처음이라며, 자주 먹던 음식도 생전 처음 먹어본다고 말하는 우리 할머니. 매일이 새롭다는 할머니가 낯설다.


아빠와 할머니와 용담댐을 지나던 날 좋은 초가을. 생전 할아버지가 좋아하시던 노래를 함께 부르며 다같이 웃던 그날. 그럴 수 있다면 딱 하루만 그날로 돌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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