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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썸준 Sep 19. 2020

일본 가고시마 한 달 살기 : Day14

사소한 것에도 성심성의를 다하는 일본인. 이것이 일본의 저력일까

2019.4.1 (월)


어제 푹 잤다고 생각했는데, 자기 전에 음식과 같이 곁들였던 하이볼로 인한 숙취 때문인지 아침에 눈을 떳을 때 몸이 살짝 무겁고 피곤하였다. 

오늘은 가고시마에 온 지 14일차, 어느 덧 달이 바뀌어 4월이 되었다. 벌써 전체 여정의 중반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데다가, 달력도 3월에서 4월로 넘어가서 그런지 체감되는 시간의 속도가 더 빠르게 느껴졌다. 가고시마에 도착할때만 해도 4월이 올까 싶었는데 이렇게 시간이 후딱 지나가고 있으니, 그 간 가고시마에서 있었던 일들이 머릿 속을 스쳐감과 동시에 남은 일정도 알차게 보내야겠다는 다짐을 나도 모르게 하게 되었다.  

전체 일정 중 아직 절반 정도가 남긴 했지만, 마지막 5~6일 정도는 타네가시마와 야쿠시마에서 보낼 예정이라 가고시마에 있는 실질적인 기간이 10일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그래서 오늘은 애초에 계획했던 것 중에 아직 하지 못한 것들은 무엇인지 점검하고, 그것들을 남은 기간 중에 어떻게 운영할 지 정리를 할 필요가 있을 거 같아, 그리고 오늘은 리커버리를 위해 가고시마 시내 지역에서 체류 할 예정이었던 터라, 시내 체류날 오전이면 단골 코스로 방문하는 탈리스 커피로 향하기로 하였다.    


호텔을 출발해 오전 10시쯤에 카페에 도착하였다. 커피 한잔을 주문한 후 자리에 앉아, 먼저 라이딩을 계획했던 곳 중에 아직 가보지 않은 곳을 정리해보았다. 

한 번 더 가보기로 한 기리시마쪽은 하루 날 잡아서 갔다오면 되는데, 아직 계획조차 세우지 못한 이부스키,마쿠라자키, 미나미사쓰마와 같은 가고시마 남부 지역은 일정을 어떻게 짜야할 지 머릿속이 복잡하였다. 일본 내 휴양지로 유명한 이부스키는 당일치기로 갔다와도 좋은데, 미나미사쓰마와 마쿠라자키는 어떻게 해야하나, 특별히 볼거리가 있는 것도 아니고 당일치기로 다녀오기에는 거리도 부담스러운 곳이라 그냥 가지 말까하다가도 미나미사쓰마는 뚜르드 프랑스처럼 '뚜르드 미나미사쓰마'라는 자전거 대회를 개최하고 있어 가고시마에 라이딩을 하러 온 이상 그 코스는 한번 따라 달려보고 싶고, 마쿠라자키는 가쓰오(가다랑어)가 많이 잡히는 곳이라고 하여 가쓰오 요리도 맛보고 싶어, 이번에 가지 않으면 나중에 큰 후회로 남을 거 같아 어떻게든 가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머리를 이리저리 굴리고 있을 때 마침 이치키쿠시쿠노 파라곤 카페에서 만났던 유키상이 이메일을 보내왔다. 이치키쿠시노에서 돌아온 날에 가고시마 서부지역(이치키쿠시쿠노 아래 지역) 라이딩 추천코스와 뚜르드 미나미사쓰마 대회 코스 정보에 대해 물어봤었는데, 바쁜 카페 주말 행사 일정 때문에 회신을 못하고 있다가 오늘 회신을 준 것이었다. 유키상 말로는 서부지역을 여유있게 둘러볼거라면 이치키역에서 출발해 해안을 따라 미나미사쓰마까지 내려가 거기서 하루 숙박을 하고 다음 날 마쿠라자키를 거쳐 가고시마로 돌아가라는 것이었다. 마침 유키상이 일러준 투르드 미나미사쓰마 대회 코스도 추천해준 루트와 상당부분 겹쳐, 그의 조언을 참고해 미나미사쓰마에서 1박하는 것으로 결정하기로 하였다. 사실 내가 보냈던 이메일에 회신을 안하거나 하더라도 텍스트로만 대충 써서 보낼 줄 알았는데, 대회 코스 경로가 담긴 지도 뿐만 아니라 주변에 갈만한 식당 정보까지 상세히 알려줘 그에게 고마움을 넘어 감동을 받았다. 속내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겉으로는 사소한 거라도 성심성의를 다하는 일본인을 보고, 나도 국내에서 도움을 필요로하는 외국인을 그냥 지나치지 말아야겠구나, 나의 행동 하나가 국가 이미지에 미치는 영향이 크겠구나라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되었다. 

내친 김에 숙소도 미나미사쓰마 아래쪽에 카사사라는 지역으로 예약을 하였고, 가고시마에서의 다른 라이딩 일정에 대한 계획도 마무리를 하였다. 라이딩은 기리시마 1일, 이치키-미나미사쓰마-마쿠라자키-이부스키 1박 2일, 이부스키 1박으로 계획하였는데, 남은 10일 중 4일이 라이딩이라 거의 하루 걸러 라이딩을 해야하는 타이트한 일정이긴 하지만, 목표가 명확해지니 오히려 마음은 홀가분해졌다.   


아침부터 머리를 써서 그런지 살짝 허기가 져 시계를 보니 벌써 오후 1시가 지나 있었다. 뭘 먹을까 고민하다가, 오늘도 어김없이 식사시간대에 혼자 파스타를 먹고 있는 여성들을 보고, 예전부터 여기서 파스타를 한번 먹어보고 싶었는데 오늘이 마침 그날이다 싶어 토마토 파스타 런치 세트를 주문해보기로 하였다. 배가 고파 남김 없이 다 먹긴 했지만, 인스턴트 식품 같은 맛에 커피 프랜차이즈에서 파는 파스타에 너무 큰 기대를 했나, 여기서 파스타로 점심을 해결하는 사람들은 맛 보단 편의성이나 장소의 분위기 같은 것을 더 중시하는 건가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식사 후 라이딩 외 가고시마 시내 체류 시 일정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정리를 한 후에 카페 밖을 나섰다.  


원래는 카페에서 나와 트램을 타고 바로 가고시마 대학으로 가려고 했으나, 방에 들러 자전거를 가지고 Fun Ride 자전거 샵에 들렀다가 자전거를 타고 학교로 가는 것으로 변경하였다. 어제 별탈 없이 라이딩을 잘 마치고 돌아와 까맣게 잊고 있다가 라이딩 일정 정리하다가 갑자기 찢어진 타이어 자국이 생각 나, 앞으로 남아 있는 라이딩 건수가 많은데 신경 쓰이는 것은 사전에 확인하고 예방하는 게 좋을 거 같았기 때문이었다. 


자전거를 타고 Fun Ride에 도착하였다. 와 본 적이 있는 가게라 그런지 다시 오니 뭔가 반갑게 느껴졌다. 사장님께 밝게 인사를 드리며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사장님도 어디서 본 거 같은데 하며 처음엔 갸우뚱하시다가, 이내 아, 그 외국인이구만 하는 표정으로 반갑게 맞아주셨다. 

타이어가 찢긴 부분을 보여드리며 괜찮은지 여쭤보니, 타이어 교체를 제안하실 줄 알았는데 예상과는 달리 타이어에는 문제가 없다고 하셨다. 문제가 없다고 이대로 그냥 가기에는 내가 뭔가 불안해 이왕 온 김에 자전에거 전반적으로 이상이 없는지 확실히 체크를 하고 싶어 전체 점검을 다시 요청 드렸다. 그랬더니 페달을 돌리면서 여기저기 만져보시더니, 다른 곳은 괜찮은데 체인의 마모 정도가 심해 교체하지 않으면 변속이 잘 안될 거라고 하셨다. 어제 가다가 갑자기 체인이 풀린 것도 있고 시기적으로도 교체할 때가 되서 그런가 싶어, 비용을 여쭤보니 4,500엔으로 한국과 비교해도 큰 차이가 안나는 거 같아 교체를 요청드렸다. 교체 중에는 내가 별도로 부탁 드리지 않았는데도 크랭크와 스프라켓 쪽에 낀 기름 때가 너무 지저분해보였는지 분해 청소까지 깨끗이 해주시고 타이어 공기압도 알맞게 다시 넣어주셨다. 외국인이라고 바가지 씌우지 않고 친절하고 정성으로 고객을 응대하는 모습을 보고 또다시 일본인의 일을 대하는 자세에 감동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체 점검 및 체인 교체를 마친 후 감사 인사를 드리고 가게를 나왔다. 다시 태어난 거 같이 반짝이는 자전거를 보고 있으니, 뭔가 안심이 되고 어디든 갈 수 있을 거 같은 자신감이 마구 샘솟았다.  


가볍게 들뜬 마음으로 고쓰키 강을 건너 시내 지역을 유유히 지나 가고시마 대학으로 향하였다. 지난 번에는 개강 전인 줄 모르고 방문했다가 제대로 둘러보지 못했지만, 학기가 개강한 4월이 된만큼 오늘은 꼭 일본 대학생들의 캠퍼스 생활을 둘러보고 싶었다.  


학교 캠퍼스에 도착하였다. 학기 초라 그런지 캠퍼스 내 학생들의 표정에 활력이 넘치는 거 같았다.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다는 가능성이 있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그것을 젊은이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라고 하는데, 앞으로의 가능성이 무궁한 대학생들을 보고 있으니 좀 더 높은 곳을 향해 날개짓하던 나의 지난 미국 유학과 중동 사업 시절 때가 문득 생각 나 나도 모르게 가슴이 뜨거워졌고, 앞으로도 매사 도전적이고 열정적인 자세로 임해야겠다는 다짐도 다시 한번 해보게 되었다.  


시간이 좀 이르긴 하나 아까 먹은 스파게티가 다 소화됐는지 살짝 허기져 학생회관 식당으로 먼저 가서 간단하게 학식을 먹어보기로 하였다. 학생회관 앞에는 여기 학생들은 전부 자전거만 타고 다니나 할 정도로 많은 수의 자전거가 건물 앞에 세워져 있거나 눕혀져 있어 놀랐는데, 대부분 자물쇠 잠금 없이 그냥 주차해놓은 것이 눈에 띄였다. 잃어버려도 부담없는 자전거라 그럴 수도 있겠지만, 남의 물건에는 손을 대지 않는다는 상호 신뢰가 있기에 가능한 게 아닐까 싶었고, 분실에 대한 걱정이 없으니 자물쇠 채우는 것에 시간 낭비할 필요 없이 바로 볼 일을 볼 수 있으니 개개인도 효율적인 시간 운영이 가능할 것이고 나아가 이런 것들이 모여 사회 전체적으로도 효율성이 향상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학생회관으로 안으로 들어섰다. 학기 중이라 식당 문이 닫혀 있을거라는 생각은 안했지만 그래도 입구에 '영업중'이라는 입간판이 있는 것을 보니 오늘은 허탕치진 않았구나라는 안심이 들었다. 점심 시간대가 지난 시간이라 그런지 식당 내에 사람들이 많지는 않았다. 식사 메뉴는 일식부터 중식까지 꽤 다양하였는데, 시도해보고 싶은 메뉴가 많았으나 곧 있으면 저녁 시간이라 간단하게 커리와 국을 주문하여 맛을 보았다. 일본 대학 학식은 뭔가 다를까 하는 궁금함이 있었는데, 크게 맛있지는 않은 그렇다고 맛이 없지도 않은 가격(400엔)을 생각했을 때는 불만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의 맛이었다. 그러고 보면 가격 대비 더하거나 덜한 거 없이 그 가격에 합당한 수준의 상품과 서비스를 칼 같이 제공하는 것이 일본 거래 문화의 특성이 아닐까 싶었다.


식당에서 나와 중앙도서관으로 이동하였다. 입구 리셉션에서 방문객인데 잠깐 내부를 둘러볼 수 있냐고 여쭤보니 가능하다고 하시며 임시 출입증을 건네주셨다. 윗 층부터 아래층까지 쭉 둘러봤는데, 지난 번 가고시마 현립 도서관처럼 적막이 흐를 정도로 고요하면서 무게감 있는 분위기에, '그래, 도서관은 원래 이런 곳이지'라는 생각이 들기에 충분하였다. 각 층 구석에 휴대전화를 받을 수 있는 부스가 마련되어 있는 것도 인상적이었는데, 자신으로 인해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문화가 곳곳에 깊게 자리잡혀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도서관에서 나와 캠퍼스를 빠져나가기 전에 학생 라운지에도 잠시 들러보았다. 혼자 공부하거나 조모임 활동을 하고 있는 학생들이 꽤 있었는데 학기 초임에도 뭔가에 진지하게 임하고 있는 모습이 귀여워 보였다. 

다 둘러보고 나가려는 찰라에, 랭귀지 교류 사무실 앞에 외국어 학습 정보란이 보여 혹시 한국어 관련된 것이 있나 살펴보았다. 대부분 중국어였지 아쉽게도 한국어는 찾아 볼 수 없었다. 다양한 연령대가 방문하는 서점이나 현립 도서관은 그렇다쳐도, 20대 초반의 대학생들에게는 한국에 대한 관심이 어느 정도 있고 그것이 한국어 공부로까지 이어져 있지 않을까 했는데 아직 그 정도 수준은 아닌 거 같아 몹시 씁쓸하였다. 언젠가 일본 젊은이들이 한국에 더욱 많은 관심을 갖고 한국어 공부를 해서 한국에 가고 싶어하는 그 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 기원해보았고, 그를 위해서는 우리가 강해지는거 뿐만 아니라 일본과 일본인에 대한 관심과 이해도 병행되야하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같이 해보았다. 


학교 정문을 나와 텐몬칸으로 복귀하는 길에, 캠퍼스 길 건너에 위치한 예전에 방문했던 마루 카페가 있는 동네 주변을 다시 둘러보기로 하였다. 일본인 라이프스타일 관찰 및 이해를 위해 사람들이 많이 모여사는 주거지역도 한 번 둘러보고 싶어, 일전에 airbnb 쿠킹클래스 호스트였던 히카리상에게 추천 지역을 여쭤본 적이 있었는데, 가고시마 대학 앞 동네인 아라타(荒田)라는 곳이 그 곳이라고 하셨던 것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저번에는 별 생각 없이 지나쳤는데 이번에는 주거 지역에 어떤 특징이 있는지 주의 깊게 둘러보자며 동네 쪽으로 이동하였다. 

자전거를 타고 이 골목 저 골목 도는 중에 역시 눈에 띄는 것은 차고지 증명제로 인한 거리의 개방감이었다. 좁은 도로라도 도로 위에 주차되어 있는 차량이 없으니 도로 끝에서 끝까지 한 눈에 볼 수 있어 도로가 넓어 보였고, 게다가 도로 포장 및 청소 상태도 훌륭해 동네의 격이 한층 높아 보였다.  

또한, 그 동안 도심 내 주거지역은 자세히 보지 않아 몰랐었는데, 차고지 증명제로 인해 파생된 주거지 주변 '월 정액 주차장'이라는 존재도 흥미로웠다. 차고지 증명제 때문에 거주하는 주택 혹은 맨션 내에 모두를 위한 주차 공간이 확보되어 있는 줄 알았는데, 특히 도심지역 같이 인구 밀도가 높고 땅 값이 비싼 곳 경우, 차는 있어야겠는데 주차 공간 확보가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주거지 주변에 주차장이 필요할 거라는 생각은 미쳐 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우리나라도 차고지 증명제가 실시될 지 여부는 지켜봐야겠지만, 실시된다고 한다면 주거지 내 주차 공간을 임대해주는 비즈니스가 한층 더 호황을 맞지 않을까 싶었다. 

그리고 차고지 증명제라는 제도가 국민들의 실생활에 미치는 영향을 보고, 국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올바른 정책과 제도가 얼마나 중요한 지 다시 한번 실감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아라타 지역을 빠져 나와 왔던 길을 따라 텐몬칸으로 이동하였다. 예년 대비 올해 벚꽃이 피는 시기가 늦다고는 하지만, 고쓰키 강변에서 따사로운 햇볕과 푸르른 하늘, 그리고 더욱 풍성해진 나무들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이제는 진짜 봄이 왔구나를 실감할 수 있었다.  


호텔에 복귀 후 인근 코인 빨래방에서 빨래 및 건조를 한 후 방으로 복귀하니 어느 덧 오후 8시가 되었다. 몸이 살짝 피곤했는데 이런 타이밍 때 일본인들은 센토에 가서 피로를 풀어주나라는 생각이 문득 들어 탕에 들어가 몸을 녹이며 피로도 풀고 현지에서 다채로운 센토 체험도 할 겸, 가고시마 시청 인근에 있는 가곤마 온센(かごっま温泉)이라는 센토로 가보기로 하였다. 지금까지는 센토 이용 시 탕 내에서 중요 부위를 타월로 가리지 않고 다녔는데, 로마에서는 로마법을 따르라고 이왕 이용하는 거 현지인처럼 해보고 싶어 몸을 닦을 큰 타월과 '가리기용' 작은 타월을 같이 챙겨서 다시 호텔 밖으로 나섰다. 


호텔에서 센토까지는 1.5km 정도 되는 거리라, 가볍게 땀 내면서 운동도 할 겸 뛰어가기로 하였다. 

도착해서 본 가곤마 온센 건물은 살짝 낙후되어 보이긴 했지만 그래도 외관에서 풍기는 포스에서 이 곳만의 역사와 전통을 느낄 수 있었다. 이 곳도 실내는 일반 센토과 유사하게 남탕과 여탕 출입구는 다르지만 요금을 받는 아주머니는 가운데에 한 분이 계셨고, 본인 짐은 라커가 아닌 바구니 안에 담아놓고 안으로 입장하는 구조였다. 

현지인처럼 타월로 중요 부위를 가린 채 안으로 들어가서 미지근한 물로 몸을 몇 번 헹군 다음, 탕으로 들어가기 직전에는 타월이 젖지 않게 접어서 머리 위에 얹어 놓은 후 탕 안으로 들어갔다. 물은 사쿠라지마 온천과 비슷하게 탁했는데, 몸에 물이 닿자마자 나도 모르게 으어 소리를 내며 몸이 풀리는 것을 느낄  수 있어 이 맛에 일본인들은 매일 일과 후 센토에서 하루를 마무리 하나 싶었다. 탕에 들어가고 나오는 것을 2번 더 반복한 후 탈의실로 나가 몸을 닦고 옷을 갈아 입었다. 몸이 후끈거리면서 노곤노곤한 게 꿀잠각이었다. 

센토 내 TV에서 올해 5월 1일부터 연호가 현재의 헤이세이(平成)에서 레이와(令和)로 바뀐다는 내용의 뉴스가 메인으로 계속 나왔다. 연호가 바뀐다고 뭔가가 급격히 변하진 않겠지만 그래도 연호 변경을 공표하는 역사적인 날에 내가 일본 현지에 있다는 것이 신기하였고 이로 인해 이번 여행도 좀 더 뜻깊게 느껴졌다. 


호텔 쪽으로 다시 슬슬 걸어왔다. 그러고 보니 아직 저녁 식사를 못해 식사 겸 가볍게 반주를 하기 위해 호텔 바로 옆에 위치한 '닭사시미' 전문점인 미야마 본점(みやま本舗 天文館店)이라는 곳에 가보기로 하였다. 사실 가고시마에 오기 전까지는 닭사시미의 존재에 대해 몰랐었는데, 일전에 히카리상께서 다른 지역 사람들은 먹지 않는 이 곳 가고시마 지역 사람들이 주로 즐겨 먹는 음식이니 여기에 있을 때 시도해보라고 얘기 해주신 적이 있어, 어떤 맛인지 궁금하기도 하고 한국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는 음식도 아니고 해서 한 번 먹어봐야지 했었기 때문이었다.  


가게 안으로 들어가, 다리, 날개, 모래주머니로 구성된 닭사시미와 직원에게 추천 받은 고구마 소주 한잔을 주문하였다. 사시미라 그런지 각 부위 별로 맛 차이는 크게 느껴지지 않았지만 식감의 차이는 분명히 있었다. 서걱서걱 씹히는 닭사시미와 고구마 소주와의 조화가 생각보다 좋았다. 원래는 간단하게 사시미만 먹고 나가려고 했는데 이번 아니면 언제 또 이 곳 닭요리를 먹어보겠냐며 구이 메뉴도 추가로 주문하였다. 달궈진 돌판에 5개의 다른 부위를 구워 먹는건데 각 부위별로 맛과 식감이 달라 골라먹는 재미가 있었다. 

닭사시미와 구이 모두 국내에서는 아직 생소한 요리라 좋은 미식 경험이었고, 우리보다 다양한 닭 부위를 활용해 요리화하는 일본인들을 보고 역시 자원 활용 측면에서는 우리가 배울점이 많구나를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방으로 들어왔다. 몸이 노곤노곤한 상태에서 고구마 소주를 한 잔했더니 몸에 피로가 훅 올라오면서 졸리기 시작하였다. 내일은 라이딩을 하지 않고 시내 지역 관광 및 관심 사항을 둘러볼 예정이다. 오전에 재정비한 계획대로 남은 일정이 잘 마무리 되기를 기원하며 깊은 잠을 청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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