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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썸준 Oct 04. 2020

일본 가고시마 한 달 살기 : Day24

유명 맛집이라고 무조건 가진 않는다

2019.4.11 (목)


어제 기분 좋게 술을 마시고 자서 그런지 잠은 푹 잘 잤으나 양이 조금 과했는지 살짝 숙취가 있었다. 일어나 기지개를 펴면서 창 밖을 바라보았다. 시간이 언제 이렇게 흘러 벌써 타네가시마와 야쿠시마로 출격 전 가고시마 '육지'에서의 마지막 날이 됐는지, 흔히 얘기하듯 시간의 흐름이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빠르게 느껴졌다. 

오늘이 가고시마 '육지'에서 뭔가를 할 수 있는 마지막 날이라는 생각에 가고시마의 상징인 사쿠라지마 쪽으로 가볍게 라이딩을 다녀올까 했으나, 숙취 때문에 피곤한 것도 있고 어차피 내일부터 강행군일 텐데 오늘은 무리하지 말고 컨디션 관리 차 쉬면서, 타네가시마와 야쿠시마 일정 리뷰도 하고 내일 새벽에 일어나야 하니 일찌감치 짐을 싸고 자는 편이 낫겠다 싶었다.  


일단 정신 좀 차릴 겸 샤워를 하고 나와 캔커피를 하나 마시면서, 타네가시마와야쿠시마로 가져갈 짐과 가고시마에 남길 짐이 무엇인지 구분 작업부터 해보기로 하였다. 가져갈 짐을 최소화하기 위해 자전거 라이딩과 등산에 꼭 필요한 것들만 우선 보이는 대로 한쪽으로 몰아놨는데도 그 양이 만만치 않았다. 


늦게 일어나서 그런지, 얼마 한 것도 없는데 벌써 오후 1시가 넘었다. 짐 싸는 것은 이따 저녁때 마무리하기로 하고, 우선 나가서 점심식사부터 하기로 하였다. 해장이 필요했는지 뜨끈한 국물이 생각나 라멘이 딱이다 싶었다. 마침 가고시마 유명 라멘집 중에 아직 못 가본 노보루야(のぼる屋)라고 하는 라멘집도 생각나 거기로 가기로 하고, 나간 김에 식사 후 카페에 가서 일정 리뷰 작업도 하기 위해 노트북과 책자 등을 넣은 가방도 같이 챙겨 나갔다. 


노보루야는 텐몬칸에 위치해 있어 호텔에서 출발한 지 얼마 안 되어 도착하였다. 노보루야는 1947년에 창업한 가고시마 인기 라멘집 중 하나로, 연로한 여주인이 운영을 하다가 가게 대를 이을 아들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2014년에 문을 닫았는데, 이 곳의 폐업을 아쉬워하던 한 열혈 팬이 주인의 허락과 주변의 도움으로 예전의 맛을 재현한 후 2016년에 다시 오픈하였다고 한다. 


유명 라멘집이라 가게 앞에 줄지어 서있는 사람들로 가득할 줄 알았는데 예상과 달리 가게 앞은 한산하였다. 점심시간대가 살짝 지난 오후 2시라 그런가 아니면 유명 식당이라고 하면 우르르 몰려드는 우리의 외식 문화와는 정말 다른가 의아하였다.  


가게 안으로 들어서 점심으로 1일 30그릇 한정으로 판매한다는 라멘을 키오스크에서 주문한 후, 바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주방에서 라멘을 만들고 계신 남자분이 혹시 가게를 다시 오픈한 그 열혈 팬인가하며, 라멘이 나오길 기다렸다. 

가게 내 손님이 많지 않아 얼마 안 있어 라멘이 나왔다. 차슈, 숙주 파만 얹어놓아 무심해 보이지만, 은은하게 깊이 있으면서도 뒤가 깔끔한 국물 맛이 인상적이었고, 다른 가고시마 라멘집보다 면발이 좀 더 굵은 것이 독특하였다. 

국물과 면을 번갈아 가며 맛있게 먹으면서 일본인들의 외식문화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지난번 디앤디파트먼트 d travel 책자에 소개된 노리(のり一) 라멘집도 그렇고, 우리와는 다르게 유명하다는 식당에 사람들이 줄지어 서있지 않는 이유가 뭘까, 평소 유명 맛집에 대한 정보 접촉 자체가 부족해 그 존재를 잘 몰라서 일까, 아님 본인이 선호하는 특정 식당 외에 다른 곳은 시도하는 것을 꺼려서 일까, 그것도 아니면 어느 식당을 가나 다 맛집이라 식당 선정 시 매스컴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는 것일까. 어떤 것이 이들 문화에 좀 더 가까운 것일까 고민을 하다가, 이건 앞으로 일본에 대한 공부와 방문 경험을 바탕으로 내가 풀어나가야 할 숙제로 남겨두는 편이 좋겠다 싶었다. 


식사 후 데루쿠니 신사 주변에 있는 디니즈 커피(ジニス コーヒー)라는 개인 커피점으로 이동하였다. 지금까지 접근성과 작업 편리성 때문에 대형 프랜차이즈 커피점만 간 거 같아 남은 기간 동안 개인 커피점도 경험해보고 싶기도 하였고, 카페에서 작업 후 시로야마 전망대까지 갔다 올 생각에 자연유보도 입구 주변에 있는 개인 커피점이라면 더욱 좋을 거 같았기 때문이었다.  


디니즈 카페는 좁은 건물 면적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주인의 인테리어 센스가 인상적이었다. 층고를 높게 하고 목재와 백열등 사용으로 따뜻한 분위기를 연출해 최대한 실내 공간이 넓게 느껴지게 하고, 1층에서는 주문만 받고 2층에는 테이블만 배치해 층 간 역할을 확실히 구분해 놓은 것이 눈에 띄었다. 

프랜차이즈 커피점과 유사하게 개인 커피점을 방문하는 사람들도, 작업이나 공부보다는 주로 상대와 이야기를 나누고, 이야기를 나눌 때도 옆 테이블에 실례가 되지 않게 조곤조곤 말하는 것을 보고, 커피점 형태를 떠나 커피점을 이용하는 행태는 비슷함을 알 수 있었다.  

주문한 드립 커피는 프랜차이즈 커피점에서는 느끼기 어려운 고급스러운 맛이었다. 요식 시장이 대형 프랜차이즈와 자영업자로 양분되어 있지 않을까 하는 나의 가설대로 커피와 디저트 시장도 가성비의 대형 프랜차이즈와 퀄러티의 자영업자로 나눠져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1시간 반 정도 3박 4일간의 타네가시마, 야쿠시마 일정 최종 리뷰를 마치고 카페를 나와 자연유보도로 향하였다.  


시로야마 자연유보도는 이번을 포함해 벌써 4번째 방문이었다. 올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도심지 바로 옆에 있지만 이 곳에 오면 도심지에서 멀리 떨어진 자연 한가운데에 와있는 거 같아, 산책로를 따라 걸으면서 잠시 번잡한 속세에서 벗어나 나 자신을 되돌아보고 리프레쉬할 수 있어 정말 매력적인 곳이었다.  


30여분 정도 걸어 올라 전망대에 도착하였다. 살짝 구름이 끼긴 했지만,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선명한 색감의 사쿠라지마와 가고시마 도심지의 모습이 가슴속을 시원하게 해 주었다. 내일이면 가고시마 아닌 타네가시마라는 낯설고 새로운 곳에서 무언가를 하고 있겠구나라는 생각에, 별 탈 없이 잘 마무리할 수 있을까 하는 긴장도 살짝 들다가, 어떤 곳인지 궁금하고 빨리 가보고 싶다는 마음에 기대가 되기도 하고 여러 생각들이 교차하였다. 


전망대 뷰를 감상한 후, 호텔로 일찌감치 복귀하기 위해 왔던 길을 따라 다시 걸어 내려갔다. 복귀 길에 텐몬칸 상가를 거쳐 갔다. 웬만한 가게들은 거의 다 둘러본 거 같은데 혹시 아직 못 본 곳이 있는지 주위를 세심히 살피면서 가다가, STEP이라고 하는 러닝화 전문샵이 있어 호기심에 잠시 들러보기로 하였다.


조깅을 좋아하고 많이 하는 일본 소비자 니즈를 맞추기 위해서인지, 가게 내에는 다양한 러닝화 브랜드뿐만 아니라 브랜드 내에서도 다양한 디자인의 러닝화를 볼 수 있어 신발을 둘러보는 재미가 있었다. 또한, 신발 외에 러닝에 필요한 의류 및 보충제와 같은 용품들도 러닝 상황에 맞게 적절히 사용할 수 있게 세분화되어 있어 인상적이었다. 

우리나라 신발 가게 신발보다 디자인과 기능 면에서 더 나아 보이는데, 가격은 우리의 60-70% 수준이라 우리나라 신발 시장에 거품이 얼마나 심하지도 느낄 수 있었다. 신발 시장 내 영향력 있는 국내 브랜드가 거의 없다 보니 수입 브랜드들이 국내 소비자들을 호구로 보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우리 브랜드들도 경쟁력을 키워 일본의 미즈노나 아식스 같은 브랜드로 성장했으면 하였고, 나아가 국내 소비자들이 우리 브랜드를 선호하고 수입 브랜드에 휘둘리지 않고 합리적인 소비도 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해보았다.  


STEP 러닝화 매장을 둘러보고, 편의점에 들러 간단하게 저녁을 해결할 수 있는 디저트와 빵류를 몇 개 구매한 후 호텔에 복귀하였다. 


저녁 7시부터 약 2시간 동안, 내일 새벽에 일어나면 바로 나갈 수 있게, 타네가시마와 야쿠시마로 가져갈 것과 여기에 남길 것을 구분해서 짐을 싸는 작업을 마쳤다. 호텔 프런트에 내려가 내일 새벽에 체크아웃할 예정이라고 미리 얘기하고, 짐을 맡겼다가 4일 후에 찾아가도 괜찮을지 여부를 확인한 후 방으로 다시 올라왔다. 


한 달 정도 있었다고, 짐 싼 후 휑하게 정리된 방을 보고 있으니, 내일 이 곳을 나간다는 게 아직까지 믿겨지지가 않았다. 

내일 타네가시마로 향하는 페리 체크인 시간은 아침 6시 반부터인데, 조금 여유 있게 준비해서 나가고 싶어 5시쯤에는 일어날 예정이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야 한다는 부담감에 평소 안 자던 10시부터 자려고 침대에 누웠더니 몸만 뒤척일 뿐 쉽사리 잠이 오지 않았다. 첫날 가고시마 공항에 내려 이 곳 텐몬칸 APA호텔까지 긴장하면서 왔던 게 엊그제 일처럼 생생한데 오늘이 여기서 마지막 밤이라니, 지난 24일간의 추억들도 곱씹어보고 남은 일정 동안 있을 일들도 상상해보면서 그걸 주문 삼아 다시 잠을 청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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