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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대문 농린이 Aug 22. 2021

무제-01

  그 날도 여느때처럼 하늘이 맑았다. 햇빛은 노랗게 내리쬐고 있었고, 길 옆의 나무들은 푸르디 푸르렀다. 옆집 고양이 그레이엄은 오늘도 산책을 나와 화단에서 뒹굴고 있었다. 하얀 털이 갈색으로 물들고 있었다.  나의 하우스메이트는 오늘도 지각이었다. 집 문앞에서 3분, 1층으로 내려와 5분을 기다렸지만 "잠시만-!"이라는 외침만 들릴뿐 나올 생각을 안했다. 결국 기다리다 지쳐, 먼저 코트를 벗어났다. 우리집 코트를 벗어나는 길은 얕은 오르막이었다. 짧은 오르막이었지만, 출근길에는 한없이 길게 느껴졌다.


  이틀 전, 한국에서 새로운 직원이 도착했다고 했다. 자세히 아는 정보는 없었다. 임시숙소를 따로 구하지 않고 기존 직원분의 집에서 함께 생활하기 시작했다는 것과, 여기에 오기 전 미국에서 잠시 근무했었다는 것. 

  입국날 한국인 모두가 함께 모여 환영식을 가졌지만, 나는 지방 출장으로 참석하지 못했다. 평소였으면 어떤 사람일지 궁금해 여기저기 묻고 다녔을텐데, 그 날은 그러지 못했다. 

 나는 하우스메이트와의 생활패턴이 맞지 않아 매일 혼자 삐걱거리고 있었고, 5일간 다녀온 지방 출장은 폭우와 산사태가 겹쳐 체력적으로 한계에 부딪히고 있었다. 사실, 나는 이렇게 고생하고 있는데, 나만 쏙 빼놓고 일식집에서 진행된 환영식이 서운하고 서러웠던 것도 있었다.


  날씨가 이렇게 좋은데, 출근길은 참 상쾌하지 못했다. 하우스메이트가 저 뒤에서 "같이가-"하며 부르고 있었지만, 안들리는척 하며 혼자 걸었다. 혼자가 더 편했다. 이 짧은 3-4분이라도 혼자이고 싶었다. 

  저 멀리, 다른 코트에서 버건디색 백팩을 맨 사람 한 명이 걸어왔다. '어, 한국인인데? 아, 그 새로온 직원인가?' 

 그 새 얼굴이 보일만큼 가까워졌다. 등 뒤의 하우스메이트가 나를 너머 반갑다는 듯 인사를 건내고 있었다.

  " 어, 안녕하세요-! 첫 출근이시네요! 잠은 잘 주무셨어요?"

  하우스메이트의 밝은 인사와는 달리 새 한국인은 어색하다는 듯 웃으며 목인사를 건냈다. 나도 덩달아 목인사를 건냈다. 어색한 웃음이 귀엽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설렜다. 당신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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