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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누나 Apr 23. 2024

자기 발견을 향한 항해: 여행의 시작

한달살이를 마음먹기까지 너무나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그동안 쉴 줄 모르고 일했던 나를 위해 잠시 ‘휴식’을 선택하는 것이 뭐가 그리도 어렵다고 ‘한달살이’를 결정하는 게 어려워 며칠 째 비행기 예매날짜만 보다 말다 한다.



쉬는 게 왜 그렇게 두렵고 불안한가,

책 <술 취한 코끼리 길들이기>에서 적힌 문구가 이 상황을 정확히 설명해 준다.


“삶에서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은 원하는 어떤 것을 이루지 못해서가 아니라, 원하는 그 마음을 내려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무엇을 내려놓지 못하는 것인가,’ 쉬지 못하는 내가 마음을 먹고 한달살이를 결심한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인간이 추구하는 자유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욕망의 자유’ 그리고 ‘욕망으로부터 자유’이다.


우리는 늘 욕망의 자유 곧 선택의 자유를 추구하며 살아간다. 그것은 각자의 마음속에서 들려오는 거부할 수 없는 명령과 같다.


‘너는 지금 그것을 해야 해, 그것만 얻으면 넌 더 행복해질 수 있어. 그러니까, 넌 지금은 쉴 때가 아니야, 쉰다면 금세 넌 뒤처질 거야.’



사업을 하면서 더 쉴 수 없게 됐고, 4년 동안 하루 이상 제대로 쉬어본 적이 없다. 업무는 매일 테트리스처럼 쉴 새 없이 쏟아지는데, 하루라도 쉬면 감당하지 못할 업무가 쌓여버리니, 어느 순간 체력도 정신도 고갈됨을 느꼈다. 24시 풀가동되는 컴퓨터 같았다. 머릿속은 늘 일, 일, 일...


어느 순간부터 오후 5시만 되면 미칠 것 같았다. 소파에 드러눕고 싶은데, 아직 퇴근 안 한 직원이 있다. 업무는 남아있는데 어느 순간 사무실 의자에서 꾸벅

졸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미쳤어. 이제 체력도 바닥났고 정신력으로도 못 버티는 수준이 온 건가, 사업도 이제부터 시작인데, 정신 차려!'


그날 저녁 코로나라 야간 운영시간이 감축 돼 24시간 운영하는 피트니스 센터를 찾기 어려웠다.

한 곳을 찾았다! 나에게 거리는 중요치 않았다. 바로 2달 치 PT를 등록했다.



운동을 시작하고 일주일 후부터 달라지는 것이 느껴졌다. 하루 운동을 하면 다음 날을 버틸 힘이 생겼고,

이틀을 가면 2.5일을 버틸 수 있는 체력이 생겼다.

그 후론 주 5-6일을 꾸준히 웨이트를 하며 체력을 키워가며 버텼다.


그렇게 사무실 - 운동 - 집, 버뮤다 삼각지대 같은 일상을 보냈다.


체력이 좋아지면 분명 에너지가 생긴다. 활력이 불어넣어 지니 자신감도 생긴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마음속문제.


사업을 할 때, 내 인생에서 '뼈를 갈아 넣을 정도로 열심히 했다'라고 말한다. 성인이 되어 최선을 다했을 때 누구나 한 번쯤은 이런 말을 하곤 한다.


“지금 이 열정으로 공부했으면 서울대 갔을 텐데.”



누가 시킨 것도 아니었다. 내가 선택한 결정이었다.

도전하고, 시행착오의 과정을 거쳐 성취를 이뤄내는 과정. 107개의 도전과 성취. 그리고 지금도 업데이트되고 있는 중이다.


주변에서 늘 무언가를 배우고 새로운 것에 쉽게 도전하는 나를 신기하게도 보고, 흥미로워한다.

또는 이러한 도전을 응원과 지지의 말보다는 걱정과 우려를 섞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가족도 나에게 말한다.


“왜 매번 힘든 길을 선택하니”


‘힘든 길...’



처음에는 몰랐다. 그게 힘든 길이 될 줄은. 해야만 할 것 같았고, 그렇게 하고 싶어서 선택했던 도전이 단 한 번도 순탄하게 흘러가본 적이 없다.



어려서부터 한 인간의 개성을 존중해주지 않는 문화와 어른들의 수치 발언에 대한 반항아적 기질이 있었다.

"00해 해야지, 00해야 착한 어린이지, 어른들 말 들어야지, 그게 되겠니, 아무 나하는  거 아니야, 넌 여자라서 안돼..."


그게 되겠냐고, 이래야 한다고, 저래야 한다고, 나의 선택과 결정권을 누르는 버튼은 어느 곳에 장착되어 있는 건지, 가장 가까운 사람마저도 나에게 상처를 준다.


성공에도 답이 있는 세상, 좋고 싫음, 옳고 그름이 나뉘어 있는 세상에 살고 있는 듯, 어린 나의 머릿속은  늘 <물음표 천지>였다. 그러나 나의 물음에 속 시원히 답해 준 어른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중학교 시절.

중2병이자 내적 질풍노도가 심한 때였다.

겉으로는 모범생이었지만 내 안은 굉장히 혼란스러웠다. 나는 그때 빛을 잃었다.


고2 때 미대입시를 위해 친구가 소개해 준  미술학원에 갔다. 나는 디자인을 전공으로 준비하고 있었다.

당시 대학입시미술학원들은 입시미술을 빨리 시작하고, 학원마다 특유의 그림체를 따라가는 성향이 있었다. 그런데 내가 갔던 학원은 단 한 명의 아이들의 비슷한 그림이 없고, 자신의 개성이 담긴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리고 세상에 있는 모든 재료로 표현하고 싶은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있었다.


이곳은 나의 자유와 표현이 허용된 유일한 장소였다.

피난처 같은 이곳에서 나는 잃었던 빛을 다시 찾았다.


미대입시를 6개월 앞두고 원장 선생님은 나를 불렀다.

원장님이 홍대 조소과 출신이셨는데 자신은 디자인 전공이 아니라 가르쳐줄 수 있는 게 없으니 다른 학원으로 옳기라는 것이었다.

청전벽력 같았다.


'아니 이제 와서 그런 말씀을 하시다니요. '


주변에서 모두 나를 말리며 빨리 학원을 옮기라 말했지만,  나는 그 학원에 남기로 결심했다. 전공을 조소로 바꾸기로 한 다음날 원장님은 내 눈빛이 바뀌었다고 했다. 당연하지 않은가, 5개월 하고 3주 시간 동안 한 번도 배워본 적 없는 조소로 시험을 쳐내야 한다.

다른 친구들이 오전 10시에 출근하면 나는 원장선생님과 함께 오전 8시에 출근해 밤 12시까지 작업했다.

주말에도 예외 없이 밥 먹는 한 시간을 제외하곤 오로지 작업에만 몰두했다.


결국 지원한 학교에 합격했다.

그러나  막상 들어가니 내가 원하던 교육이 아니었다.

단순히 학원을 옮기고 싶지 않아 선택한 결정이, 또 다른 딜레마에 빠졌다.

나는 색감을 잘 쓰고 다양한 창작작품을 원했지만 조소는 돌, 나무, 철 등 내가 배우고자 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던 중 미술대전에 조소가 아닌 자유작품으로 상금 와 함께 우수상을 받게 되었다. 더 이상 이곳에 머물 것이 아니라 내가 정말 배우고 싶은 것을 선택해야겠다는 결심이 들었다. 내가 배우고 싶은 전공이 있는 프랑스 유학을 결심했다.


다음날 부모님께 말씀드리고 바로 유학수속을 끊었다.

포트폴리오를 준비하며 비자가 나온 6개월 만에 바로 출국했다. 내가 선택한 결심은 오로지 유급 없는 졸업!

언어도 배우지 않고 문화도 모르던 나는 시행착오를 겪으며 꽤 많은 고생을 했다. 기분 좋은 성취도 있었지만 때론 예상치 못한 문화적 충격과 사회적 편견으로 나를 좌절하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지금도 꾸준히 내가 결심한 도전은 고난과 역경이 다가와도 비록 결과가 내가 생각했던 것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또 다른 도전을 현재진행 중이다.

도전-과정-성취를 굴렁쇠를 굴리듯 삶에서 정말 다양한 경험을 했다. 타고난 것을 거부하기도 하고, 나의 선택은 때로 무모하기도 했다. 알바, 프리랜서, 직장생활, 전문직, 사업 나는 자기 발견에 미친 사람이었다.


20대의 나는 자신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되면 마음속 공허함이 해결될 거라 생각했던 것이다.

공허감을 나의 욕구에서 찾았다.

재밌는 것은 우연히라도 되듯 그때 쌓았던 스킬과 발견된 재능은 원하는 어떤 일이든 시도할 수 있는 자원과 경력이 되어 꾸준한 실력으로 쌓이게 됐고,

18살부터 시작된 자발적 고통은 삶의 자산이 되었다.




그런데,

번아웃 주기가 점점 잦아지고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몸상태와 관계에서 오는 상처와 좌절은 열심히 사는 삶을 순식간에 허무하게 만들었다.


내가 원한 삶은 이런 게 아니었는데 자꾸 이상하게 돌아간다.‘타이탄의 도구들’의 저자 팀 페리스처럼 4시간만 일하고 일의 자동화를 만들어 자유로운 삶을 사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반대로 시간과 돈의 노예가 되어있었다.


내려놓을 수 없는 것이 너무나도 많았다. 욕구로부터 자유를 원했지만, 욕구의 노예로 살고 있었다.

삶이 지옥 같고 감옥 같았다.


뭔가 삶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오랜만에 받은 건강검진에서도 걱정될 만한 소견이 나왔다, 조직검사를 해봐야겠다는 것이다.

아니, 이렇게 운동도 열심히 하고 몸도 잘 챙기는 내가 암 조직검사라니요?



하나, 몸의 이상징후를 제외하고도 나는 아주 오래된 세 가지 병을 깊게 앓고 있었다.

“강박, 일 중독, 쉬지 못하는 병”


겉으로 보이는 것만 멀쩡했지, 안은 시커멓게 타들어간 감정의 찌꺼기들이 쌓였을 뿐이었다. 마음을 한 번이라도 챙겨본 적이 있던가.


이것을 깨달은 순간, 제주행 티겟을 예매했다.

처음으로 한 달의 휴식을 주기로 허락한 순간은, ‘드디어 내면의 소리를 들어보겠다고 마음먹은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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