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상수씨 sans souci May 03. 2020

두서없는 여행중 메모

포르투갈 포르투에서 쓰다.


행을 할 때마다 습관적으로 하는 일이 있다. 영수증과 티켓을 모아 노트 한가득 붙여두기. 그리고 틈틈히 이동하며, 카페에서 쉬어가며, 영수증과 티켓에서 떠오르는 내 생각들 메모하기.


장기간 여행에선 이 기록의 조각조각들이 모여 나의 일기장과 다름없어진다. 하루를 온전히 다 마친 밤, 처음부터 끝까지 써내려가는 것으로 일기를 정의했건만, 이제는 나의 일기는 그 순간 순간에 써내려간다. 순서와 상관없이 포르투갈에서 적어둔 메모를 두서없이 적어본다.







포르투갈 포르토에서

Portugal, Porto




















2020년 1월 11일 첫째날.


#. 마드리드 공항가는 길

- 새벽부터 지하철을 타야해서 무서웠지만 한편으론 다행이다. 불금으로 밤새 놀다 지친 사람들이 도로 가득 매우고 있어 텅빈 도로보다는 덜 무서웠다.


#. 마드리드 공항

- 동양인이여서 무시받는 순간이 있었다. 운이 좋았던 건지 눈치없어 그냥 지나쳤는지 나에게 이런 일이 그동안 단 한번도 없었다. 공항 버거킹에서 주문하려는 나를 못본척하고, 받아주지 않았다. 못들었나 당황스런나머지 다시 말을 건 순간, 나보다 뒤에 온 손님의 주문을 받는걸 보고 '아... 맞구나... 이거구나...' 하고 기분이 너무 씁쓸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내가 단단해져야 겠다고. 강한 사람이 되어서 단순히 인종과 국적으로 나를 판단하지는 않도록.


#. 비행기 안

- 라이언에어 정말 악명 높은게 맞을까? 너무 친절하고, 내가 탔던 3번의 비행기 모두 연착은 커녕 오히려 일찍 준비되는 경우가 다반사. '라이언에어 꽤 괜찮다?' 하다가 문뜩 내 캐리어가 갑자기 떠올랐다. 비밀번호로 라킹하지 않은채 부친 내 캐리어가 어느 누군가 처럼 분실되거나 부서지면 어떡하지. 부디 무사하기를 바란다며 걱정한다. 참 나도 변덕쟁이다.


- 유럽의 저가항공은 공간이 넓어 참 좋다. 덩치가 작은 나의 체격에 이득이라면 이득이랄까.


-오늘 해야할 일이 많다! 구글에서 오늘 포르투의 날씨가 맑단다. 그렇담 나는 해안도로를 달려야겠고, 자전거도 타야겠고, 노을도 봐야겠고, 숙소에 돌아와서는 정해진 것 없는 다음주 일정도 짜야겠다. 평소에는 생각지도 않을 소소한 일들에서 의무감은 참 오랫만에 느껴본다. 해야할일이 가득 쌓일수록 행복한 투두리스트(To do list).


#. 비행 마친 순간

- 착륙을 하자 비행기 스피커에서 예상치못한 팡파레가 울려퍼졌다. 다들 환호성을 지른다. 기장의 "Have a great weekend!" 이라는 말과 함께 다들 얼굴에 설렘이 배가 되었다. 그래도 아마 저 비행기에서 제일 들뜬건 나일것이다. 작은 축제에 와있는 기분이었다. 얼떨떨하면서 참 행복한 경험이었다.






#. 해안도로를 달리며

- 블로그와 구글맵에서 본 어떤 해안도로를 다녀오기위해 숙소 직원에게 자전거를 빌렸다. 그가 나에게 어디 갈건지 물었다. 포르투갈어 발음을 몰라 지도를 보여줬다. 그러더니 고개를 저으며, 저기는 관광객이 너무 많다며 현지인이 많이 간다는 반대편의 도로를 알려주었다. 망설임없이 그가 알려준 길을 향했다. 그는 잘 다녀오라며 손을 흔들어줬다.






- The answer is local. 이말은 진리였다. 정말 이곳의 바다는 특별했다. 긴 여정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일지도 모르겠다. 맑은 바다색과 난생 처음보는 높이의 웅장한 파도에 압도되었다. 왜 포르투갈이 유럽 서퍼들의 성지라고 불리는지 이해가 되었다. 너무 멋졌다. 파도가 철석이는 이곳을 달리는 동안 가슴이 뻥 뚫리는 것만 같았다.





-건물들이 오밀조밀 시골 할머니댁에 온것 같다. 귀엽다.





#. 포르투의 첫날, 숙소에서

- 내가 묵은 숙소에서는 포르투갈 할머님께서 직접 만들어주시는 가정식을 저녁에 제공해주었다. 망설임없이 미리 신청을 해두었다. 전통음식이 바로 입에 딱 맞지는 않았지만, 직원들과 투숙객 모두 함께 모여 음식을 나눠먹는 따스한 저녁 분위기에 내일 또 한번 먹어야겠다.


-나는 회사를 다니던때부터였을까. 언제부턴가 밤에 쉽게 잠들지 못하고, 종종 잠드는 시간이 다가오면 괴로울때도 있었다. 체크인을 하는데 직원이 웰컴드링크로 와인 한잔이 제공된다더라. 평소 술을 거의 마시지 않는 나는 그의 제안에 별로 흥미가 없었다. 잊고 있던 와인 한잔이 자전거를 타고 돌아왔을 때 불현듯 떠올랐다. 공짜니까. 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별생각 없이 주문했다.


아, 왜 포르투 와인 포르투 와인 하는지 이제서야 알겠구나! 그 한잔의 와인은 정말 맛있었다. 그리고 나에게 참 오랫만에 깊은 잠을 선사해주었고, 다음날 아침 피곤함이 싹 사라진 개운함에 정말 행복했다.







2020년 1월 12일, 둘쨋날



#. 포르투에서의 둘째날 아침.

- 아직까지 정하지 못했다. 말라가냐. 라고스냐. 둘다 가고 싶은 욕심에 나의 다음 여행지가 하루에도 수백번 바뀐다. 오늘은 정말 결정해야겠다. (결론적으로 나는 포르투에 푹 빠져 스페인의 말라가를 포기하고 포르투갈이 좋아 라고스로 향했다.)


#. 오늘의 목표

□ 에그타르트 먹기

□ 자전거 타고 어제와 반대편 해안도로 다녀오기

□ 해변산책

□ 다음 여정 계획 마무리

□ 쿠킹 클래스 신청하기





#. 산책을 하며.

-아직 보지 못했지만 에펠탑이 그럴것이라 예상된다. 누군가에겐 로망이고, 누군가에겐 한없이 차가운 고철뿐인 구조물일 것이다. 나에게 포르투의 동루이스 다리는 전자이다. 완벽한 나의 로망.





-분명 몇초 전에 덥다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패딩과 히트택을 챙겨 짐을 불린 나 자신을 원망했다.) 지금은 비온 직후라 그런가 춥다. 준비성 철저한 나는 이로써 완벽한 준비는 없음을 깨달았다. 편하게 살자!





#. 노을을 보며.

-무엇인가 열렬하게 좋아하면, 그 좋아하는 것을 우연히 마주치면, 너무 좋으면, 웃음보다 눈물이 먼저 나오는 것을 알게되었다. 포르투갈 버스킹 그리고 동루이스 다리에서.


-갈매기 소리, 빵 굽는 냄새, 버스킹 선율, 주황 분홍빛 하늘, 중간중간 들리는 트램의 경적소리. 손이 시려울 정도로의 차가운 공기. 옹기종기 걸어가는 다리 위 행렬.

이 순간의 모든 것들을 기억하고 담아가고 싶다.





#. 잘 준비를 하며.

-왜 이렇게 뭐라도 안하면 나는 불안할까. 일단 아쉬움 가득한 나 자신의 마음만 믿고 무섭지만 밖을 다시 나서 본다. 술을 먹어서 그런가 춥지 않다. 그나저나 이 나라 사람들은 내일 출근을 안하나보다. 나의 우왕좌왕 갈대같은 마음. 이곳이 좋은가 보다. 담고 싶은 욕심이 지나치게 많다.







2020년 1월 13일, 셋쨋날



#. 포르투에서의 세번째 아침.

오늘의 할일

□ (또) 에그타르트 먹기

□ 반대편 바다 다녀오기 - 트래블북 참고해서 트램 경로 찾기

□ 기념품사기

□ 보고싶던 건축물 보러 위쪽 동네 걸어보기






#. 바다를 걸으며

두 번 같은 곳을 가보는 것은 오답이 아니다. 내가 좋으면 좋은 것일텐데, 왜 자꾸 무언가 더 많이 더 빨리에 집착하는 것일까. 이런 마음을 고치고 싶어 이 메모를 적어본다!





#. 포르투 중심가에서

-에그타르트가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준다. 음식에서 이렇게 행복감을 느껴본 건 정말 오랫만이다.

-감기 기운이 있는 것 같다. 완전히 오기 전에 얼른 약먹어버려야지.





-나도 모르게 갑자기 엄청 가격대가 있는 식당을 찾았고, 와인도 시켰다. 이 대낮에. 조금씩 알딸딸해지고 눈이 무겁다. 포르투에서 술을 배운다. 평생 술이라곤 자의로 사먹은 적이 거의 없던 내가 좋은 음식에, 기억하고 싶은 시간 아래에 와인이 먹고 싶어졌다. 여행에서 새로운 취향을 만든다는 것. 정말 멋있고 낭만적인 것 같다.





-팁을 더 받으려고 그런걸까? 이곳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입술을 고치려 거울을 보고 있었는데 나를 서버하던 직원이 빙그레 웃으며 그랬다. "너는 지금으로도 예뻐. 거울 볼 필요 없어." 정말 오랫만에 느껴보는 심쿵이다. 처음엔 무슨말인가 해서 그냥 웃었는데. 나참. 뒤늦게 설레여온다.


그러고는 문을 나설때 나의 모국어로 예쁘다는 말을 어떻게 하는지 물었다. 알려주니 그는 나에게 문을 열어주며 "예뻐요" 라는 말과 함께 허리 굽혀 인사 해주었다. 상술이든 아니든 진심이든 아니든 생전 처음 느껴보는 기분좋은 설레임이었다.




#. 길을 걸으며

-나무 트램의 경로 변경은 특이하다. 운전수가 내려 직접 전기줄 같이 생긴 트램위에 달린 것을 빼어 다른 방향으로 걸어 다시 운전을 시작한다. 엄청 불편해보이면서도 오래된걸 자신들의 방식으로 지켜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우연히 트램을 마주하는 것 만큼 행복한 일은 없다. 포르투갈만이 줄 수 있는 행복.

  이 도시만이 나에게 줄 수 있는 행복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을 때 고개숙여주는 할아버지 할머니 모두 너무 귀여우시고 착하시다.

-새로운 프린팅으로 뒤덮힌 트램 마주치기, 더 맛있는 에그타르트 먹어보기. 이런 것들을 많이 모으고 싶다. 많이 느끼고 돌아가고 싶다.







두서없는 여행중 메모

포르투갈 포르투에서.

2020년 5월의 기록


ⓒ Copyright 2019. sans souci. All rights reserved





작가의 이전글 누군가의 단골손님이 된다는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