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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수씨 sans souci Apr 25. 2020

누군가의 단골손님이 된다는 것

대만 가오슝에서 찾은 작은 식당에서


단골에 대하여

단골손님. 같은 가게를 지속적으로 방문하는 고객을 말한다. 나는 이 단어가 참 좋다. 같은 곳을 찾는 '익숙함'의 의미를 내포하는 단어이지만, '특별함'을 함께 가지고 있어 재미있다. 그 특별함은 주인과 손님 사이의 끈끈한 관계가 될 수 있고, 가게에 대한 손님의 특별한 의미나 추억일 수도 있다. 그 무엇이든 익숙함에서 오는 포근함과 특별한 여러 가지 감정을 이 단어에서 느낄 수 있다. 게다가, 단골가게는 위로를 안겨주기도 한다. 거창한 말이 아니더라도 오래된 친구처럼 나에게 그대로 그 자리를 지켜주고, 나의 옆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든든한 힘이 될 때가 있다.


사실, 단골손님이 되는 것은 쉬우면서 어렵다. 단순히 기계적으로 많이 가면 되지라고 생각하면 쉬울 수 있지만 실제론 그렇게 간단치 못하다. 단골손님이 된다는 것은 방문하는 행위는 물론 방문하는 이유에 가치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나의 단골로 점찍힐 가게를 찾는 것부터 보통 쉬운 일은 아니다. 뭐랄까. 첫 느낌? 말로 표현하기 힘든 나에게 꼭 맞는 그러한 느낌이 있어야 한다. 찾은 이후에는? 나의 시간과 비용, 다른 곳을 선택할 수 있었는데 굳이 이곳을 찾음에 발생하는 기회비용까지 지불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이 용인될 때 비로소 단골이 되는 것이다. 이 어려움을 다 거치고, 이겨내어 찾아온 손님이기에 소중하다.


식당, 카페, 서점, 미용실까지. 한국에선 우리 동네에 단골이 하나쯤 당연하게 있다. 그렇다면 그 당연함의 소중함을 정해진 기간 동안 잠시 머무는 여행지에서도 느낄 수 있을까? 단골가게를 만들 수 있을까?






단빙(蛋饼)과의 인연 시작

고베에서 친구가 만들어준 단빙

대학교 때 일본에서 유학하고 있는 대만 친구네 집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고베에서 지내던 그녀는 수업 들으러 가는 바쁜 와중에도 매일 아침 나에게 대만식 아침식사를 차려주었었다. 그때 처음 먹어보았던 음식은 단빙. 나와 단빙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나는 이 음식에 푹 빠져버렸다. 얇게 편 계란피에 치즈, 햄, 각종 야채를 넣고 돌돌 말아 구운 음식이다. 정말 간단한 조리법에 비해 맛과 종류가 다양했고, 든든한 느낌이 좋았다.


대만을 처음 가는 사람이라면 이 음식부터 가볍게 시작해보면 좋을 것 같다. 누구나 좋아할 맛이다.


타이동에서 먹은 단빙

그 후 나는 대만을 때마다 가장 먼저 이 음식을 찾았다. 과장 더 보태어 이때부터 대만 음식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다른 새로운 여행지보다 대만을 자주 찾게 되었고, 대만 내에서 재방문하는 도시도 여럿 생겼다. 그 중 가오슝이라는 남부 해안도시에 방문하며 나는 앞으로 내가 그토록 좋아하는 단빙을 찾아 유목하지 않고 정착할 수 있는 단골가게를 찾아 안도감을 느낀 경험이 있다.







첫 번째 가오슝 방문에서 단빙

당시 나는 중국어를 갓 배우기 시작했다. 가오슝 여행 마지막 날, 숙소 근처 아침을 먹을 곳을  찾았을 때였다. 우연히 발길 닿은 이곳은 정말 나에게 신세계 그 자체였다. 출근하는 사람들, 등교하는 학생들 너 나할 것 없이 테이블 가득 메워 이곳의 음식을 먹고 있었고, 나이가 지긋한 아주머니 서너 분께서 음식 하시는 모습에서 튀겨내는 뜨거운 기름에서 열기가 가득 느껴졌다. 대만에서는 흔한 반쯤 오픈된 형태의 가게라 오토바이 경적소리가 그대로 들려 더욱 부산하게 느껴졌다. 쭈뼛쭈뼛 그들 틈 사이로 비집고 자리를 잡아 주문을 했다. 당연히 메뉴는 고민할 필요도 없이 단빙(蛋饼)과 도우장(豆浆)이였다.


그때 주문하며 재미있는 경험이 있었다. 아주머니께서는 영어를 할 수 없었고, 나는 중국어가 부족했다. 가까스로 번체를 기억해두어 메뉴는 알려드리는데, 도우장을 가리키는 순간 아주머니께서 물으셨다.


"차가운 것 뜨거운 것 어떤 걸로 줄까?"

나는 무슨 말인지 몰랐다. 그러다 아주머니들이 옹기종기 모여든다.

"어떻게 설명해야 될까?"

"차가운 건 오들오들 떠는 행동을 해보자"

"자, (손으로 양 팔을 여러 번 쓸어내리며) 차가운 거~

       (뜨거운 기름을 가리키며) 뜨거운 거~"


그제야 나는 "아! 차가운 거 뜨거운 거! 저는 차가운 거요!"


그렇게 귀여우신 아주머니들은 내가 알아듣자 하하호호 웃으셨다. 무사히 계산까지 마친 나에게 다른 사람과 달리 음식을 직접 가져다주셨다. 아마 "음식 나왔어요" 라는 말을 내가 알아듣지 못할 것이라 생각해 배려해주셨던 것 같다. 그때 한입 베어 문 따뜻한 단빙은 나의 인생 소울푸드가 되었다. 차가운 도우장도 정말 담백하고 맛있었다. 그리고 행복했다. 아주머니께 다 먹은 그릇을 가져다 드리면서 감사하다는 말을 드렸다. 다음에 또 찾아올게요 라고 인사드리고 싶었지만 중국어로 어찌할 줄 몰라 웃음으로 대신했다.







두 번째 가오슝 방문에서 또 단빙

타이동을 방문했던 당시, 한국에서 타이동 직항이 없어 가오슝을 무조건 들러야 했다. 타이동 여행을 계획하면서 아이러니하게도 타이동 자체에 대한 기대감만큼 나를 설레게 했던 건 가오슝을 들를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다시 한번 그 곳의 단빙을 먹을 수 있다는 것. 가오슝 기차역에 도착했을 때 굳이 이곳을 찾기 위해 가오슝 도심을 나섰다. 가지 않을 수 없었다. 2년 만에 들렀던 터라 생각보다 도시가 많이 바뀌어있었다. 단빙을 먹을 수 있을까? 혹시라도 없어졌으면 어떡하지. 걱정 반 설렘 반으로 그 골목을 찾았다.


코너를 꺾는 순간, 열기가 그윽한 이 가게를 보고 마치 우리 집에 온 것 마냥 편안함을 느꼈다. 나는 2년 그때와 똑같이 단빙과 도우장을 주문했다. 달라진 게 있다면, 이젠 중국어로 주문에서 막힘없다는 것 정도일까. 아주머니께 "저 2년 만에 다시 왔어요!" 라고 말을 해보려다 너무 바빠 보이셔서 이내 말았다. 이곳의 단빙은 여전히 따뜻했고, 달달했고, 든든한 여행의 출발을 선물해주었다.


아주머니께 싹싹 비운 그릇을 다시 가져다 드리면서, 이번에는 다음에 또 올게요 라고 말씀드렸다. 누군가에겐 너무 당연한 일이지만, 여행자에겐 당연하지 않다. 그래서 더욱이 이 작은 가게를 방문하는 날을 기다리게 된다. 여행을 하다 보면, 새로운 것도 물론 좋지만 여행지에서 단골을 만들어보는 경험은 특별한 기억으로 오래 남는다. 다음 대만 여행을, 다음 단빙 먹방을 또 기약하며 오늘도 어디에선가 나는 단골손님이 되어본다.






누군가의 단골손님이 된다는 것

대만 가오슝에서 찾은 작은 아침식사 가게에서.

2020년 4월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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