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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bogarden Jun 21. 2020

 엄마가 해주셨던 음식의 기억

엄마는 음식과 함께  마음에  살아 있다

명절 당일날 바쁘게 음식을 하는 걱정을 덜기 위해 친척 한집씩 미리 음식을 분담하여 준비해 오는 약속이 있었다.


개인 핸드폰이 대중화된 요즘과는 달리 집에 가정 전화기가 있던 시절

서로의 가정의 안부를 묻고 어떤 음식을 나누어 준비할지  의논하는 전화통화가  명절 전에 이루어졌었다.

 엄마가 해가는 메뉴가 결정되면   재료들을 넉넉하게 장 봐 오셨다.


외국에서 일하시는  친척들이 있어서 명절 전후에 들어오는 한국에

 사촌들은 한국음식이 너무 그립다고 했다.


모이기 전날 가져갈 음식을 정성 들여 만드셨었고

명절 당일에 모일 수 있는 친척들은 일찍 모였었다.


그러면 여러 음식을 겹치지 않게 준비해왔기에 빠르게 상차림을 할 수 있던 기억이 있다.


 엄마는 음식 간을 맞추시며  요리하시는 일재미있다고 하셨다.


 같이 먹을 사람들을 생각하시며 즐거워하셨던 기억이 있다.

외국 회사생활을 하는 사촌언니는 엄마의 잡채가 너무 맛있다고 고마워했고 엄마는 친척들이 헤어질 때 소분해 가져 갈 음식의 양도 만들어 가셨었다.

 

다음에 사촌들이 한국 오면 더 맛있게 많이 해겠다고 뿌듯해하셨다.

                                  

 명절 전날  요리하셨던 잡채


 다양한 전들도 전날 정성껏 부치셨는데  따뜻하게 구워지는 전들을 보며 몇 개씩 집어먹기도 했었다.

다양한 모둠 전들


지금 생각하면 여러 인분의 음식양을 준비하시던 엄마를 많이 도와 드려야 했다.

가끔 엄마가 만드신 전을 대충 옮겨 담는 거 같으면 엄마는 내게 충고를 해 주셨다.

음식은 만들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놓을 때도 예쁘게 보이는 것이어야 한다고

 

드시는 분들을 생각해 더욱 맛있고  대접받는 기분을 느끼게 해 주셨던 것이다.


작은 소형차였던 엄마의 차 트렁크에 흘리지 않게 큰 음식 접시와 비닐로 여러 겹 포장하여 싣고

운전해 먼 거리의 친척들 집에 갔었다.


                                             

   잡채에 밥을 볶아 만들어 주셨던 잡채밥


잡채를 만들 때만 항상 푸짐하게 만들어 두셨기에 여분의 잡채를 우리 가족이 명절이 지나도 먹을 수 있었다.


잡채와 밥을 볶아 주셨던 엄마의 잡채밥


당면의 매끄러움과 탱글탱글 한 맛, 모양이 특이하고 무섭다 느꼈던 목이버섯, 야채와 함께 씹히는 밥 , 약간 매콤하게 만들어 주셔서 더욱 입맛이 좋았고

나는 손이 얼마나 많이 가는 줄도 모르고서는  명절이 아닐 때에도 잡채밥을 만들어 달라고 조르기도 했었다.


엄마는 힘든 내색하지 않으시며 잡채밥을 자주 해주셨었다.


                                         

                 

엄마와 둘이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며 먹었던 비빔밥

 

 식구들이 늦게 들어오는 때에는

 엄마와 나만 저녁을 먹게 되었는데

그럴 때 냉장고에 있는 나물 반찬들로 간단하게 먹자고 하시며 비빔밥을 즐기셨다.


학창 시절에 집밥보다 피자나 햄버거를 즐겨 찾아 먹게 되었는데

엄마는 나는 옛날 사람이라 그런지

밥이 최고야 밀가루 음식은 먹을 때는 맛있는데 먹고 나서 덥수룩하고 밥 먹을걸 하고 항상 후회해

그래서 엄마는 밥순이야 하시며 한식을 즐기셨다.


냉장고에 있던 채소와 야채들을 넣 고추장 넣고 계란은 사이좋게 두 개,

참기름도 솔솔 뿌리면서 엄마는 숟가락 두 개를 가져오셔서 비비자 하셨다.


에이 나는 비빔밥은 싫은데...

하며 엄마와  하나의 양푼에 바쁘게 숟가락을 부딪치고추장이 비벼지 빨개져 가는 밥과 금세 퍼먹느라 줄어드는 아쉬움

네 숟가락, ,, 두 숟가락 남았네  먹어도 먹어도 자꾸 배에 들어가네 하며 역시 밥이 최고 하고

말하시던 엄마 나도 끄덕이며 어느새 싹 비워져 가던  큰 양푼 그릇,,

설거지할 그릇도 적고 맛있게 저녁을 딸과 함께 해결했다는 엄마의 흡족해하시던 얼굴이 생각난다.


  엄마는 다양한 재료를 넣는 것을 좋아하셨다.                                            

                                                         

    미숫가루를 고소하게 듬뿍 뿌려주셨던 팥빙수


여름이면 엄마가 빙수 가는 기계로 갈아 만들어 주셨던 팥빙수

몸에 좋은 가루라면서 미숫가루를 넣어주시고  이게 뭐야 맛없겠다 하니 연유도 뿌려주셨다.

고소하고 시원한 얼음과 달아지는 의 조화에  점점 빠져 들었던 기억..


내가 결혼 하기 2년 전에 몸이 아프셔서  하늘나라로 가신 엄마


돌아가신 당일날도 당시 다니던 회사에서 야근을 하고 있을 때였다.


살아오면서 느꼈던 수많은 슬픔과 좌절 중에 가장 무겁고 잊지 못할 슬픔이었다.


아직 나는 엄마에게 맛있는 음식도 제대로 대접한 적도 없는데

나의 엄마를 다시는 보지 못한다는 슬픔

 함 밥을 먹으며 소소한 일상을 공유할 수없다.



아이를 키우고 가족들 밥을 차릴 때마다 엄마가 나와 가족들에게 해주셨던 밥, 음식, 간식이 떠오른다.


맛있게 음식을 만들지 못했을 때 딸아이의 맛없다는 투정을 들을 때면


명절이 되어 명절 음식들을 먹게 되거나 몸이 힘들고  바쁘다는 핑계와 사 먹는 음식이 더 맛있다 말하면.. 나의 마음에서는 여전히 엄마 

정성들여  해주셨던 음식들이 기억난다.


엄마가 요리해주시던 모습을

닮아 가야 하는데



나도 나이가 들어 이제는 엄마처럼 밥순이가 되었다.  




마음 한편이 저려오는 느낌과 함께..






커갈수록 엄마를 이해하고 도와드리는 딸이었어야 하는데

해주시던 밥 음식에도 고마운 줄 모르고  예쁜 말도 못 해 드렸을까


항상 푸짐하고 맛있게 간을 하시려 고민하셨다 조리하실 때 얼마나 많은 수고로움을 들이셨는지


엄마의 아버지는 교장선생님이셨다.

손에 물 하나 안 묻히고 고생 없이 온실 속의 화초처럼 커왔기에 엄마가 되고 고생 많이 한다고 자주 말하셨던 나의 엄마.

한식 요리하시는 것을 좋아하셨기에

 한식조리사 자격증을 취득하시고  집에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음식점에 요리하시러 가서 현금을 만들어 오시면서 가족들을 도와주시고 지원해주셨다.


그러는 와중에 엄마의 몸은  마음은 돌보지 못하고 약해져만 갔었다.




나는 왜 게걸스럽게 먹기만 하고 집안일과 설거지도 자주 안 해드렸던 것일까..

미운 딸이었던 나



엄마의 엄마는 어디 계실까  하늘나라에 계셔 나중에는 우리가 다 같이 만날 수 있다.


그럼 같이 가서 맛있는 것도 먹자


하루를 보내고 이불에 누워 재우기를 한다.

잠들기 전에  보지도 못한 할머니를 이야기하며 잠이 들곤 할 때가 있는데

아마도 다른 친구들의 할머니를 보고선 자신의 할머니 어떤 분인지 궁금해졌을 때인 거 같다.





항상 남을 배려하 자신을 낮추고  희생만을 하셨다고 나는 생각되었는데


높은 곳에서는 밥은 맛있게 드시고 계시는지..


이제 더는 아프시지 않으신지..



같이  배달 갈까?  하늘은 정말 높지만 멀고도 가까울 수도 있잖

                                  

 딸과 만든 음식 엄마께 배달 가는 길



평생가족에게 직접 만드신 음식을 해주셨던  엄마 사랑합니다 간이 흐를수록  진심으로 감사드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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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에서 주최한 우리가한식 공모전에서 특별상을 수상하게 되었습니다

좋은 책에 참여  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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