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달린다, 사진의 한계를 향해
삼각대를 펼치고 카메라를 설치한 뒤
셀프타이머를 누른다.
그리고 뛰어간다,
갈 수 있는 한 만큼,
카메라 앞에 놓인 풍경 속으로.
당신은 당신의 뒷모습이
어떻게 찍힐 것인지 알 수 없다.
아주 우연한 순간에,
셀프타이머가 작동을 끝내는
얼마 간의 시간 뒤에,
당신의 모습은
당신이 의도하지 못한 채로
프레임 안에 갇힐 것이다.
그러나
당신의 모습이 어떨 것인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당신이 ‘뛰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기록하였다는 것.
근대 이후,
아니 어떤 의미에서
모든 예술은
그 예술이 다루는 매체(medium)의
한계를 경험하는 것이다.
때로 뛰어넘을 수도 있고,
아슬아슬 줄타기할 수도 있다.
미국 아티스트 존 디볼라가
1996년부터 97년 사이 만들어 낸
이 작품의 시리즈는
사진이 피사체의 특정한 순간,
이른바
‘결정적 순간(decisive moment)’을
다루는 방식을 뒤집는다.
사진가의 의도에 따라 순간을
고정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는 그저 뛸 뿐,
사진이 찍히는 바로 그 순간은
우연에 맡겨진다.
예술가의 의도는 최초의 아이디어,
‘셀프타이머가 작동하는 동안 뛰어간다’는
그 행위(performance) 자체에 있다.
그가 뛰는 것은
그냥 뛰는 것이 아니다.
그는 사진(기)의 한계를 향해 뛰어간다.
10초라는,
이미 정해져 있는
셀프타이머 작동시간의 한계,
어떤 카메라도
셔터막이 열리는 순간에는
렌즈를 통해
피사체를 볼 수 없다는 한계⑴,
프레임 저 멀리 놓인,
주어진 시간 내에는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소실점이라는 물리적 한계,
나아가 무엇보다
이 모든 예술적 의도에도 불구하고
글로 적힌 설명이 없다면
의미가 전달되지 못하는,
사진이 극복할 수 없는
그 본원적인 한계를 향해.
(1)
뷰파인더가 따로 존재하는
레인지 파인더 또는
트윈 리플렉스 렌즈 카메라는
셔터가 열리는 순간에도
피사체를 볼 수 있으나,
뷰파인더로 보는 세상이
렌즈를 통해 보는 像이 아닌 것은
마찬가지다.
디지털 시대가 되면서
전자식 셔터 장치는
‘셔터’가 열리고 닫히는 순간을
최소화할 수는 있으나,
카메라 뒤에 맺히는 상은
실시간으로 보는 장면이 아닌,
전자장치를 거쳐 미세하게 지연된
장면일 뿐이라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이미지가 포착되는
그 찰나의 순간을 인간의 눈으로
확인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사실 모든 사진은
우연의 요소를 포함한다.
(2)
이미지 출처는 다음의 두 곳이다.
(3)
그리고 존 디볼라의 웹사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