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렸고 그는 누워있었다,
비가 그칠 때까지.
그리고 일어나 사진을 찍는다.
그의 ‘그림자’,
그의 실존의 ‘흔적’,
‘그가 거기에 있었다’는
움직일 수 없는 증거.
오로지 존재하는 것만이,
실체를 갖고 있는 존재만이
부재할 수 있으며,
대신 그림자를 남길 수 있다.
흔히 초자연적 존재가
그림자 혹은 거울 속 반영이 없는
존재로 묘사되는 것은,
그림자와 반영이란 오롯이
‘지금-여기’의 실존적 존재 만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실존의 증거로서의 흔적은
그 흔적을 남기는 존재와 마찬가지로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삶만큼이나 삶의 흔적들 역시
덧없는 것,
아마도 서너 시간 뒤면 빗물이 말라
영국의 환경미술가 앤디 골즈워디가 남긴
이 기묘한 ‘초상화’도
찾아볼 길이 없어졌으리라.
남는 것은 아티스트의 기억,
온몸이 흠뻑 젖었을,
마음뿐만 아니라 몸으로 새긴 기억.
혹은 그가 지도 위에 표시했을지 모를
이 자리의 대강의 위치,
또는 위도와 경도,
그리고 위와 같은 몇 장의,
사진.
‘환경미술’이란 이런 것이다.
자연 속으로 들어가 남긴 것은
그 자연과 함께 존재하고 마멸되며
마침내 사라지는 것이다.
지극히 인간적인 스케일에
생태계에의 개입을 최소화하는
앤디 골즈워디의 작품 세계에 비해
규모 면에서나 산업화된 기계들이 사용된
제작방법 면에서나 대척점에 서 있는,
유명한 로버트 스미드슨의 작품
⟨Spiral Jetty⟩(1970) 역시
세월이 흐르면서 솔트레이크에 잠겨
풍화와 침식작용을 거치게 되어있었다.
그러나 최근 기후변화의 여파로
솔트레이크의 수위가 낮아지면서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은,
문명이 환경에 초래한 파괴적인 결과의
한 양상이라는 점에서 꽤 시사적이다.
골즈워디의 작품이든 스미드슨의 것이든
환경 속에 남겨진 작품을
누군가가 배타적으로 소유할 수 없다.
하지만 그것으로 족하지 않은가.
인간이 남기는 흔적이란,
그렇게 종적 없이 사라지는 게
마땅한 것.
오노 요코의 말을 인용하자면
우리 머릿속에 들어있는 어떤 것도
자연보다 ‘아름다울’ 수는 없다.
(“Look at the nature around you.
Is the inside of your head
prettier than that?”)
아니, 사실
어쩌면 인간은 이미
너무 많은 흔적을 남겼고
대부분은 아름답지 않으며,
너무 오래 지속될 것이다,
자연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사진의 출처는 앤디 골즈워디의 디지털 카탈로그이다:
https://www.goldsworthy.cc.gla.ac.uk/image/?id=ag_02944&t=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