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우편함에 양파망이 달렸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얼마 전 어스름 저녁에
희끄무레한 뭔가가 포르륵,
눈앞을 지나가기에
아무래도 헛것을 본 게지, 싶었는데,
아마도 굴뚝새 가족이
둥지를 틀었나 봅니다.
“새집이 있어요, 우편물은 아래 봉지에”,
메모와 함께 우편함이 공식적으로
새집으로 탈바꿈하더니,
또 어느 날엔가는 뜨겁지 말라고
번듯한 지붕과 처마도 생겼습니다.
굳이 새를 쫓아내지 않는 마음이나,
양파망에 우편물을 넣는 마음이나
무심하지 않은 마음들이 고맙습니다.
인간을 제외한 모든 생명이
한계로 내몰리는 이 대멸종의 시대에,
문득 아직도 할 수 있는 것,
내가 바꿀 수 있는 무언가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여기, 새집이 있습니다.
다들 마음 한켠을 조금씩만
내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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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2024